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비판과 반성의 시대
2. 한문사대가 이후의 복고적 노선
3. 사상의 근거에 관한 논란
4. 정통 한문학의 기능 지속
2. 한문사대가 이후의 복고적 노선
3. 사상의 근거에 관한 논란
4. 정통 한문학의 기능 지속
본문내용
. 허균은 명문에서 태어나 뛰어난 재능으로 일찍 과거에 급제해서 순조롭게 진출했으면서도, 당시에 지배질서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품고 이단을 숭상하고 예교에 어긋난 짓을 함부로 했다. 삼당시인 중의 하나였던 중인인 이달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하층민의 반란에 가담하고 마침내 그 주동자가 되었다가 처형되기에 이르렀다. 성리학의 명분으로 합리화된 통치질서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반역을 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불교도교는 물론이고 서학이라고 일컬어지던 천주교에도 호감을 가졌다. <문파관작>(聞罷官作)등에서 그동안 성리학의 정통적 문학관인 악할 수도 있는 정에 휩쓸리지 말고 선하기만 한 성(性)을 발현해야 참다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일거에 뒤집어놓아, 허위에 찬 구속에서 벗어나 험난한 경험을 하는 정이야말로 문학의 진실성을 보장해주는 근거라고 했다. <문설>(文說), <학산초담>(鶴山樵談)과 <성수시화>(惺詩話), <국조시산>(國朝詩刪) 등을 통해 논리를 세우고 그에 따른 문학의 예를 실상에서 정리했다. 또한 <호민론>에서는 복종만 하는 백성이 원망을 하게 되고, 원망하는 백성이 들고 일어나게 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인식했고, <유재론>에서는 하늘이 사람에게 재능을 균등하게 부여했는데 지체를 가려 재능을 한정하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라고 하며 전에 아무도 터놓고 발설하지 못하던 말로 하층의 반감을 대변했다. 시나 논설로 다하지 못한 말을 하고, 새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 <장생전><잔산인전><언처사전> 등의 한문소설을 써서, 대단한 인재가 사회적인 제약 때문에 멍들면서 흔히 선도를 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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