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萬海 한용운’의 삶
2. 한용운의 시세계
1) 한용운의 불교사상과 문학
(1) 승려로서의 만해
(2) 불교의 ‘苦’ 사상
(3) 만해의 실천적 불교사상
(4) 불교적 논리전개 방법
2. 한용운의 ‘님’은 누구인가
3. 한용운의 대표작 분석
1) 님의 침묵
2) 알 수 없어요
3) 나룻배와 행인
4. 맺음말
2. 한용운의 시세계
1) 한용운의 불교사상과 문학
(1) 승려로서의 만해
(2) 불교의 ‘苦’ 사상
(3) 만해의 실천적 불교사상
(4) 불교적 논리전개 방법
2. 한용운의 ‘님’은 누구인가
3. 한용운의 대표작 분석
1) 님의 침묵
2) 알 수 없어요
3) 나룻배와 행인
4. 맺음말
본문내용
로 규정할 경우 독자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느껴지던 님이 추상화되는 것 또한 피하기 어렵다.
윤재근은 ‘님’과 ‘나’의 서정시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님을 해석했다.
‘님’은 ‘있다의 존재’가 아니라 ‘이다의 존재’이므로 ‘나’가 없으면 ‘님’이 없게 되고 ‘님’이 없으면 ‘나’가 없게 된다. 동시에 ‘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가 있고 ‘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님’이 있 다는 계기적 관계에서 ‘님’과 ‘나’는 自他不二의 사랑이란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즉 ‘님’과 ‘나’ 사 이의 사랑은 非一非二의 연관적 존재 관계로 시화되어 있음을 시집 『님의 침묵』에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에서 ‘님’은 ‘이다’의 존재로 형상화되어 복잡한 의식 형태를 일으키는 존재가 된 다. 여기서 ‘님’과 ‘나’는 사랑의 관계이므로 自他不二의 관계 존재이지만 자타합일의 관계가 아님 을 알게 된다. ‘님’과 ‘나’가 하나가 되면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자와 님의 상호 관계에서 ‘님’을 바라본 것은 윤재근의 독특한 존재론적 해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고 하나가 되었을 때 성취된다. 논리적 연관은 사랑의 관계일 뿐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님’과 ‘나’가 하나가 되고자 하지만 하나가 될 수 없을 때 한용운의 탄식이 토로된다. 님은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것이고, 사랑은 파탄되었지만 파탄된 것이 아니다. 님과 나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나와 중생 또한 둘이지만 하나이다. 님과 나가 하나이지만 둘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파탄과 방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한용운의 시적 지향이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무애행이 지닌 참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용운의 ‘님’의 의미가 여러 해석으로 갈리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님의 침묵』의 창작 동기를 밝혔다고 판단되는 <군말>때문이다. 그러나 <군말>을 통하여 오히려 의미가 압축되어질 수도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찌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예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 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한용운은 왜 이와 같은 말은 구태여 덧붙여 <군말>이라고 했을까. 중생/석가, 철학/칸트, 장미화/봄비, 마시니/이태리 라는 이 이항대립의 명제들은 모두 님이라는 상관 속으로 결합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생이 없는 석가나 철학이 없는 칸트는 존재할 수 없을 터이고, 봄비가 없는 장미화, 이태리가 없는 마시니 등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서두의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다 님이다’라는 명제가 직핍하게 다가온다.
여러 겹의 완곡한 말로 둘러싸고 있기는 하지만 좀더 집약해 보자면, 위의 진술에서 추출되는 것은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라는 언명일 것이다. 마시니는 사분오열된 이태리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 근세의 혁명가이다. 이를 연역하면 ‘나의 님은 조선이다’가 될 것이며, ‘나의 소망은 조선의 독립이다’라는 것이 한용운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31 운동 후 3년여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온 한용운에게 다가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선독립을 위한 거족적 열기는 다 어디로 가버리고 변절한 동지들은 물론 관능적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퇴폐적 문사들이 민족적 지도자연하고 있었을 것이며, 조선의 민중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 앞에 시인으로 나서는 것이 뿌끄럽기는 하지만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이다’라고 돌려서 말하는 그의 가슴에 ‘나의 님은 조선이다’가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님은 조선의 독립이다’라고 선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갈 길을 잃어버리고 각자 개인적 이해에 탐닉하거나 자유연애에 집착하고 있다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너희들을 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느냐. 지금의 너희들이 좇고 있는 님은 진정한 님이 아니다. 갈 길 모르고 방황하는 너희들의 그림자이다. 그것은 헛된 것일 뿐이다. 너희들 자신을 살펴보라. 님은 떠난 것이 아니다. 만일 님이 떠났다면, 그 님을 찾아 나서라. 그것이 너희들이 진정으로 할 일이다. 방종한 자유에 오히려 구속당하지 말고 진정한 길을 찾으라는 것이 『님의 침묵』을 통해 한용운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님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 님을 버리고 쓸데없는 눈물에 빠지고 만나면, 파탄된 사랑은 끝내 새롭게 성취될 수 없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고,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굳센 의지로 이 시련의 시대를 극복하자는 것이 『님의 침묵』 전편을 통해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라고 할 것이다. 최동호, 『한용운』,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1, pp.69~76
3. 한용운의 대표작 분석
1)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 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 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
윤재근은 ‘님’과 ‘나’의 서정시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님을 해석했다.
‘님’은 ‘있다의 존재’가 아니라 ‘이다의 존재’이므로 ‘나’가 없으면 ‘님’이 없게 되고 ‘님’이 없으면 ‘나’가 없게 된다. 동시에 ‘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가 있고 ‘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님’이 있 다는 계기적 관계에서 ‘님’과 ‘나’는 自他不二의 사랑이란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즉 ‘님’과 ‘나’ 사 이의 사랑은 非一非二의 연관적 존재 관계로 시화되어 있음을 시집 『님의 침묵』에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에서 ‘님’은 ‘이다’의 존재로 형상화되어 복잡한 의식 형태를 일으키는 존재가 된 다. 여기서 ‘님’과 ‘나’는 사랑의 관계이므로 自他不二의 관계 존재이지만 자타합일의 관계가 아님 을 알게 된다. ‘님’과 ‘나’가 하나가 되면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자와 님의 상호 관계에서 ‘님’을 바라본 것은 윤재근의 독특한 존재론적 해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고 하나가 되었을 때 성취된다. 논리적 연관은 사랑의 관계일 뿐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님’과 ‘나’가 하나가 되고자 하지만 하나가 될 수 없을 때 한용운의 탄식이 토로된다. 님은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것이고, 사랑은 파탄되었지만 파탄된 것이 아니다. 님과 나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나와 중생 또한 둘이지만 하나이다. 님과 나가 하나이지만 둘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파탄과 방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한용운의 시적 지향이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무애행이 지닌 참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용운의 ‘님’의 의미가 여러 해석으로 갈리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님의 침묵』의 창작 동기를 밝혔다고 판단되는 <군말>때문이다. 그러나 <군말>을 통하여 오히려 의미가 압축되어질 수도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찌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예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 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한용운은 왜 이와 같은 말은 구태여 덧붙여 <군말>이라고 했을까. 중생/석가, 철학/칸트, 장미화/봄비, 마시니/이태리 라는 이 이항대립의 명제들은 모두 님이라는 상관 속으로 결합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생이 없는 석가나 철학이 없는 칸트는 존재할 수 없을 터이고, 봄비가 없는 장미화, 이태리가 없는 마시니 등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서두의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다 님이다’라는 명제가 직핍하게 다가온다.
여러 겹의 완곡한 말로 둘러싸고 있기는 하지만 좀더 집약해 보자면, 위의 진술에서 추출되는 것은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라는 언명일 것이다. 마시니는 사분오열된 이태리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 근세의 혁명가이다. 이를 연역하면 ‘나의 님은 조선이다’가 될 것이며, ‘나의 소망은 조선의 독립이다’라는 것이 한용운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31 운동 후 3년여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온 한용운에게 다가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선독립을 위한 거족적 열기는 다 어디로 가버리고 변절한 동지들은 물론 관능적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퇴폐적 문사들이 민족적 지도자연하고 있었을 것이며, 조선의 민중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 앞에 시인으로 나서는 것이 뿌끄럽기는 하지만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이다’라고 돌려서 말하는 그의 가슴에 ‘나의 님은 조선이다’가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님은 조선의 독립이다’라고 선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갈 길을 잃어버리고 각자 개인적 이해에 탐닉하거나 자유연애에 집착하고 있다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너희들을 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느냐. 지금의 너희들이 좇고 있는 님은 진정한 님이 아니다. 갈 길 모르고 방황하는 너희들의 그림자이다. 그것은 헛된 것일 뿐이다. 너희들 자신을 살펴보라. 님은 떠난 것이 아니다. 만일 님이 떠났다면, 그 님을 찾아 나서라. 그것이 너희들이 진정으로 할 일이다. 방종한 자유에 오히려 구속당하지 말고 진정한 길을 찾으라는 것이 『님의 침묵』을 통해 한용운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님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 님을 버리고 쓸데없는 눈물에 빠지고 만나면, 파탄된 사랑은 끝내 새롭게 성취될 수 없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고,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굳센 의지로 이 시련의 시대를 극복하자는 것이 『님의 침묵』 전편을 통해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라고 할 것이다. 최동호, 『한용운』,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1, pp.69~76
3. 한용운의 대표작 분석
1)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 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 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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