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의 경영철학와 문화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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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호암 이병철의 경영철학와 문화에 대한 사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1


본론........................................ 2
1절 성장과 교육
제2절 한국제일의 기업
1.사업가로 입지
2. 삼성의 모체 삼성상회의 설립
3. 삼성물산공사 설립
4. 한국전쟁과 삼성물산 주식회사
5. 제조업진출의 의지
6. 한국최대의 기업그룹건설
3절 호암의 경영철학과 생활신조
1. 사업보국
2. 인재제일
3. 합리추구
4. 논어에 바탕을 둔 생활철학
4절 도의 문화 진흥운동
1. 도의 문화 진흥운동
2. 육영사업에 대한 의지
3. 민족예술 부흥사업
아미타삼존도 (국보218호)-그림1{삼성미술관}
지장도 (보물784호)-그림3{삼성미술관}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국보133호)-그림2{삼성미술관}


결 론............................................. 11

참고문헌................................. 12

본문내용

나올지 모르지만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삼성의 이미지는 높여야 할 것이다.」
-1968년 12월 삼성사장단 회의 석상-
2. 육영사업에 대한 의지
호암 1956년 국내기업최초로 공개시험에 의한 사원채용을 제도화하였다. 인재양성이 국가의 백년대계이며 기업의 장래를 보장해줄 가장 중요한 계획이다.
영남대학교의 모체가 된 대구대학교의 기반을 쌓아 올렸고 성균관대학교를 재단해서 운영한지 10년 만에 정부에 익임
3. 민족예술 부흥사업
1977년 삼성문화재단이 삼성 미술재단으로 새 출발할 즈음 호암 미술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민족예술, 전통계승 수용, 전시 등의 활동을 재단의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개척하였다. 호암은 30대 초반 대구에서 양조업을 경영할 때부터 이에 우리의 고서화와 신라토기,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등에 매료되어 수집을 시작하였으며 점차 철물, 석물, 조각, 금동상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나이가 들면서 민족문화의 유산을 해외에 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우리의 고미술품 수집에 더욱 정열을 기울였다. 호암이 수집한 골동서화는 1천여점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었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도 10여점이나 됐다. 이들 문화재의 전부를 호암미술관에 기증했다.
1982년 4월22일 호암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그동안 열의를 가지고 문화재를 수집한 것은 그것이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우리민족의 자각심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미술관에 전시된 문화재와 미술품은 하나하나의 작품이 깊숙이 간직된 예술성과 역사의 향기에 의하여 선택된 것들이다.」
호암미술관개관식에서....1982.4.20
호암이 민족예술 진흥에 바친 열정과 유지는 그 빛나는 업적과 함께 재단의 발전으로 계승되었다. 재단은 그룹 제2창업시대를 맞아 현대 미술 분야를 크게 확충하고 국악발전 지원사업 영화 예술후원사업 등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국내 최대 최고 수준의 종합문화 진흥센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미타삼존도 (국보218호)-그림1{삼성미술관}
지장도 (보물784호)-그림3{삼성미술관}
- 1999년 일본 大和文華館에서 열린 고려불화전에서였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즉시 사들이려 했으나 예산이 없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호암이 곧 현지로 보내 매입을 타진했으나 일본 측에서 한국인에게 그림을 팔 수 없다하여 호암은 미국인을 앞세워 이 그림을 미국으로 가져가게 한 다음 비로소 국내로 들어오는 순서를 밟았다. 일본으로 밀반출된 숱한 문화재중 가장 소중한 것의 첫 번째 환국케이스가 되었다.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국보133호)-그림2{삼성미술관}
1970년 국보133호로 지정된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는 일본에 밀반출되었지만 일본 내에서 100만 달러를 호가할 정도로 고가여서 사는 사람이 없게 되자 어느 중개인이 호암에게 의사를 타진해 결국 3500만원에 환국한 귀중한 문화재다
그림1) 아미타 삼존도(국보218호)
그림2)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국보133호)
그림3) 지장도(보물784호)
결 론
호암의 문화재사랑은 그의 선친에게서 물려 받았다한다. 선친은 찾아오는 묵객들과 시문 답을 하곤 했다. 이런 환경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서화나 도자기를 수집하는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다고 호암은 회고했다. 호암의 이런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작한 서화나 문화재수집이 현재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물량과 비교해 국보는58%,보물은75% 해당하는 량을 삼성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한사람의 신념으로 인해 모든사람이 본다는 것은 기업의 이윤획득보다 더 값진 것이라 생각된다. 물질의 공허함을 정신적으로 충만 되게 한다는 것은 곧 예술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 리포트에서는 한사람의 철학이 한사람의 삶의 궤적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 인가 알고 싶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함으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원칙에 철저한 호암은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민족이야 말로 기업 활동의 가장 근본임을 역설했다. 한기업인의 신념으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는 어느 마케팅 전략보다 뛰어난 한 차원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고품격의 이미지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문화재를 보는 모든사람 의 가슴에 아름다움을 심어 줄 그런 감동의 드라마는 곧 우리문화인 것이다. 최근에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는 재계 리스트와는 사뭇 다르게 재단리스트가 집중적으로 이목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시각으로 재계를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삼성은 50개 재단 리스트 중 6개 재단이 포함되어 있고 제 2위에 링크된 삼성문화재단 비룻 삼성의료원과 노블카운티로 유명한 삼성생명공익재단(3), 삼성이건희장학재단(6), 삼성복지재단(16), 삼성언론재단(46), 등이 모두 삼성그룹의 뒷받침 하에 운영되고 있는 재단들이다.
현대인들이 쉴 수 있는 곳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영원한 축복이 아닐까 싶다. 박물관에서 또는 어느 장소에서든 우리에 도자나 공예품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행복일 것입니다. 전통공예를 하는 저로서는 이렇듯 우리문화에 관심 있는 기업인들과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가는 우리문화에 관심을 보냈으면 합니다.
-참고문헌-
* 황명수, 한국기업의경영의역사적성격, 신양사, 1997
* 삼성미술관, 문화의향기30년, 삼성미술재단, 1995
-인터넷검색-

http://www.sfoc.org
(삼성문화재단 홈페이지)

http://www.leeum.org
(삼성미술관)

http://www.hoamprize.or.kr
(호암재단)
*한국경제 2004-11-12 (천자칼럼) "고려불화"
*머니투데이 2004-11-11 "삼성낭만프로젝트"
*매일경제신문 2004-11-10 "사회 각분야에 문화인프라 구축"
*문화일보 2004-10-25 <기고> 문화사랑의 결실 '리움'
*헤럴드경제 2004-10-14 "세계적인 미술관 탄생"
*시사저널 2004-10-14 문화재사랑 '부전자전'
* " '국보부자' 이건희회장
*헤럴드경제 2004-07-28 CEO 좌우명에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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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25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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