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석조물 목록 및 설명
간송미술관의 내부
간송미술관의 외부
간송미술관의 역사
견학후기
간송미술관의 내부
간송미술관의 외부
간송미술관의 역사
견학후기
본문내용
道)가 표현되었습니다. 좁은 양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通肩)의 법의는 소매부분과 두 다리 아랫부분에 옷 주름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어 형식화된 경향을 보여주며 가슴 앞에는 주름접힌 내의(內衣)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서 몸에 바싹 붙이고 둘째손가락만 똑바로 세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서 오른손 엄지가 왼손 둘째손가락 끝에 서로 맞닿도록 한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권인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으로 주로 비로자나불상이 취하는 수인(手印)입니다.
비로자나불(Vairocana)은《화엄경(華嚴經)》의 주존불로서 부처의 광명(光明)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며 그 불신에는 모든 세계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빛에 비유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불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대부분 단독상으로 등장하지만 협시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배치되는 삼존불의 경우도 있고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불(釋迦佛)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삼신불(三身佛)의 예도 있습니다.
대좌는 상ㆍ중ㆍ하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불상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으로 크기도 각각 달라서 원래 이 불상의 대좌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석탑의 부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각 대좌의 중대(中臺)에 사방불(四方佛)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현재 불상이 안치된 북서향을 기준으로 하면, 불상과 같은 방향인 대좌의 정면에는 지권인의 수인을 한 비로자나불좌상이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고 북동향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불상(釋迦佛像)이, 남서향에는 선정인(禪定印)의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상의 맞은편인 남동향의 불상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놓인 두 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으나 일반적인 부처 형상과는 달리 머리부분에 두건(頭巾)과 같은 것을 쓰고 있어 보주(寶珠)를 든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불상은 일반적으로 약합을 들고 있는 지물(持物)의 특징으로 보아 약사불(藥師佛)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석탑의 사방불은 비로자나불을 북면으로 설정하면 동면에 석가불, 서면에 아미타불, 남면에 약사불상이 배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사방불의 명칭은 경전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금강명경(金剛明經)》의 사방불은 동방 아촉불(阿佛), 서방 무량수불(無量壽佛), 남방 보상불(寶相佛), 북방 미묘성불(微妙聲佛)로 정해져 있으나 경전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이 불상의 사방불과도 도상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간송미술관의 역사
또 한편으로 비로자나불상의 대좌 역할을 하고 있는 석탑의 사방불은 밀교의 오방불(五方佛) 배치와 관련하여 중앙의 불사리(佛舍利)를 상징하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북방에 비로자나불, 서방 무량수불, 남방 보생여래(寶生如來), 동방 아촉여래가 배치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석탑의 오방불과 밀교의 오방불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중앙과 북방에 배치된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의 위치가 서로 바꿔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밀교의 오방불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라적으로 변용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석탑의 사방불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요소로 파악됩니다. 이와 같이 석탑의 초층탑신(初層塔身)에 사방불이 조각된 예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지삼층석탑(국보 제122호)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광양군 중흥산성삼층석탑(보물 제112호), 경상북도 김천시 금릉군 청암사수도암동삼층석탑(보물 제297호) 등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약간 마모된 상태로 얼굴과 손이 강조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당당하면서 양감이 줄어들고 위축된 모습이나, 거칠고 투박한 조각기법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석탑에 사방불(四方佛)이 새겨진 경우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하며 이는 불교조각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어제 뜻하지 않게 간송미술관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화동아리에 있는 과동생의 추천으로 여러명이서 간만에 한국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사는데가 안암동이라, 일단 근처에서 한성대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했습니다.
버스를 잘 못 내려서 미술관 가는데 까지 한 20분간 걸어었가게 되었죠. 항상 그렇지만 성북동이나 혜화동 이런 곳은 고풍스런 맛이 있습니다. 멀리에는 성벽도 보이고, 전형적인 경기도 기와집도 자주 보이고... 간송미술관이 바로 성북동에 있습니다.
성북동하면 잘 사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데, 수려한 경관 때문인지 정말 살기 좋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동네를 걷고 있으면 정말 산책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한 20분 걸어서 도착한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문화재를 너무나 사랑해서 수많은 유물을 일제로 부터 지켜냈던 전형필선생의 호를 따서 만든 박물관입니다. 아마도 국립박물관과 호암미술관 다음으로 국보급등 가치있는 유물이 많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대 지어진 건물이어서 그런지 아주 고풍스런 맛이 납니다. 어제 보았던 전시회는 \'사군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어마어마한 유물도 보고 싶어 얼쩡거렸는데 불행히도 유물전시관으로는 출입이 금지돼서 못 봤습니다. 건물 마당에는 닭이 있고, 처음보는 많은 꽃과 나무과 있어서 참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 줍니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몇 번 밖에는 전시회를 열지 않아 그 기회를 놓칠세라 많은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이라 꼭 한 번 찾아보시길...^^
성북동 조용한 곳에, 간송미술관이 있습니다.
최고 컬렉션 간송미술관 국보급 수두룩…문화재 \'寶庫\'
서울 성북구 삼선교쪽에서 성북동으로 오르는 길 초입 오른쪽엔 간송미술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10만석 재산을 모두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62)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설립한 것이다.
설립 당시 이름은 보화각(
비로자나불(Vairocana)은《화엄경(華嚴經)》의 주존불로서 부처의 광명(光明)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며 그 불신에는 모든 세계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빛에 비유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불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대부분 단독상으로 등장하지만 협시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배치되는 삼존불의 경우도 있고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불(釋迦佛)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삼신불(三身佛)의 예도 있습니다.
대좌는 상ㆍ중ㆍ하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불상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으로 크기도 각각 달라서 원래 이 불상의 대좌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석탑의 부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각 대좌의 중대(中臺)에 사방불(四方佛)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현재 불상이 안치된 북서향을 기준으로 하면, 불상과 같은 방향인 대좌의 정면에는 지권인의 수인을 한 비로자나불좌상이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고 북동향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불상(釋迦佛像)이, 남서향에는 선정인(禪定印)의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상의 맞은편인 남동향의 불상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놓인 두 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으나 일반적인 부처 형상과는 달리 머리부분에 두건(頭巾)과 같은 것을 쓰고 있어 보주(寶珠)를 든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불상은 일반적으로 약합을 들고 있는 지물(持物)의 특징으로 보아 약사불(藥師佛)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석탑의 사방불은 비로자나불을 북면으로 설정하면 동면에 석가불, 서면에 아미타불, 남면에 약사불상이 배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사방불의 명칭은 경전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금강명경(金剛明經)》의 사방불은 동방 아촉불(阿佛), 서방 무량수불(無量壽佛), 남방 보상불(寶相佛), 북방 미묘성불(微妙聲佛)로 정해져 있으나 경전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이 불상의 사방불과도 도상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간송미술관의 역사
또 한편으로 비로자나불상의 대좌 역할을 하고 있는 석탑의 사방불은 밀교의 오방불(五方佛) 배치와 관련하여 중앙의 불사리(佛舍利)를 상징하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북방에 비로자나불, 서방 무량수불, 남방 보생여래(寶生如來), 동방 아촉여래가 배치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석탑의 오방불과 밀교의 오방불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중앙과 북방에 배치된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의 위치가 서로 바꿔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밀교의 오방불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라적으로 변용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석탑의 사방불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요소로 파악됩니다. 이와 같이 석탑의 초층탑신(初層塔身)에 사방불이 조각된 예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지삼층석탑(국보 제122호)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광양군 중흥산성삼층석탑(보물 제112호), 경상북도 김천시 금릉군 청암사수도암동삼층석탑(보물 제297호) 등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약간 마모된 상태로 얼굴과 손이 강조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당당하면서 양감이 줄어들고 위축된 모습이나, 거칠고 투박한 조각기법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석탑에 사방불(四方佛)이 새겨진 경우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하며 이는 불교조각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어제 뜻하지 않게 간송미술관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화동아리에 있는 과동생의 추천으로 여러명이서 간만에 한국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사는데가 안암동이라, 일단 근처에서 한성대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했습니다.
버스를 잘 못 내려서 미술관 가는데 까지 한 20분간 걸어었가게 되었죠. 항상 그렇지만 성북동이나 혜화동 이런 곳은 고풍스런 맛이 있습니다. 멀리에는 성벽도 보이고, 전형적인 경기도 기와집도 자주 보이고... 간송미술관이 바로 성북동에 있습니다.
성북동하면 잘 사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데, 수려한 경관 때문인지 정말 살기 좋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동네를 걷고 있으면 정말 산책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한 20분 걸어서 도착한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문화재를 너무나 사랑해서 수많은 유물을 일제로 부터 지켜냈던 전형필선생의 호를 따서 만든 박물관입니다. 아마도 국립박물관과 호암미술관 다음으로 국보급등 가치있는 유물이 많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대 지어진 건물이어서 그런지 아주 고풍스런 맛이 납니다. 어제 보았던 전시회는 \'사군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어마어마한 유물도 보고 싶어 얼쩡거렸는데 불행히도 유물전시관으로는 출입이 금지돼서 못 봤습니다. 건물 마당에는 닭이 있고, 처음보는 많은 꽃과 나무과 있어서 참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 줍니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몇 번 밖에는 전시회를 열지 않아 그 기회를 놓칠세라 많은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이라 꼭 한 번 찾아보시길...^^
성북동 조용한 곳에, 간송미술관이 있습니다.
최고 컬렉션 간송미술관 국보급 수두룩…문화재 \'寶庫\'
서울 성북구 삼선교쪽에서 성북동으로 오르는 길 초입 오른쪽엔 간송미술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10만석 재산을 모두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62)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설립한 것이다.
설립 당시 이름은 보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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