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비중이 큰 두 종교
2.두 종교간의 갈등
3.도대체 왜?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4.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화합의 노력-
5.추천도서 함께 나누기
함께 사랑한다는 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
전시회에 간 예수, 영화관에 간 부처
성서속의 붓다
귀향
6.생각나누기
2.두 종교간의 갈등
3.도대체 왜?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4.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화합의 노력-
5.추천도서 함께 나누기
함께 사랑한다는 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
전시회에 간 예수, 영화관에 간 부처
성서속의 붓다
귀향
6.생각나누기
본문내용
있다.
우리가 후대에 발견된 사해(死海)의 문서를 자세히 검토해 볼 때 기독교의 사고방식은 히브리보다는 인도사상에 가깝고 특히 불교에 가깝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그것에 대하여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마호멧도 무역상들을 따라 수많은 땅을 여행하였지만 코란에는 여행에 대한 언급이 없다. 특히 예수는 고국에 돌아와 인간을 교화하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반면에 예수 시대에 유태교 내부에서 종교운동을 일으킨 자는 많았지만, 예수처럼 붓다의 자비나 사랑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나 세례 요한은 결코 자비나 사랑을 설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예수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인도사상을 몸에 익혔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본다. 예수가 인도에서 수행을 했다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주장하고 있다.
요즘 많은 지식인들과의 교류, 특히 기독교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은 이러한 사상들에 대하여 많은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기독교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거나 우월하다는 주장 이전에 인류 역사의 양대 산맥인 두 종교의 만남이자, 동서양의 결합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성서 속의 붓다>는 법구경과 산상수훈을 비교하고 불교와 기독교의 전반적인 공통점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그 뜻이 매우 크다.
* 귀향 -틱낫한-
* 틱낫한 스님
열여섯살에 스님이 되어 고향과 구도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시와 소설과 철학책을 백 권 이상 집필하고, 대학들과 봉사 기관들을 설립하고, 보트 난민들을 구제하고, 파리 평화회의에 불교 대표단을 인솔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로부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하신 분으로, 프랑스 남서 지방에 오얏골을 세우셨습니다.
* 오얏골의 크리스마스
오얏골은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의 요새였지만 지금은 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불교도를 위한 곳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오얏골에서 가장 큰 절기 중 하나고, 또 여름 안거를 빼면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날 여기 모인 비구, 비구니스님들은 모두 프랑스, 타일랜드, 영국, 아일랜드, 미국, 독일, 남아프리카, 베트남, 일본 등지에서 온 불자들입니다. 이 날의 찬가와 경전은 기독교와 불교, 두 전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불교 독경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면서, 선물 교환이 있었고, 크리스천과 불교도들을 위한 헌화도 있었습니다. 만찬에는 그곳에 모인 이들이 속한 나라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들이 나왔습니다. 오얏골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있는 유명한 사원에서 온 신부님들과 수녀들도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 중 절반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전통적인 동양의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나머지 절반은 구석에 쌓아놓았던 플라스틱 의자들을 가져와 앉았습니다.
[귀향-틱낫한p.10]
* 예수님과 부처님의 만남
스웨덴의 한 영화제작 : 예수님과 부처님이 오늘 만나신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실 것 같습니까?
틱낫한 스님 : 예수님과 부처님은 오늘만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께 낮에도 만나셨고 어젯밤에도 만나셨고 또 내일도 만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부모로, 조상으로 모시는 예수님의 자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불교인은 부처님의 자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인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인과 기독교인이 만나면 결국 부처님과 예수님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 분이 매일 만나는 것이지요.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동양에서도, 부처님과 예수님은 매일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의 대화 :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요즘은 모든 것이 더 어렵지요? 옛날에 비하면 솔직하기도, 용감하기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기도 너무 어렵지요?\"
“믿음, 용기, 사랑 등 허물어진 것을 새로 세우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그것이 쉽게 이해되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효과적일 수 있겠소?”
=> 우리는 지금 개인주의과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무지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나 파괴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부처님에게도 도움이 필요하고, 예수님에게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관념이 아니고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생생한 실체이기
우리가 후대에 발견된 사해(死海)의 문서를 자세히 검토해 볼 때 기독교의 사고방식은 히브리보다는 인도사상에 가깝고 특히 불교에 가깝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그것에 대하여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마호멧도 무역상들을 따라 수많은 땅을 여행하였지만 코란에는 여행에 대한 언급이 없다. 특히 예수는 고국에 돌아와 인간을 교화하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반면에 예수 시대에 유태교 내부에서 종교운동을 일으킨 자는 많았지만, 예수처럼 붓다의 자비나 사랑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나 세례 요한은 결코 자비나 사랑을 설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예수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인도사상을 몸에 익혔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본다. 예수가 인도에서 수행을 했다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주장하고 있다.
요즘 많은 지식인들과의 교류, 특히 기독교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은 이러한 사상들에 대하여 많은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기독교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거나 우월하다는 주장 이전에 인류 역사의 양대 산맥인 두 종교의 만남이자, 동서양의 결합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성서 속의 붓다>는 법구경과 산상수훈을 비교하고 불교와 기독교의 전반적인 공통점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그 뜻이 매우 크다.
* 귀향 -틱낫한-
* 틱낫한 스님
열여섯살에 스님이 되어 고향과 구도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시와 소설과 철학책을 백 권 이상 집필하고, 대학들과 봉사 기관들을 설립하고, 보트 난민들을 구제하고, 파리 평화회의에 불교 대표단을 인솔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로부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하신 분으로, 프랑스 남서 지방에 오얏골을 세우셨습니다.
* 오얏골의 크리스마스
오얏골은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의 요새였지만 지금은 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불교도를 위한 곳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오얏골에서 가장 큰 절기 중 하나고, 또 여름 안거를 빼면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날 여기 모인 비구, 비구니스님들은 모두 프랑스, 타일랜드, 영국, 아일랜드, 미국, 독일, 남아프리카, 베트남, 일본 등지에서 온 불자들입니다. 이 날의 찬가와 경전은 기독교와 불교, 두 전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불교 독경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면서, 선물 교환이 있었고, 크리스천과 불교도들을 위한 헌화도 있었습니다. 만찬에는 그곳에 모인 이들이 속한 나라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들이 나왔습니다. 오얏골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있는 유명한 사원에서 온 신부님들과 수녀들도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 중 절반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전통적인 동양의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나머지 절반은 구석에 쌓아놓았던 플라스틱 의자들을 가져와 앉았습니다.
[귀향-틱낫한p.10]
* 예수님과 부처님의 만남
스웨덴의 한 영화제작 : 예수님과 부처님이 오늘 만나신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실 것 같습니까?
틱낫한 스님 : 예수님과 부처님은 오늘만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께 낮에도 만나셨고 어젯밤에도 만나셨고 또 내일도 만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부모로, 조상으로 모시는 예수님의 자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불교인은 부처님의 자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인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인과 기독교인이 만나면 결국 부처님과 예수님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 분이 매일 만나는 것이지요.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동양에서도, 부처님과 예수님은 매일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의 대화 :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요즘은 모든 것이 더 어렵지요? 옛날에 비하면 솔직하기도, 용감하기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기도 너무 어렵지요?\"
“믿음, 용기, 사랑 등 허물어진 것을 새로 세우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그것이 쉽게 이해되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효과적일 수 있겠소?”
=> 우리는 지금 개인주의과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무지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나 파괴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부처님에게도 도움이 필요하고, 예수님에게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관념이 아니고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생생한 실체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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