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선지자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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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엘리사의 선지자직 계승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요

2. 본문구조

3. 본문내용 분석 (열왕기하 2장1절-18절)

4. 역사/문화적 배경 연구

5. 문학적 콘텍스트

6. 신 학

본문내용

위해 그 육체를 찾으려 하였다.
여호와의 신 - 여기서 회리 바람과 여호와의 신에 대한 연관성이 나타난다. 즉 11절에서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은 여호와의 신이 그를 인도해 가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회리 바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능력의 도구이기 때문인 것이다(H. W. Robinson). 한편 왕상 18:12에도 여호와의 신이 엘리야 선지자를 인도하심으로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즉 선지자의 생도들은 이전과 같이 하나님의 신이 엘리야의 영을 인도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영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엘리야의 영육 전부가 아니라 육신과 분리된 영이라고 선지 생도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사상은 유대 묵시 문학(示文學)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Ascension of Isaiah 6:14).
보내지 말라 - 히브리 원문은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라는 의미로 엘리야의 승천에 대한 엘리사의 확신에 찬 신앙을 나타낸다.
=====2:17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强請)하매 - \'부끄러워하도록\'은 \'...까지\'를 뜻하는 \'아드\'와 \'실망하다\'를 의미하는 \'부쉬\'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그들이 그가 부끄러워할 때까지\'라는 의미이다(Gesenius, Keil & Delitzsch). 그러나 70인역(LXX)은 이것을 \'그가 자기의 거절을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려울 때까지\'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8:11에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선지 생도들의 강청에 못이겨 엘리사가 \"보내라\"고 말했을 때는 그는 단지 그들의 불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엘리사의 충고 대로였다. 이러한 것을 살펴 볼 때 본 절은 단지 엘리사가 \'만일 너희가 그것을 고집한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민족을 위해서 보내라\'라는 의미로 허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2:18
본절은 다른 선지자의 생도들보다 영적 통찰력이 뛰어난 엘리사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영적 능력과 더불어(14,15절) 이같은 통찰력을 구비함으로써 엘리사는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적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본절에서는 엘리야의 사라짐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사실성과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말이 이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공식화되고 있다.
4. 역사/문화적 배경 연구
1)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이스라엘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신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택하시어 10지파를 갈라 북 이스라엘왕국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견고한 집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왕상 11:30). 그러나 여로보암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바꾸어 섬길 뿐만 아니라 전 백성들도 그와 함께 경배하도록 종용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폐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왕들도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에 계속된 찬탈과 반목의 역사가 지속된다. 이런 참혹한 상태에서 강력하게 왕권을 쥔 사람이 오므리였다. 오므리는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력하게 세워나갔으므로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초 강대국가였던 앗시리아에까지도 오므리의 명성이 들릴 정도였다. 이처럼 오므리는 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정책과 별반 다른 점이 없었으며 특히 북방의 두로와 시돈과 화친정책을 썼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아람이 이스라엘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는데 아람 배후에 있는 두로와 시돈과 화친을 맺음으로 아람이 쉽게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화친정책으로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켰다. 그리고 아합은 오므리를 이어 북 이스라엘왕국의 왕이 되었다. 이 아합에 대해 성경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 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산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16:30-33)고 기록한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앞날이 결정적인 변화를 갖게 된다. 곧 이전의 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형상을 바꾸어 섬겼다. 그러나 아합시대에 와서는 아예 여호와에 대한 어떤 종교 행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철저하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제거하고,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사장을 세우며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게 경배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도의 시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전 모든 왕보다 아합이 악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의 상황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버리게 되고 말았다.
2) 정치적 배경
아람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세계의 중심은 하나로 집중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강력한 앗시리아였다. 그 부활한 왕국은 아다드-니라리 2세(Adad-nirari II, 911-891)통치하에 줄기차게 서쪽으로 움직여 왔다. 이것은 투쿨티-니누르타 2세(Tukuti-ninurta II, 890-884)때 더 강화되었는데, 아합과 여호사밧의 때에 이르러서는 앗슈르-니시르팔 2세(Assur-nasirpal II, 883-859)때 엄청나게 위협적인 세력으로 다가오게 되었다.(메릴:1999. 455)
모압은 이스라엘을 오므리 시대 이래로 봉신 국가로서 섬겨 왔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치명적 사고와 그의 동생 여호람의 계승 후에 이스라엘의 통치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모압 족속은 메사라는 이름의 강력한 리더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아합의 죽음과 아하시야의 부상으로

키워드

선지서,   신학,   구약학,   엘리사,   주해,   설교,   교회,   성경
  • 가격2,000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05.03.30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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