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재세례파 운동의 기원과 성격
2. 재세례파 개혁자들
(1) 스위스 형제단
(2) 발타자르 후브마이어(Baltarsar Hubmaier, 1485~1528)
(3) 새틀러와 슐라이다임 신앙고백서
(Michael Sattler,1490~1527)
3. 광신적 천년왕국주의자들
(1) 광신적 신령주의자들
(2) 뮌스터의 천년왕국운동
4. 네덜란드의 제세례운동
Ⅲ. 결론
Ⅱ. 본론
1. 재세례파 운동의 기원과 성격
2. 재세례파 개혁자들
(1) 스위스 형제단
(2) 발타자르 후브마이어(Baltarsar Hubmaier, 1485~1528)
(3) 새틀러와 슐라이다임 신앙고백서
(Michael Sattler,1490~1527)
3. 광신적 천년왕국주의자들
(1) 광신적 신령주의자들
(2) 뮌스터의 천년왕국운동
4. 네덜란드의 제세례운동
Ⅲ. 결론
본문내용
후 네덜란드에 있어서 재세례파를 조직화하고 교리화 시킨 사람은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 였다. 메노 시몬스는 뮌스터 사건의 결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평화 지상적 복음주의적인 침례 교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메노는 슐라이다임 고백서에 진술된 대로 복음적인 재세례교의 입장을 재조명하였다. 그는 혁명을 통한 교회 개혁을 반대하고, 개인적인 특별 계시를 주장하면서 성령의 내적인 조명에 의존하던 심령주의적인 재침례파를 반대하였다. 참된 개혁 운동은 성경대로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메노는 성경을 해석할 때,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 예로 마리아를 예수의 양모로 보았는데, 이미 2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으로, 그는 역사를 경시해서 이단으로 빠지게 되었다.
메노는 성경적 교회를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으며 평화와 봉사의 삶을 사는 중생한 자로 구성된 교회로 보고, 이러한 교회를 세우려면 권징이 철저하게 실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권징의 최종적인 단계로 출교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출교는 명백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도는 출교 받은 자를 격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주신 출교의 명령은 우리가 출교를 행하든 아니면 우리 자신이 "공동체에 의하여 기피되고 출교 당하던가 해야 한다"고 하였다. 메노는 성찬을 츠빙글리의 전통을 따라 기념으로 보았고, 세례는 성도의 중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유아들이 설교를 듣거나 교훈을 받을 수 없으므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메노는 세례가 은혜를 수반한다거나 은혜의 표징이라는 사실을 배척하고, 오히려 순종의 표징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신학적인 전제에 근거하여, 그는 유아 세례가 407년 교황청에 의하여 도입되었다고 주장했다. 재침례파의 전통을 따라, 서약하거나 병역의 의무를 감당하는 일, 세속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Ⅲ. 결론
이처럼 재세례파 운동은 종교 개혁기에 종교적 순수운동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자는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형식과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내적으로 진실한 신앙고백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이 주장했던 재세례는 중세 카톨릭의 형식적이었던 모습을 탈피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다시금 세례를 받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점차 극단적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많은 박해를 받았다. 또한 그들의 광신적 행동은 급진적은 종교개혁이었기 때문에 그 16세기 당시 카톨릭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 조차도 처절하게 비판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재세례파의 등장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 카톨릭이 깨어지면서 새로운 신앙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 순수 신앙 운동이라는 점에서 좀더 적극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고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은 박해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한 흐름은 후터파와 연결됨으로서 경건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 참고문헌 ◈
1. 롤란드 베인턴 저 홍치모 이훈영 옮김, 『종교개혁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2. EM.번즈 R 러너 S 미첨 씀, 박상익 옮김, 『서양문명의 역사Ⅱ』, 소나무, 1994
3. 오덕교 저, 『종교개혁사』,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1998
4. 오연수 저, 『종교개혁사』, 한글, 2000
5. 홍치모 공저, 『급진종교개혁사론』느티나무, 1993
메노는 성경적 교회를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으며 평화와 봉사의 삶을 사는 중생한 자로 구성된 교회로 보고, 이러한 교회를 세우려면 권징이 철저하게 실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권징의 최종적인 단계로 출교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출교는 명백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도는 출교 받은 자를 격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주신 출교의 명령은 우리가 출교를 행하든 아니면 우리 자신이 "공동체에 의하여 기피되고 출교 당하던가 해야 한다"고 하였다. 메노는 성찬을 츠빙글리의 전통을 따라 기념으로 보았고, 세례는 성도의 중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유아들이 설교를 듣거나 교훈을 받을 수 없으므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메노는 세례가 은혜를 수반한다거나 은혜의 표징이라는 사실을 배척하고, 오히려 순종의 표징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신학적인 전제에 근거하여, 그는 유아 세례가 407년 교황청에 의하여 도입되었다고 주장했다. 재침례파의 전통을 따라, 서약하거나 병역의 의무를 감당하는 일, 세속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Ⅲ. 결론
이처럼 재세례파 운동은 종교 개혁기에 종교적 순수운동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자는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형식과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내적으로 진실한 신앙고백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이 주장했던 재세례는 중세 카톨릭의 형식적이었던 모습을 탈피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다시금 세례를 받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점차 극단적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많은 박해를 받았다. 또한 그들의 광신적 행동은 급진적은 종교개혁이었기 때문에 그 16세기 당시 카톨릭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 조차도 처절하게 비판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재세례파의 등장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 카톨릭이 깨어지면서 새로운 신앙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 순수 신앙 운동이라는 점에서 좀더 적극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고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은 박해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한 흐름은 후터파와 연결됨으로서 경건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 참고문헌 ◈
1. 롤란드 베인턴 저 홍치모 이훈영 옮김, 『종교개혁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2. EM.번즈 R 러너 S 미첨 씀, 박상익 옮김, 『서양문명의 역사Ⅱ』, 소나무, 1994
3. 오덕교 저, 『종교개혁사』,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1998
4. 오연수 저, 『종교개혁사』, 한글, 2000
5. 홍치모 공저, 『급진종교개혁사론』느티나무,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