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때, 우리는 독특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하여 다른 독자들에게 유익한 관점들을 제시할 수 있으며, 본문과 독자들의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p.778)고 강조한다.
제7강 선지자의 역할
저자는 “선지자의 역할”에서 다양한 역할에 대해 논증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령’이다. 그는 구원을 선포하고 성전 법정을 주장한다.(p.800) 선지자는 ‘중보자’다. 선지자는 ‘엑스터시(황홀경)에 들어간 사람’이다. 황홀경에 대해서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 황홀경 묘사 여부에 따라서 선지자의 연대를 측정하는 ‘종교진화론적’ 입장은 잘못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이 없었다고 보는 보수주의적 견해도 문제를 갖는다. 실제로 사울, 이사야, 에스겔도 대단히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고, 당시 사람들은 사울의 모습에서도 ‘선지자의 황홀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p.807) 선지자는 ‘사회개혁자’였다. 선지자는 도덕적인 간절함 을 가지고 도덕적인 이상주의를 주창한 자였다.(p.812) 선지자는 어디에 거했는가? 선지자는 성전에도 거했다. 선지자는 왕궁에서도 활동했다. 선지자들은 신정 정치의 옹호하면서 이를 따르는 왕을 축복하고 그렇지 않은 왕을 정죄했다.(p.819) 그들은 왕에게 ‘전쟁’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p.819) 이와같이, 저자는 선지자의 역할을 포괄적 입장에서 접근한다.
제8강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
저자는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에서 신약적 구약 읽기를 시도하는데, ‘정경적 해석법’에 따라 계승, 발전시킨다. 선지자의 메시아 예언은 선지서에 다양하게 언급된다. ‘호세아의 메시아 예언’(호 3:4-5), ‘요엘의 메시아 예언’(욜 2:23), ‘아모스의 메시아 예언’(암 9:11-15), ‘미가의 메시아 예언’(미 2:12-13; 5:1-4),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사 4:2; 7:1-16; 9:1-7; 11:1-16; 28:16; 30:20,26), ‘예레미야의 메시야 예언’(렘 23:5,6; 33:14-26), ‘에스겔의 메시아 예언’, ‘다니엘의 메시아 예언’(7:13-14; 9:24-27), ‘학개의 메시아 예언’,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 ‘말라기의 메시아 예언’에 대해 자세히 살핀다.
여기서 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 기사를 중심으로’ 보면서 ‘신약적 구약 해석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왈키와 하젤의 ‘정경적 해석’에 대한 기본 이해를 발판으로 삼아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약적 독서를 시도”(p.847)한다. 마태의 관점에서 ‘신약의 엘리야 및 엘리사 해석’을 시도한다. 마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생애를 세례 요한과 예수의 생애에 대한 문학적 모델로 사용한다. 그는 요한을 ‘엘리야가 오리라’는 말라기 예언의 성취로 보고(말 4:5), 엘리사를 예수와 연결시킨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을 ‘장차 올 엘리야’라고 명백히 말했다(마 11:34; 17:32). 구체적으로, 엘리야와 세례 요한은 직접 후계자를 임명한다. 그리하여 마태는 엘리야와 요한, 엘리사와 예수를 서로 잇는다.(pp.846-849)
제9강 예언서의 종말론
저자는 ‘예언서의 종말론’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선지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세대주의는 문자적 해석을 한다고 강조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역사나 설화 부분에서 심한 영해를 시도하며 그 교훈적 가치를 찾고 있다.”(p.855)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해석이 명료한 역사서와 설화에서는 영해를 시도하고 문자적 해석이 어려운 예언서와 묵시록에서는 절대적인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p.856)
그러나 세대주의가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는 것은 예언의 상징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성경의 예언은 1차적으로 예언자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일깨우기 위해 준 것이다. 이 예언 중 많은 부분들이 중복되어 성취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도 그 자체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아하스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 징조로 보여 준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에서는 ‘예표적 의미’를 부정한다. 결국,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p.859)
세대주의 해석을 결과적으로 ‘장르 이해의 결여’를 보여주며, 이는 ‘단어 이해에 급급’한 모습을 나타낸다. 세대주의자들이나 언약신학자들
제7강 선지자의 역할
저자는 “선지자의 역할”에서 다양한 역할에 대해 논증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령’이다. 그는 구원을 선포하고 성전 법정을 주장한다.(p.800) 선지자는 ‘중보자’다. 선지자는 ‘엑스터시(황홀경)에 들어간 사람’이다. 황홀경에 대해서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 황홀경 묘사 여부에 따라서 선지자의 연대를 측정하는 ‘종교진화론적’ 입장은 잘못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이 없었다고 보는 보수주의적 견해도 문제를 갖는다. 실제로 사울, 이사야, 에스겔도 대단히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고, 당시 사람들은 사울의 모습에서도 ‘선지자의 황홀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p.807) 선지자는 ‘사회개혁자’였다. 선지자는 도덕적인 간절함 을 가지고 도덕적인 이상주의를 주창한 자였다.(p.812) 선지자는 어디에 거했는가? 선지자는 성전에도 거했다. 선지자는 왕궁에서도 활동했다. 선지자들은 신정 정치의 옹호하면서 이를 따르는 왕을 축복하고 그렇지 않은 왕을 정죄했다.(p.819) 그들은 왕에게 ‘전쟁’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p.819) 이와같이, 저자는 선지자의 역할을 포괄적 입장에서 접근한다.
제8강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
저자는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에서 신약적 구약 읽기를 시도하는데, ‘정경적 해석법’에 따라 계승, 발전시킨다. 선지자의 메시아 예언은 선지서에 다양하게 언급된다. ‘호세아의 메시아 예언’(호 3:4-5), ‘요엘의 메시아 예언’(욜 2:23), ‘아모스의 메시아 예언’(암 9:11-15), ‘미가의 메시아 예언’(미 2:12-13; 5:1-4),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사 4:2; 7:1-16; 9:1-7; 11:1-16; 28:16; 30:20,26), ‘예레미야의 메시야 예언’(렘 23:5,6; 33:14-26), ‘에스겔의 메시아 예언’, ‘다니엘의 메시아 예언’(7:13-14; 9:24-27), ‘학개의 메시아 예언’,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 ‘말라기의 메시아 예언’에 대해 자세히 살핀다.
여기서 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 기사를 중심으로’ 보면서 ‘신약적 구약 해석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왈키와 하젤의 ‘정경적 해석’에 대한 기본 이해를 발판으로 삼아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약적 독서를 시도”(p.847)한다. 마태의 관점에서 ‘신약의 엘리야 및 엘리사 해석’을 시도한다. 마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생애를 세례 요한과 예수의 생애에 대한 문학적 모델로 사용한다. 그는 요한을 ‘엘리야가 오리라’는 말라기 예언의 성취로 보고(말 4:5), 엘리사를 예수와 연결시킨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을 ‘장차 올 엘리야’라고 명백히 말했다(마 11:34; 17:32). 구체적으로, 엘리야와 세례 요한은 직접 후계자를 임명한다. 그리하여 마태는 엘리야와 요한, 엘리사와 예수를 서로 잇는다.(pp.846-849)
제9강 예언서의 종말론
저자는 ‘예언서의 종말론’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선지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세대주의는 문자적 해석을 한다고 강조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역사나 설화 부분에서 심한 영해를 시도하며 그 교훈적 가치를 찾고 있다.”(p.855)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해석이 명료한 역사서와 설화에서는 영해를 시도하고 문자적 해석이 어려운 예언서와 묵시록에서는 절대적인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p.856)
그러나 세대주의가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는 것은 예언의 상징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성경의 예언은 1차적으로 예언자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일깨우기 위해 준 것이다. 이 예언 중 많은 부분들이 중복되어 성취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도 그 자체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아하스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 징조로 보여 준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에서는 ‘예표적 의미’를 부정한다. 결국,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p.859)
세대주의 해석을 결과적으로 ‘장르 이해의 결여’를 보여주며, 이는 ‘단어 이해에 급급’한 모습을 나타낸다. 세대주의자들이나 언약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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