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중심적 사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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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면, 북친의 그것은 사회생태학이다."21)
동시대의 사회(학)적 정향성을 가진 생태사상가들, 말하자면, 루이스 멈포드(Lewis umford),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 Schumacher), 더트킨드(E. A. Dutkind)등과 마찬가지로 북친은 자신의 최초의 지적 관심은 도시와 농촌의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북친은 인간의 거주 환경이나, 지구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리, 보호, 보존의 이념은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보수적이며, 인간중심적이라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사회관계에 대한 생태학적 혁명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환경운동도 환경관리주의, 환경관리윤리(Ethics of Environmental Management)22)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장기간의 지배와 억압적인 인간 정신과 체제인데,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억압과 지배를 포함한다. 인간과 자연의 갈등은 인간과 인간 간의 갈등이 확대되어 인간과 자연의 갈등이 발생한다. 생태운동(ecological movement)이 모든 측면에서의 지배의 문제를 포괄하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의 생태운동의 근원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생태운동이 단순히 오염 통제나 환경 보존을 위한 통제라는 개혁적 수준에 머문다면, 한마디로 보다 광범위한 혁명의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환경주의(environmentalism)'23)
에 머문다면 자연적, 인간적 착취라는 기왕의 체제에 봉사하는 운동이 되고 말 것이다."24)
위에서 나는 '환경관리윤리'를 이야기했다. 북친이 비판하는 것은 환경윤리가 아니라, 바로 '환경관리윤리'이다. 환경관리윤리가 무엇인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환경의 활용과 이용에 관한 윤리를 나는 "환경관리 윤리"라 부르고자 한다. 전통 윤리학은 인간의 이해타산적 관심사만을 도덕적으로 문제삼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윤리로서도 '환경의 활용에 관한 인간중심적 윤리'가 성립되는 것은 자명하다. 인간중심적 환경관리 윤리는 대체로 미래의 세대까지를 포함한 인간의 삶의 질이 증진될 수 있는 방향으로 환경이 이용되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이른바 '환경윤리'라는 이름 하에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은 환경관리 윤리이다. 그러나 환경관리 윤리를 확립하는 일이 상식적이고, 간단한 것이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펴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밝힌 두 조건을 염두에 둔다면 '환경관리 윤리'가 바로 환경윤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윤리는 인간 이외의 것에 대한 도덕적 기초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에, 환경관리 윤리는 가치의 범위를 인간의 삶과 이해에 국한시킨다. 필자 역시 인간의 삶과 이해타산 뿐만 아니라, 동물의 삶과 관심사도 나름대로 정당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환경에 대한 진정한 의식이 시작된다. 이런 논점은 이미 많은 서양의 학자들이 유사하게 주장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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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9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9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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