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고분벽화란 무엇인가
2. 중국 고분벽화개요
3. 고구려 고분벽화개요
4. 주변국의 고분벽화
2. 중국 고분벽화개요
3. 고구려 고분벽화개요
4. 주변국의 고분벽화
본문내용
수리고분
5c 초
무덤 주인의 행렬도. 대규모 사냥
장천1호분
5c
야외에서 즐기는 오락, 조상에게 절하는 후손들. 천정에 북두칠성
씨름무덤
5c
씨름, 신단수아래 호랑이와 곰. 의자에 앉은 주인과 온돌위의 두 부인
춤무덤
5c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도사와 담소하는 주인. 부엌, 사냥. 수레
삼실총
5c
성곽밖에서 적을 죽이는 장군. 뱀을 두른 역사상. 다양한 괴수들
쌍영총
5c 말
쌍기둥. 건물 내부의 장방안에 있는 부부 그림
수산리고분
5c 말
무덤주인부부의 행차도와 기예도
진파리1호
6c 말
소나무 그림(산수화의 시초)
오회분4호
6c 말
사신도, 다양한 신선들.- 악기를 연주하는 신선. 나뭇잎 위에 신선들
오회분5호
6c 말
사신도, 다양한 신선들.
강서중묘
7c 초
사신도 (특히 주작, 백호), 천상세계. 천장에 연꽃
강서대묘
7c 초
사신도 (특히 현무, 주작), 천상세계, 삼신산, 황룡
형식에 따른 분류는 무덤 내부의 구조에 따른 분류다. 벽화무덤은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신이 놓여 있는 방까지 들어가기 위한 널길 - 무덤의 가운데에 있는 방인 앞방(전실) - 앞방 좌우에 있느 방인 곁방(감실, 측실), 방과 방을 잇는 이름길, 그리고 무덤 맨 뒤쪽에 있으면서 시신을 놓는 널방(후실)의 구조로 되어 있다. 약수리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구조는 모든 무덤이 이를 모두 갖춘 것은 아니다. 무덤 구조의 변천에 따른 시대구분은 고분벽화 편년의 세계적 대가인 주영헌은 아래와 같이 도표로 나타내었다.
) 유홍준, 「고구려 벽화고분의 발굴·연구사」, 『고구려고분벽화해설』,1995, p 31
초기 외간무덤 중기 외간무덤 중기 외간무덤 후기 외간무덤
감 또는 곁방이 있는 무덤 두간무덤
감 또는 곁방이 있는 무덤, 두간무덤
4. 주변국의 고분벽화
고구려를 제외한 백제 등의 나라는 고분벽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백제는 공주와 부여에 각각 1기씩 도합 2기의 벽화고분이 있다. 사신도 표현 등 고구려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신라는 순흥지역에 고구려의 영향이 짙은 2점의 벽화 고분이 있다. 고분벽화는 아니지만, 천마총에 나무에 그려진 천마도가 그려져 있고, 각종 토우가 남아있어 고구려와 비교연구도 가능하다. 가야는 고령지방에 1점의 고분벽화가 있다. 발해에는 정효공주묘가 있는데, 고구려의 영향도 받지만, 당의 영향을 상당히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벽화장식이 보다 많아져 10세기에서 14세기 동안 천장에 별자리, 네 벽에 수호신인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장식한 외에 사신도가 첨가되기도 하였다. 회벽에 세련된 선묘와 연한 채색의 구륵화법(鉤勒畵法-형태윤곽을 먼저 선으로 그리고 그 안을 채색하여 메워가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는 개풍(開豊) 수락암동1호분이 가장 뛰어나다. 조선때에는 왕릉에 사신도를 주제로 한 널방장식의 전통이 보인다. 이것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왕릉 내부의 돌방 천장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려 넣으며, 또한 네 벽에는 사신도를 장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고려에는 왕건릉을 비롯하여 여러 기의 고분벽화가 있다.
백제
공주 송산리 6호 무덤
벽돌무덤, 벽에 진흙 바른 후 사신도 그림
백제
부여 능산리 벽화무덤
돌간흙무덤, 사신도, 연꽃과 나는 구름무늬
가야
고령 고아동 고분
돌간흙무덤, 연꽃그림, 벽화의 흔적이 곳곳에 존재
신라
순흥 어숙술간묘
595년경 축조 연꽃그림과 인물도, 을묘년어숙지술간-글씨
신라
순흥 벽화고분
539년(혹 479년)경 축조. 뱀을 목에 건 수문장, 산, 글씨-고구려 강역에서의 그 지역 통치자의 무덤일 가능성
발해
연변화룡현 정효공주묘
12명의 시종의 그림.
일본은 5세기초에 삼국의 영향을 받은 묘제가 출현하면서 장식고분들이 등장한다. 구주지역과 동경지방을 중심으로 많이 발견되는 장식고분들은 회화적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원시 암각화의 변형에 가까운 그림들이 보이고 있다. 장식고분은 100여기 이상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과 고분벽화와의 관련성 문제는 많이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열도에 고분벽화가 등장하는 것은 대개 6∼7세기로 보여지는데 고송총과 기토라고분 등은 특히 고구려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고송촌 고분의 여인들의 복장과 외모, 사신도 그림은 고구려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이고, 기토라고분의 천문도는 고구려 천문도를 그린 것
) 조선일보, 한국일보 98.6.1일자 및 조선일보 98.6.3일자 전상운씨 기고
으로 알려져 있다.
5c 초
무덤 주인의 행렬도. 대규모 사냥
장천1호분
5c
야외에서 즐기는 오락, 조상에게 절하는 후손들. 천정에 북두칠성
씨름무덤
5c
씨름, 신단수아래 호랑이와 곰. 의자에 앉은 주인과 온돌위의 두 부인
춤무덤
5c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도사와 담소하는 주인. 부엌, 사냥. 수레
삼실총
5c
성곽밖에서 적을 죽이는 장군. 뱀을 두른 역사상. 다양한 괴수들
쌍영총
5c 말
쌍기둥. 건물 내부의 장방안에 있는 부부 그림
수산리고분
5c 말
무덤주인부부의 행차도와 기예도
진파리1호
6c 말
소나무 그림(산수화의 시초)
오회분4호
6c 말
사신도, 다양한 신선들.- 악기를 연주하는 신선. 나뭇잎 위에 신선들
오회분5호
6c 말
사신도, 다양한 신선들.
강서중묘
7c 초
사신도 (특히 주작, 백호), 천상세계. 천장에 연꽃
강서대묘
7c 초
사신도 (특히 현무, 주작), 천상세계, 삼신산, 황룡
형식에 따른 분류는 무덤 내부의 구조에 따른 분류다. 벽화무덤은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신이 놓여 있는 방까지 들어가기 위한 널길 - 무덤의 가운데에 있는 방인 앞방(전실) - 앞방 좌우에 있느 방인 곁방(감실, 측실), 방과 방을 잇는 이름길, 그리고 무덤 맨 뒤쪽에 있으면서 시신을 놓는 널방(후실)의 구조로 되어 있다. 약수리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구조는 모든 무덤이 이를 모두 갖춘 것은 아니다. 무덤 구조의 변천에 따른 시대구분은 고분벽화 편년의 세계적 대가인 주영헌은 아래와 같이 도표로 나타내었다.
) 유홍준, 「고구려 벽화고분의 발굴·연구사」, 『고구려고분벽화해설』,1995, p 31
초기 외간무덤 중기 외간무덤 중기 외간무덤 후기 외간무덤
감 또는 곁방이 있는 무덤 두간무덤
감 또는 곁방이 있는 무덤, 두간무덤
4. 주변국의 고분벽화
고구려를 제외한 백제 등의 나라는 고분벽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백제는 공주와 부여에 각각 1기씩 도합 2기의 벽화고분이 있다. 사신도 표현 등 고구려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신라는 순흥지역에 고구려의 영향이 짙은 2점의 벽화 고분이 있다. 고분벽화는 아니지만, 천마총에 나무에 그려진 천마도가 그려져 있고, 각종 토우가 남아있어 고구려와 비교연구도 가능하다. 가야는 고령지방에 1점의 고분벽화가 있다. 발해에는 정효공주묘가 있는데, 고구려의 영향도 받지만, 당의 영향을 상당히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벽화장식이 보다 많아져 10세기에서 14세기 동안 천장에 별자리, 네 벽에 수호신인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장식한 외에 사신도가 첨가되기도 하였다. 회벽에 세련된 선묘와 연한 채색의 구륵화법(鉤勒畵法-형태윤곽을 먼저 선으로 그리고 그 안을 채색하여 메워가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는 개풍(開豊) 수락암동1호분이 가장 뛰어나다. 조선때에는 왕릉에 사신도를 주제로 한 널방장식의 전통이 보인다. 이것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왕릉 내부의 돌방 천장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려 넣으며, 또한 네 벽에는 사신도를 장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고려에는 왕건릉을 비롯하여 여러 기의 고분벽화가 있다.
백제
공주 송산리 6호 무덤
벽돌무덤, 벽에 진흙 바른 후 사신도 그림
백제
부여 능산리 벽화무덤
돌간흙무덤, 사신도, 연꽃과 나는 구름무늬
가야
고령 고아동 고분
돌간흙무덤, 연꽃그림, 벽화의 흔적이 곳곳에 존재
신라
순흥 어숙술간묘
595년경 축조 연꽃그림과 인물도, 을묘년어숙지술간-글씨
신라
순흥 벽화고분
539년(혹 479년)경 축조. 뱀을 목에 건 수문장, 산, 글씨-고구려 강역에서의 그 지역 통치자의 무덤일 가능성
발해
연변화룡현 정효공주묘
12명의 시종의 그림.
일본은 5세기초에 삼국의 영향을 받은 묘제가 출현하면서 장식고분들이 등장한다. 구주지역과 동경지방을 중심으로 많이 발견되는 장식고분들은 회화적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원시 암각화의 변형에 가까운 그림들이 보이고 있다. 장식고분은 100여기 이상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과 고분벽화와의 관련성 문제는 많이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열도에 고분벽화가 등장하는 것은 대개 6∼7세기로 보여지는데 고송총과 기토라고분 등은 특히 고구려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고송촌 고분의 여인들의 복장과 외모, 사신도 그림은 고구려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이고, 기토라고분의 천문도는 고구려 천문도를 그린 것
) 조선일보, 한국일보 98.6.1일자 및 조선일보 98.6.3일자 전상운씨 기고
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