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업적과 중국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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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시황의 업적과 중국사의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시작하는 말

Ⅱ. 진시황의 출생과 성장

Ⅲ. 중국 최초의 통일 1> 통일 배경 2>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의의

Ⅳ. 진시황의 통일정책
1> 황제(皇帝)의 칭호 사용
2> 관료제도의 수립과 군현제 실시
-행정체제의 수립
3> 동문(同文)-문자의 통일
4> 도량형, 화폐의 통일
5> 동궤(同軌)-차륜(車輪)푝의 통일
6> 사상통일 정책- 분서갱유(焚書坑儒)
ⅰ분서(焚書), ⅱ갱유(焚書)
7> 만리장성의 건설

Ⅳ. 진시황, 그의 욕망 - 시황릉과 아방궁

Ⅶ. 맺는말 --진시황의 업적과 중국사의 의의

―참고 문헌―

본문내용

가 목적이자 쾌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황릉(始黃陵)의 건축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황제는 욕망이 성취되는 과정만을 즐긴 것이다.」 인물로 보는 중국사 p32
아주 꼼꼼하게 정무에 힘쓰는 반면 거대건축을 세우거나 선약 찾기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 부질없이 낭비를 거듭하는 양극단을 오가는 진시황. 극단적인 합리성과 동시에 극단적인 비합리성이 묘하게 섞여 있는 그. 그의 이런 성향이 불안정한 불균형을 가져왔으리라. 이런 요소가 통일 제국 진의 단명을 야기했다 생각한다.
Ⅶ. 맺는말 --진시황의 업적과 중국사의 의의
이제까지 진시황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크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시키기 전 내용, 통일이후의 내용으로 나누어서 두 부분으로 정리 해보았다. 먼저 진시황에 대해 평가하기 전에 그가 처해 있던 시대배경과 객관적인 상황, 통치자로서의 정책들을 파악하고자 했다.
진시황은 七雄이 패권을 다투어 장기간에 걸친 혼전(混戰)으로 피폐해진 中國 대륙에서 민심의 요구와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추세에 가장 먼저 이에 응했다. 中國史에서 中國을 통일하여 최초로 중앙집권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통일 주체국을 유지시키기 위해 中國대륙을 동일화시키는 여러 정책들로 향후 중국 대륙의 중앙집권적 전제정치체제의 본보기가 되었다. 진시황의 통일정책은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영향과 무리한 토목공사와 법치주의의 시행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 멸망의 요소를 만들게 된 부정적 영향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로 다져진 진시황의 통일 제국은 中國史에서 이후 중국의 통합에 절대적인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진시황의 업적 중 이것이 가장 큰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현재의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대륙이 통일되기 이전에 중국(中國)은 지금의 “중국”과 다른 의미로 쓰였다. http://www.naver.com 사전지식
이전의 역사서에 나타나는 중국이라는 단어는 단지 ‘나라의 중앙’ 또는 ‘수도’라는 뜻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진시황의 통일한 이후부터 “중국 현재 쓰이는 공식 명칭으로서의 “중국(中國)”은 쑨원의 중화민국 건립이후부터 나라 공식 명칭으로 채택 되었다.
”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비록 진시황이 죽음으로 제국을 받치고 있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부재와 가혹한 법치주의 체제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으로 거대한 통일제국은 단명하지만, 진시황의 통일 제국은 이후 중국인들에게 비로소 “中國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게 한다. 서로 같은 나라의 사람이란 인식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생겨난 것이다.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docid=253070
그로 인해 삼국(三國) 분립시대나 남북조분열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또한 중국인들이 한족(漢族)이라 불리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왕조 중 하나인 漢(한)나라가 그렇게 부강하고 발전 할 수 있게 되는 기틀을 마련한 것도 이 진시황의 통일 제국이다.
진시황이 비록 가혹한 법치주의로 백성들을 잔혹하게 다스렸던 폭군이라고 유학자들과 역사가들에게 신랄한 비평을 받지만 그래도 이런 그의 위대한 업적은 결코 무시 되어서는 안된다.
진시황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때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원대한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또한 대단하다. 그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대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얼마만큼 희생을 무릎 써서 위험을 감수했을까? 그의 끈기와 추진력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생각한다. 그의 철권통치가 이어진 12년 동안 전국적으로 중대한 변고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도 그의 노력과 유능함을 말해준다. 중국 그 거대한 행보, P90
또한 통일제국 동안 수백년동안 전쟁으로 황폐해진 광대한 국토가 잠시나마 평화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진시황에게 있어서 그의 엄격하고 혹독한 통치는 혼란스럽고 불안전한 중국대륙을 통치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지 않았을까?
진시황 그가 성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너무 가혹하게 법치만을 고집했고 백성들의 인성과 인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진시황의 가혹한 법치체제는 분열의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나라를 유지 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통일 된 대제국을 이끌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본이 되는 백성을 잡아 이끌 다른 아이템이 더 필요하지, 법치체제만으로는 거대한 통일제국을 유지 시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혹한 통치로 진시황을 폭군으로 볼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성을 혹사 시켰기 때문에 폭군이라 본다면, 이후 유목민족들에게까지 “위대한 칸“이라 불리운 동아시아국가의 위대한 제국의 왕, 한나라의 한무제(漢武帝) 역시 백성들을 혹사 시켰다는 점에서 폭군이라 불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이 진시황을 한 시대를 평정했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위대한 통치자, 중국 숱한 민중의 피와 땀을 빼앗은 결코 성왕이라 할 수 없는 절대 군주였을 따름이라 본다.
―참고 문헌―
1.심규호 지음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일빛출판사 2002년
2.김구진. 김희영 편저 <이야기 중국사> 청아출판사 1985년
3.안정애. 양정현 지음 <한눈으로 보는 중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4.진순신. 오자키호츠 <영웅의 역사> 솔출판사 1999년
5.왕웨이 외 지음 <손에 잡히는 준국역사의 수수께끼> 대산출판사
6.조관희 엮음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7.강문호 편격 <알기쉬운 중국역사> 삼협종합출판부 1998년
8.이인호 지음 <이것이 중국이다> 아이필드
-참고사이트-
www.tourtotal.com
www.chinakorea.co.kr
www.qinex.com
http://www.naver.com 사전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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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2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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