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한시 감상 및 분석-시화총림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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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시습 한시 감상 및 분석-시화총림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금오산(金鰲山)에서 나온 뒤에 바로 관동지방으로 여행을 했을 때이다. 관동지방을 여행을 하고 있을 때에도 갈등과 번민이 많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시습은 이러한 갈등과 번민속에서도 소양정에 올라 경치를 읊조리면서 자신의 갈등과 번민을 잊어보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陶店』은 매월당시집 1권 기행(紀行)편에 들어 있다. 기행(紀行)의 서(序)를 보면
내가 봄철을 이용하여 산에서 나와 옛 친구를 찾아 서울에 가는 도중의 좋은 경치를 기록한 것이다.
余乘春時自山訪舊友於京都 途中 記其勝景
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는 길 가던 도중의 경치를 묘사한 것이다.
시의 제목이 '陶店'이지만 시의 내용을 보아서는 '陶店'이 아마 지명이름이 아닐까 추측된다. 따라서, 기구와 승구는 '도점'이라는 지역을 지나가면서 본 경치를 묘사한 것이다. 봄날의 따뜻하고, 여유있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전구와 결구에 가면 시상이 바뀌는데, 양구(兩句)에서는 매월당 자신의 모습을 시속에서 투영시킨 것이다. 즉, 따뜻한 봄날에 도잠을 지나가면서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번민과 갈등이 하나도 없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도잠을 지나가는 한폭의 풍경화처럼 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허균은 『성수시화』에서 위의 시들이 진세(塵世)의 지저분한 모습들을 벗어나서 화평하고 단박하고 아담하게 표현하였다고 한다. 「題淸平山細香院南窓」에서는 '향원사'에서 중의 신분이지만 도선적 상상을 통하여 세상사의 갈등과 번민을 잊은채로 시를 읊고 있다. 「登昭陽亭」에서 시적자아의 마음속에 갈등과 번민이 있어도 소양정에 올라서 본 풍경을 묘사하여, 마음의 갈등이 있다고 하여도 속세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陶店」은 여유있는 봄날의 경치를 그리고 있으므로 이것은 매월당이 탈속한 중의 신분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6) 谿谷漫筆
온 정균
당인(唐人). 《新唐書》정균(廷筠)으로 되었다. 본명(本名)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 어려서부터 영민(潁敏)하고 사장(詞章)에 능하며, 문사(文思)가 신속(神速)하여 두 손을 8번(番) 잡는 사이에 팔운(八韻)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람이 경박(輕薄)하여 벼슬은 주서순관(奏署巡官)에 그쳤다.
은 위수(중국감숙성 위원현(中國甘肅省渭源縣)) 위에서 시 쓰기를
呂公榮達子陵
엄 광(嚴光)의 자(字). 동한 여요인(東漢餘姚人). 본성(本性)은 장(莊)이었는데 한(漢) 명제(明帝)의 휘(諱)를 피(避)하여 엄(嚴)으로 고쳤다. 어려서 한(漢)의 광무황제(光武皇帝)와 글을 같이 읽었다. 광무 황제가 즉위(卽位)하자 간의 대부(諫議大夫)를 제수(除授)했으나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살면서 농사 짓고 낚시질로 일생을 마쳤다. 뒤의 사람들은 그 낚시터를 엄릉뇌(嚴陵瀨)라 칭(稱)했다. <後漢書, 113>
歸 여공은 영달하고, 자릉은 되돌아 와,
萬古煙波 釣磯 만고에 내 낀 물결, 낚시터를 감돌아 든다.
橋上一通名利客
명예(名譽)와 이록(利祿)을 꾀하는 사람. 《崔顥, 行經筆陰詩》 여보시오 길에 가는 명리객들아, 여기서 장생을 배우는 것만 한게 없다네(借問路傍名利客, 無如此處學長生)
다리 위에 명리객이 한 번 지나가자,
至今江鳥背人飛 지금도 물새들은 사람을 등지고 난다.
우리 나라의 김열경(김시습(金時習)의 자)은 「위천수조도(渭川垂釣圖)」를 읊기를
風雨蕭蕭拂釣磯 바람과 비는 우수수 낚시를 쓸어가니,
渭川魚鳥已忘機 위천의 고기와 새는 이미 세속을 잊었네.
如何老作鷹揚將 어찌하여 늘그막에 응양장이 되어,
空使夷齊餓采薇 공연히 백이·숙제로 하여금 굶주려 고사리를 캐어 죽게 했는가?
이 두시는 준수(俊秀)하고 상쾌(爽快)하게 되어 자못 비슷한 듯 하나, 온 정균의 시는 명리(名利)로써 태공(곧 여공(呂公))을 나무랠 뿐이어서 별 다른 뜻이 없고, 열경(悅卿)의 시는 생각한 뜻이 깊고 멀어서 세상을 교도(敎導)하는 뜻이 있으니, 아는 사람은 능히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지금 사람은 옛날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남의 말만 듣고 하는 소리다.
풍설 : 온정균의 시에서 여공은 곧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문왕의 늘그막에 등용이 되었고, 자릉은 난을 피하였다가, 나라가 평안해지자 임금이 다시 자릉을 불렀으나, 마다하고 부춘강에서 낚시질을 하며 소일하였다고 한다. 강태공과 자릉은 '처'와 '출'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온정균의 시는 다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서 강태공에 대한 잘못만을 지적하고 있다.
김열경의 시는 한명회가 태공조어도를 가지고 와서 시를 지어달라고 요구하여 지어준 시이다.
기구와 승구에서 강태공은 매일 위수에 나가 낚시질을 하면서 은사로서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주나라 문왕이 위수를 지나다가 강태공을 보고 궁으로 데려와 태사로 삼았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이러한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강태공이 은거하여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은 물고기와 새들도 알고 있다.
전구에서 늙은 나이에 강태공은 문왕에게 등용된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구에서 등용된 강태공은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치고 천하통일 하였다. 백이·숙제는 이의 부당함을 간했으나 이를 듣지않자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고 만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즉, 강태공이 등용되지 않았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훌륭한 인재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명회가 김시습에게 태공조어도를 보여주고 강태공처럼 '처'에서 나와 '출'을 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왕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김시습은 자신을 백이·숙제에 비유하여 절대 '출'하지 않을 것을 표현하고 있다. 즉, 백이·숙제가 무왕의 옳지 않음을 보고 숨어산 것 같이 현 왕조의 부도덕함에 있어서는 절대 유학자로서의 '출'하지 못하는 의도를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늦은 나이에 수양대군을 도와 단종을 폐위시키고 직위에 나아간 한명회를 강태공에 비유하여 백이·숙제와 같은 훌륭한 인재들을 등용하기를 권하는 것은 인재들을 모두 없애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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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8.13
  • 저작시기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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