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의지로서의 세계가 근원적 실재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2. 쇠렌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 무는 어떻게 경험 되는가
4.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 -자유를 희생함이 없는 국가의 성립이란 가능한가?
5. 데카르트 <성찰> - 생각하는 자아 존재의 확실성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가?
6.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 -신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7. 칸트 <순수이성비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객관적 실재가 아닌가?
2. 쇠렌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 무는 어떻게 경험 되는가
4.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 -자유를 희생함이 없는 국가의 성립이란 가능한가?
5. 데카르트 <성찰> - 생각하는 자아 존재의 확실성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가?
6.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 -신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7. 칸트 <순수이성비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객관적 실재가 아닌가?
본문내용
구체적 삶을 통해 실현해내는 의지다.
즉, 신은 대지에 자신과 닮은 인간을 만들어 자유롭게 풀어놓고 본질적 의지로써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나타나는 실존적인 의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대지를 향해 치열하게 침투하는 동시에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다시 말하면, 신은 인간다움·실존을 가능케 하는 궁극적 존재이며, 개별적인 인간의 실존적 의지는 삶을 통해 신의 본질적인 의지를 구체적으로 현현한다. 이는 소극적·수동적 삶이 자신과 신의 의지를 모두 외면하는, 오히려 인간의 나태일 뿐 신의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의 개별적인 삶이 결코 보편적인 신을 살해할 수 없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객관적 실재가 아닌가?-
20040328 철학과 1학년 안성훈
칸트는 이전의 합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객관적 실재 혹은 본체와 현상 세계를 구분한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판단이 그가 말한 선천적 종합 판단으로서 참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비록 본체가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대상으로서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본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사과를 지각한다고 할 때, 감각의 능력에 따라 개가 지각하는 사과(개는 인간에 비해 후각에 크게 의존하여 이를 지각할 것이다)와 인간이 지각하는 사과(인간은 개에 비해 시각에 크게 의존하여 이를 지각할 것이다)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 인식된 사과이전에 다를 수 없는 본래의 사과가 있을 텐데 그것이 바로 본체로서의 사과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를 합리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감각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이성적인 능력이 있고, 분명 현상 너머에 본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본체에 대해서 인간은 어떠한 지식도 얻을 수 없다. 본체에 대한 지식은 경험에 근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형이상학적 사변은 대부분은 소모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대상의 자료를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고 이 잡다한 자료들을 오성에 의해 분리·조직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 지식 습득의 한계는 감각기관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 한정되고,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결코 객관적 실재는 될 수 없다.
칸트는 합리주의자들의 본체에 대한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그 자신이 본체의 존재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 본체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고 해놓고 본체가 분명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인 듯 보인다. 비록 그 나름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칸트의 주장이나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현상 너머의 실재와 현상으로 구분하는 주장들이 나 자신에게 깊이 와 닿지는 않는다. 사실 본체들(noumena)의 세계(실재)가 철학적인 허구 혹은 설정이 아닐까. 칸트가 말한 대로 그 세계에 접근할 방법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본체의 세계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분명하게 할 수 없다. 어쩌면 본체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무가치한 일이고, 오히려 현상들(phenomena)의 세계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적합하고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실재에 관한 설명이나 믿음이 어떻든 간에, 인간의 경험과 인식에 상관없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실재라고 하는 것이 분석적으로 참이라면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결코 실재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순간 세계는 이미 실재성을 잃게 되고 경험과 오성에 의해 해석되고 조직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단지 현상들의 세계일뿐이다.
즉, 신은 대지에 자신과 닮은 인간을 만들어 자유롭게 풀어놓고 본질적 의지로써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나타나는 실존적인 의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대지를 향해 치열하게 침투하는 동시에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다시 말하면, 신은 인간다움·실존을 가능케 하는 궁극적 존재이며, 개별적인 인간의 실존적 의지는 삶을 통해 신의 본질적인 의지를 구체적으로 현현한다. 이는 소극적·수동적 삶이 자신과 신의 의지를 모두 외면하는, 오히려 인간의 나태일 뿐 신의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의 개별적인 삶이 결코 보편적인 신을 살해할 수 없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객관적 실재가 아닌가?-
20040328 철학과 1학년 안성훈
칸트는 이전의 합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객관적 실재 혹은 본체와 현상 세계를 구분한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판단이 그가 말한 선천적 종합 판단으로서 참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비록 본체가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대상으로서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본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사과를 지각한다고 할 때, 감각의 능력에 따라 개가 지각하는 사과(개는 인간에 비해 후각에 크게 의존하여 이를 지각할 것이다)와 인간이 지각하는 사과(인간은 개에 비해 시각에 크게 의존하여 이를 지각할 것이다)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 인식된 사과이전에 다를 수 없는 본래의 사과가 있을 텐데 그것이 바로 본체로서의 사과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를 합리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감각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이성적인 능력이 있고, 분명 현상 너머에 본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본체에 대해서 인간은 어떠한 지식도 얻을 수 없다. 본체에 대한 지식은 경험에 근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형이상학적 사변은 대부분은 소모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대상의 자료를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고 이 잡다한 자료들을 오성에 의해 분리·조직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 지식 습득의 한계는 감각기관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 한정되고,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결코 객관적 실재는 될 수 없다.
칸트는 합리주의자들의 본체에 대한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그 자신이 본체의 존재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 본체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고 해놓고 본체가 분명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인 듯 보인다. 비록 그 나름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칸트의 주장이나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현상 너머의 실재와 현상으로 구분하는 주장들이 나 자신에게 깊이 와 닿지는 않는다. 사실 본체들(noumena)의 세계(실재)가 철학적인 허구 혹은 설정이 아닐까. 칸트가 말한 대로 그 세계에 접근할 방법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본체의 세계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분명하게 할 수 없다. 어쩌면 본체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무가치한 일이고, 오히려 현상들(phenomena)의 세계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적합하고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실재에 관한 설명이나 믿음이 어떻든 간에, 인간의 경험과 인식에 상관없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실재라고 하는 것이 분석적으로 참이라면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결코 실재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순간 세계는 이미 실재성을 잃게 되고 경험과 오성에 의해 해석되고 조직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단지 현상들의 세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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