본문내용
와 개별적이면서도 사적인 권고를 통한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을 집행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참된 선함을 가르치고, 거룩한 비밀을 간직하고, 온전한 훈련을 지키며 행한다. 교사는 교회의 설교가 성서적 바탕위에 바르게 서 있는가 해석하며, 장차 설교자가 될 사람의 양성의 과업을 맡는다. 장로는 목사와 더불어서 규율을 시행하고 개인적인 권고로 신자를 교회안에 머물게 하고, 무법자를 방지해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한다. 집사는 구제와 가난한 자와 병든자를 돌본다. John Calvin, 강요, Book IV, Ch. III. 4-9.
이렇게 직분을 구별했으면서도 칼빈은 <강요>의 최종판에서 목사는 장로와 교사의 직분까지 겸하여 맡을 수 있다고 하였다. Wilhelm Niesel, Die Theologie Calvinis, 이종성역,「칼빈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제3판, p. 200.
이렇게 직임을 구별했다고 하지만, 직임 사이의 차등은 있는 것은 아니고, 신자들의 어미니이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봉사직의 구별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실한 소명감이 있어야 하며, 각자 받은 은혜에 따라서 다른 지체에 봉사할 때에 올바른 수행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목사는 지배자로서의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도구”로서 봉사, 섬기는 직책일 뿐이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장로교회의 교회관 교직제도가 한국교회에 소개되어서 별문제 없이 유지되다가 근래에 들어서 특히 1970년대 이후로 교회의 권위, 목사의 권위,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감리교 신학대학의 박대인(Edward E. Poitras)교수는 “기독교인 사이에 권위가 없다” (Among Christians there can be no authority)란 글에서 한국교회의 권위의 상실은 카리스마운동의 도입과 더불어서 심각하게 됐다고 지적했는데, Edward E. Poitras, Among Christians there can be no Authority, 감리교 신학대학, 신학과 세계, 통권 제15호, 가을, p. 292f.
참으로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로 목회자는 카리스마적인 권위의 인물로 부각되었고 자신을 통해서 세상적인 성공, 건강, 부귀와 행복을 약속받는다고 설교하는 둥, 사람에 대한 권위 부여, 상업성, 주술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이러한 요소를 갖추어야만, 소위 말하는 목회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카리스마 운동은 교회성장학과 손을 잡고 한국의 토속적인 주술적 요소까지 끌어 들임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의 섬김과 봉사의 정신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화란의 선교신학자 버카일(J. Verkuyl)은 이러한 교회성장적 선교의 목적은 미국의 상업주의, 기업 팽창주의가 교회에 파고든 것이라고 실랄하게 지적하였다. J. Verkuyl, op. cit. pp. 188-192.
요즈음 시행되고 있는 비 종교개혁적 전통의 권위물로는, 목사의 직을 성직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자기가 설교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태도, 목사에 대한 호칭(종님, 사자님...), 거대한 호화교회단, 내부치장물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루터, 쯔윙글리는 교회내에서 오르간까지 금지하면서 오로지 말씀 선포를 통한 은혜의 전달을 강조했으며, 교회당의 화려한 건축, 눈부신 치장 등은 가장 혐오하던 중세의 유산으로 거부하였다. 개혁자들은 심지어 예배와 성례전의 무절제한 집행이 오히려 권위를 상실시킨다고 해서 회수를 제한시키기까지 했음을 알아야 한다. 중세 15세기 말 독일
이렇게 직분을 구별했으면서도 칼빈은 <강요>의 최종판에서 목사는 장로와 교사의 직분까지 겸하여 맡을 수 있다고 하였다. Wilhelm Niesel, Die Theologie Calvinis, 이종성역,「칼빈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제3판, p. 200.
이렇게 직임을 구별했다고 하지만, 직임 사이의 차등은 있는 것은 아니고, 신자들의 어미니이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봉사직의 구별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실한 소명감이 있어야 하며, 각자 받은 은혜에 따라서 다른 지체에 봉사할 때에 올바른 수행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목사는 지배자로서의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도구”로서 봉사, 섬기는 직책일 뿐이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장로교회의 교회관 교직제도가 한국교회에 소개되어서 별문제 없이 유지되다가 근래에 들어서 특히 1970년대 이후로 교회의 권위, 목사의 권위,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감리교 신학대학의 박대인(Edward E. Poitras)교수는 “기독교인 사이에 권위가 없다” (Among Christians there can be no authority)란 글에서 한국교회의 권위의 상실은 카리스마운동의 도입과 더불어서 심각하게 됐다고 지적했는데, Edward E. Poitras, Among Christians there can be no Authority, 감리교 신학대학, 신학과 세계, 통권 제15호, 가을, p. 292f.
참으로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로 목회자는 카리스마적인 권위의 인물로 부각되었고 자신을 통해서 세상적인 성공, 건강, 부귀와 행복을 약속받는다고 설교하는 둥, 사람에 대한 권위 부여, 상업성, 주술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이러한 요소를 갖추어야만, 소위 말하는 목회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카리스마 운동은 교회성장학과 손을 잡고 한국의 토속적인 주술적 요소까지 끌어 들임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의 섬김과 봉사의 정신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화란의 선교신학자 버카일(J. Verkuyl)은 이러한 교회성장적 선교의 목적은 미국의 상업주의, 기업 팽창주의가 교회에 파고든 것이라고 실랄하게 지적하였다. J. Verkuyl, op. cit. pp. 188-192.
요즈음 시행되고 있는 비 종교개혁적 전통의 권위물로는, 목사의 직을 성직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자기가 설교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태도, 목사에 대한 호칭(종님, 사자님...), 거대한 호화교회단, 내부치장물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루터, 쯔윙글리는 교회내에서 오르간까지 금지하면서 오로지 말씀 선포를 통한 은혜의 전달을 강조했으며, 교회당의 화려한 건축, 눈부신 치장 등은 가장 혐오하던 중세의 유산으로 거부하였다. 개혁자들은 심지어 예배와 성례전의 무절제한 집행이 오히려 권위를 상실시킨다고 해서 회수를 제한시키기까지 했음을 알아야 한다. 중세 15세기 말 독일
추천자료
돌봄
한국 설교 현장
교회성장과 제자훈련
「생동하는 구역, 부흥하는 교회」와 「한국교회를 깨운다」를 읽고
강성열, 『구약성서의 신앙과 세계 』. 요약, 감상
기독교 사회복지의 역사
21세기 목회와건강한교회
포스트모던 사회와 교회 요약
한국교회 부흥에 대한 역사적 고찰
신유인식 증진의 신학적 구조
[목회자][설교][교회][예배][목회자 개념][목회자 직무][목회자 설교][목회자 인간관계][목회...
Dominion - 피터 와그너 저
교육목회를 위한 교회의 교육구조 진단
기독교 윤리학의 정의 - 전통적 이해(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칸트의 정의론), 기독교 신학...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