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사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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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두율 사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연구동기

Ⅱ. 가설설정

Ⅲ. 연구방법

Ⅳ. 가설검증

<1> 내재적 접근법

<2> 경계인

<3> 송두율의 문제되는 행적과 정당화되는 이유


Ⅴ. 결론

본문내용

5. 24.자 국정원 진술
그러나 오길남은 당초 국정원에서 야채상 김종한의 권유로 북한대사관 백서기관을 만나 입북을 결심하고 "85. 11. 29. 오후 2시 가족과 함께 Kiel에서 Hamburg로 가서 … Berlin에 도착했는데 출발 전날 송두율에게 북한에 가게 됐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만날 약속했기 때문에 … 송두율과 그의 가족을 만났다"고 진술하여 입북결심을 굳히고 이미 북한으로 가는 도중에 비로소 송두율을 만났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 뒤 이어지는 진술에서도 당시 송두율이 "북한도 변해야 하는데 오형이 북에 가서 경제학자로서 활약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하여 기왕 북에 가는 길이라면 북한의 변화를 위해 일하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오길남은 1993년 자유문학사에서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
) 1993. 2. 25. 발행 오길남의 저서
을 펴내면서 탄원문에서 자신의 입북과정 관련 인물로 윤이상, 직접권유자 김종한을 들고 있을 뿐 송 교수는 전혀 이름이 나오지 않다. 또한 오길남은 현재 국정원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바 그의 현재 진술은 과거 위 두 진술에 비추어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송 교수는 오길남은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입북을 권유한 사실이 전혀 없다.
5. 1973년부터 2003년 까지 방북하면서 여행경비 기타 공작금등 15만불을 받은 사실
1). 항공비 등 보조.
송두율은 73, 79, 84, 88, 91년까지 7~8차례 왕복항공비 등으로 도합 약 2만불 가량을 보조받았다고 자진하여 진술한 바 있다. 이부분은 본인이 명백히 반성의 뜻을 밝혔다.
2). 자료비 6, 7만불.
국정원은 송두율이 공작금으로 15만불 가량을 받았다고 자백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어차피 송두율이 얼마를 받았는지는 수사기관도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송두율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자발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송두율은 80년대 중반까지 독일 오펜바하시에 있었던 "한국학술연구원"(원장은 뷔르쯔부르그대학 정치학 박사 김길순으로 80년대에 귀국하여 90년대에 사망하였다.)을 되살리기 위해 경비가 필요하여 북측에 학술지원 요청을 하여 6~7만불을 보조받았다. 이 돈으로 남·북 해외에 있는 남북한 관련 자료를 구입하고 연구원 인건비 지급하는데 썼으며 훔볼트대학에 초빙교수로 가게 된 1994년 여름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겨 이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독일 에센시에 있는 재단법인 '아시아재단'의 한국연구소에 기증하였으며 이 연구소는 베스트팔렌 주정부의 제정지원으로 운영되면서 모든 자료를 전산화하여 한국문제를 연구하는 독일, 유럽, 한국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6, 7만불은 결코 공작금이 아니다. 국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공작에 쓰인 것인지 객관적 증거를 통해 명백히 밝히면서 공작금 이야기를 하여야 할 것이다.
6. 1995년부터 2003년 까지 6차례에 걸쳐 지령을 받고 남북 해외 통일 학술회의를 열어 남한 학자들을 포섭한 사실
- 국정원은 송두율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북해외통일학술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1) 학술회의 자료집.
가. 자료집에 있는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가 성사되기까지"라는 경과문에서.
"회의를 주관한 한국일보사와 관계학자들은 이번 회의가 남북학자들이 분단후 처음으로 공동개최하는 학술심포지엄이라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으며)… 심포지엄의 단초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가 92년부터 남북한 정치학자 대회를 추진한 데서 비롯되… 한국정치연구소의 이같은 의사는 평양을 방문한 제3국의 한 학자를 통해 북측에 전달되(었으나)… 북측이 마지막 순간에 불참을 통고해 무산되(었으며)… 한국정치연구소 소장인 길승흠 교수와 독일 훔볼트대 송두율 교수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아… 베를린을 방문한 길 교수는 송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송 교수는 최대한 노력을 약속했… 송 교수는 심포지엄의 성사에 적극적이었… 남북 양측은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밝혔다.
나. 그 이후 남측통일포럼의 제안도
"난항을 거듭한 끝에 … 백영철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온화하면서도 논리적인 설득력, 송두율 교수의 균형잡힌 조정, 그리고 북측 대표단의 인내와 타협정신을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된 바 있다.
2) 길승흠, 백영철 교수의 신문인터뷰
) 한계레기사
.
가. 길승흠 교수는 신문인터뷰에서 위 자료집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학술회의가 추진되었으며 "북한 노동당이나 김용순 비서 등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학문교류 차원에서 열린 행사였(으며)… 한국일보사가 대우그룹에서 지원받은 돈 가운데 1억원 정도를 후원했다"고 진술하였고,
나. 백영철 건국대 교수도 "통일학술회의는 한국학자들이 제안하고 중앙일보 등 언론사와 에스케이, 삼성, 엘지, 대우 등 한국기업에서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순수한 학술회의(로서) 북한 쪽에서 단1원도 받지 않았다"면서
"통일학술회의가 북한의 통일전선 공작에 이용됐다는 주장은 이념을 넘어 남북간 학술교류에 상당한 업적을 쌓은 남북문제 전문가들을 폄하하는 것"이고
"송 교수는 남북한 학자들 사이에 회의주체를 두고 이견이 있을 때 조정자 구실을 했을 뿐"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7. 소결
송두율의 많은 문제시되는 행적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이 아니거나 혹은 그의 학술활동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Ⅴ. 결론
이상에서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이해하는 데에 옳은 방법이고 그는 경계인이고 결국 시대의 희생양이며 판결은 잘못되었다'라는 가설에 대한 검증을 해 보았다. 송두율은 사상적인 면으로 볼 때에 경계인이고 그의 내재적 접근방법은 오류가 있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그의 문제시되는 행적에 대한 반론을 제기 함으로써 판결의 부당함을 입증하였다.
그러나 그의 내재적 접근법은 오류가 있는 등 장단점이 있고 여러번 말을 번복하는 등은 문제시 삼아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송두율이란 학자는 현재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구 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의,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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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30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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