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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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밥 딜런

2. 존 바에즈

3. 제퍼슨 에어플레인

4. 컨트리 조 & 더 피시

5. 짐 모리슨

7.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

8. 존 레논

9. 밥 말리

10. 섹스 피스톨즈

11. 클래시

12. 핑크 플로이드

13. 브루스 스프링스틴

14. 밥 겔도프

15. 스티브 밴 잰트

16. 유투

17. 미드나이트 오일

18. 트레이시 채프먼

19. 시네드 오코너

20. 퍼블릭 에니미

21. 프랭크 시나트라

22. 엘비스 프레슬리

23. 몽키즈

24. 린다 론스태드

25. 마이클 잭슨

26. 마돈나

27. 뉴 키즈 온 더 블록

28. 블루스

29. 우드스탁 페스티벌

30. 그래미상

31. 랩 뮤직

본문내용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존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비틀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모험을 한 주체는 언제나 존이었고, 음악적이든 음악 외적인 것이든 비틀스의 영향력은 존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만으로 아니라 ‘몸짓’으로 , ‘저항 행휘’로 여러 형태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9. 밥 말리
밥 말리는 자메이카 북쪽 연안 중앙부에 위치한 작은마을 센트안에서 종주국 영국의 해군 대좌와 자메이카 여성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했다. 자라나기는 이 나라의 수도인 킹스턴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무법천지로 악명이 높은 ‘트렌치 타운’의 슬럼가에서 였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이 곳에서 말리는 어린시절 부랑아로 지냈다. 그는 그 속에서 체험으로 자메이카 흑인들의 ‘절대적 박탈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말리의 인터내셔널 히트곡이자 짜릿한 감흥을 전해주는 명작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는 이를 확인시켜주는 노래이다. 청년기의 말리는 자메이카 흑인들이 겪는 고통과 권리 박탈의 실상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분노를 전 세계에 터뜨리겠다는 혁명적 의식으로 정신무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레게’라는 이름의 자메이카 토속 음악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말리는 노래의 운동적 가치를 누구보다 확신했다. 스스로도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80년까지 통산 10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세계를 향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듯 쉴 새 없이 고발과 선동의 노래를 외쳤다. 말리의 레게에 대한 자부심과 투신은 대단한 것이었다. 레게의 가치를 강조하는 노래가 무수히 많다. <펑키 레게 파티>,<킹키 레게>,<기운을 내요>등등.. 말리는 레게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 세계 흑인들에게 자각과 의식고양을 요구했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의 폭정에 대한 총궐기를 제창하는 것으로 큰 가닥을 잡아나갔다. 마리는 <아프리카여 단결하라>라는 음반으로 아프리카 정신을 세계 만방에 고했다는 점에서 근대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제 3세계 아티스트로 결론 내려도 무방하다. 최근 세계 팝계는 아프리카 남미 및 아랍국가등 제 3세계 음악이 활발하게 소개되 소위 ‘월드 비트’ 붐이 신속하게 파급되고 있는데, 이 모두 그가 뿌려놓은 씨앗이 싹트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 섹스 피스톨즈
한 때 영국에 섹스 피스톨즈라는 요상한 이름의 록 밴드가 있었다. 이 때 젊은이들은 사회적으로 박탈되어 직업도 없고 최소한의 특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으며 ‘허무’와 벗을 해야 했었다. 사무친 이들은 이윽고 펑크음악이라는 즐거움을 손에 넣고 현실에 속수무책인 기존체제를 향해 극렬한 분노와 반항을 폭발시키고야 만다. 이 펑크부대를 지휘한 사령관이 바로 섹스 피스톨즈였다. 이들은 뉴욕에서 70년대 초반 태동된 펑크에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이입시켜 독특한 ‘영국 펑크’를 창조해 영국 청년이 경험하고 있던 허무와 새세계 갈망의 정서를 대변했다. 섹스 피스톨즈는 외모와 무대 매너에 있어서도 펑크의 표준을 제공했다. 짧게 잘라 치켜세우고 빨강 초록 노랑 등등. 총천연색으로 물들인 머리, 찢어진 티셔츠를 입었고 관중에 대한 태도는 한마디로 난폭 일변고 때론 먹을 음식물을 토해 던지는 등 상상 밖의 해프닝을 연출했다. 혁명적 반역집단 섹스 피스톨즈 스토리는 70년대 초반 ‘스왕커즈’때부터 시작된다. 이때의 멤버는 폴 쿡· 스티브 존스· 윌리 나이팅게일 그리고 글렌 매트록이었으며, 75년 펑크 서클 막후의 대부인 말콤 맥라렌을 만나면서 섹스 피스톨즈로 재탕생한다. 말콤은 펑크 이미지 창출의 귀재였다. 음악 형태, 외모와 무대매너, 멤버들의 성향 그리고 활동 방식등이 시사하듯 이들의 메시지는 ‘기존체제의 철저한 해체’ 바로 그것이었다. 이상향은 영국의 무정부상태였다. 펑크 록이라는 용어가 뉴 웨이브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도 실제로는 피스톨즈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펑크라는 말이 붙어가지고는 공연장을 대여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11. 클래시
클래시도 피스톨즈처럼 런던 젊은이들의 분노를, 심층에 내재하는 혼돈된 에너지를 격렬한 펑크 사운드로 전환시켜 놓은 그룹이었다. 탄생 배경만 피스톨즈와 같은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클래시의 출발 자체가 피스톨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리더인 조 스트러머가 런던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을 구경하고 그만 ‘감동되어’ 펑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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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5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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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8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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