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 교육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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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싣는 순서 ☆

1. 농활이란? ▬▬▬▬▬▬▬▬▬▬▬▬▬▬▬▬▬ 2p

2. 우리는 왜 농활을 가는가? ▬▬▬▬▬▬▬▬▬▬ 3p

3. 농활규율 ▬▬▬▬▬▬▬▬▬▬▬▬▬▬▬▬▬ 4p

4. 농활 중 반성폭력 ▬▬▬▬▬▬▬▬▬▬▬▬▬ 5p

5. 농업의 중요성 ▬▬▬▬▬▬▬▬▬▬▬▬▬▬▬ 13p

6. WTO 출현과 본질 ▬▬▬▬▬▬▬▬▬▬▬▬▬ 18p

7.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 21p

8.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업의 위기 ▬▬▬▬▬▬ 25p

본문내용

로 격렬히 대립했다. 그리고 이 대립은 결국 보수주의자들이 힘을 키울 수 있는 틈새를 제공하게 되다. 보수당의 마가릿 대처는 인플레이션은 늘어나는데 임금은 올려주지 않는 노동당의 무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결국 복지국가 모델 아래에서 많은 세금을 내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여 집권에 성공하게 되었다.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영국경제를 몰락하게 만든 장본인이 노동조합과 국가라고 주장했다. 영국경제의 불황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호황 국면이 끝남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동조합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경제를 망쳐 놓았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은 집권기 동안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개입을 축소시킨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게 된다.
긴축정책
대처는 집권하자마자 정부지출을 엄청나게 줄여버렸다. 삭감된 정부지출은 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한 지출들이 대부분이었다. 곧 케인즈주의 시절 정부와 노동자가 합의한 결과 만들어졌던 사회복지 차원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삭제되기 시작했다. 주택보조금, 교육비, 환경관련 예산, 국유기업보조금 등이 잘려나갔다. 재정긴축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임금을 낮추려는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재정긴축의 결과 실업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집권초인 80년에 167만명이었던 실업자는 매년 엄청나게 늘어나 83년에는 300만명을 돌파했다. 정부기관이 축소되어 공무원들이 해고되었고, 대기업은 인원을 줄였으며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회사의 도산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감세
세금을 줄이면 이전에 세금내던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소비수준은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세금을 줄이면 경기는 어느정도 회복 가능해진다. 그러나 긴축재정을 취하던 대처정부가 전혀 기조가 다른 듯한 감세정책을 취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지만 진실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내막을 살펴보자.
대처정부는 최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세금을 83%에서 40%로 반이나 깎아줬다. 반면에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은 33%에서 25%로 겨우 8%를 내려줬다. 직접세를 이렇게 내려준 대신 간접세를 올렸다. 이렇게 해서 직접세를 훨씬 덜 내게 된 고소득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되었다.
감세의 효과는 이런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털어서 부자의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민영화
대처정부가 국가부문을 축소하기 위해 했던 가장 중요한 사업은 공기업 민영화였다. 민영화의 핵심적인 논리는 공기업이 국가의 보호 아래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상실하고, 경쟁력을 잃게 되었기 때문에 민간기업과의 경쟁을 통해 다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영화의 논리는 그 자체에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공기업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는 그 기업 자체가 살만해야 했던 것인데 경쟁력이 없어서 사봤자 짐만 될 그런 기업은 누구도 선 듯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처정부는 공기업을 사갈 돈 많은 자본가들에게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갖가지 조치를 취해줬다. 상수도는 당시 정부의 독점사업이었는데, 이 사업을 민간에 내다팔면서 ‘수도회사에 대해 환경규제를 최소화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전기산업도 매각했는데, 회사를 구입한 자본가를 위해서 전기료를 대폭 인상시켜주었다. 팔려나갈 공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우해 대처는 영국의 민간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각종 제도를 고쳐나갔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다른 회사와 경쟁을 하기 때문에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가 이전보다 훨씬 개선될 것이라던 정부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은 오히려 인상된 공공요금을 내기 위해 큰 부담을 떠안았다. 손해를 본 소비자들은 물론 긴축재정과 감세정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민영화는 이외에도 고용조건을 악화시켰고, 실업자를 증가시켰다. 1979년 공기업의 종업원수는 206만여명 정도였는데 1989년에는 84만명으로 절반이 넘게 줄었다. 실업자는 대처 집권 몇 년 후 400만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
전통적으로 영국에는 노동법이 없었다. 작업장 안에 존재하는 ‘관습법’이 노동법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비슷한 힘을 바탕으로 타협적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자관계는 대처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째, 노동조합을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했다.
둘째, 단체행동권 등 노조의 활동을 크게 제약했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노조에 대한 우회적 공격이 가해졌다.
이렇게 영국에서 대처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긴축정책, 감세, 민영화, 노동자에 대한 공격 이라는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전세계에 확산되었다. 영국에서는 대처리즘으로 진행된 이 신자유주의 공세는 미국에서는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복지의 삭감과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감세조치, 공공성을 무시한 민영화(공기업 사유화),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공격이 감행 되었던 것이다. 단,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전개의 두드러진 모습이라면 바로 군비의 강화를 들 수가 있겠다. 재정긴축의 기조 속에서도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늘어난 부분이 국방비였던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군사적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은 국방비를 대거 증가시켰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군비의 강화를 통해 군사적 신자유주의체제의 선봉으로 변모했다. 레이건 집권기간 동안 군비지출 증가는 거의 50%에 육박했다. 사회복지비를 줄여서 남은 돈을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드는데 쓴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이제 전 세계로 팽창하게 되었다. 미국과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 중심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사회복지와 세금을 낮추고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팽창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공세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키워드

농활,   농촌활동,   wto,   신자유주의,   반미,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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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9페이지
  • 등록일2005.06.20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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