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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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위해서라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며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교회가 학교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주께서 한국 교회에 허락하신 부요함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며 주의 복음 안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있겠다. 또한 교회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을 바꾸어 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이기에 더욱 성실하고, 더욱 노력하고, 더욱 인내하고, 더욱 사랑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한번 기독교가 사회적 지배력을 회복하는 길이리라 생각되어 진다. 기독교가 가진 사랑을, 세상의 지배력을 다른 종교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 보다 나은 방향에 대한 견해
1. 저자가 목차에 의해 논지를 전개해 나감에 있어 각 장마다 다루고자 하는 자유주의와 기독교가 충돌을 하고 있는 부분을 일단 도표식으로 먼저 제시를 해주고 그에 따라 한 부분씩 해석을 해 나아간다면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본인은 이해력이 좀 부족하여 심하게는 같은 장은 4번 이상 읽은 예도 있다. 예를 들자면 제2장에서 본인이 책 내용을 요약한 것과 같이 기독교 교리에 대항하는 현대 자유주의의 원리는 무엇인가? 라는 큰 주제를 잡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열거한 후 그보다 작은 단락을 이용하여 한가지 한가지 비교와 대조를 함으로 현대 자유주의보다 기독교가 우월하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2. 각 장 중간 중간에 숨어 있는 세상이 기독교에 갖는 의문들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같은 부분을 여러 번 읽음으로써 나름대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집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이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끌어다 맞춘 것인지 애매하다. 어떤 부분이냐 하면 2장에서 삶과 교리를 강조하며 타협하지 않았던 바울에게 있어 그것은 관용을 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교리를 강조하는 기독교에 관용이 없다는 것을 비판하는 현대 자유주의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해 보았는데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3. 매우 중요한 부분에 대해 다루어 주어 깨닫게 되는 것과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배움이 짧은 나의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저자의 의도가 맞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아 오히려 책의 내용이 어렵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해석하는데 언어 사용에 있어 본문에 충실하려다 보니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나름대로 역자의 의견이나 방향성을 제시해 주거나 어려운 부분에 대해 역자의 주석이 있었다면 읽는 자나 배우는 자들이 좀 덜 위험하게, 좀 더 쉽게 이 책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질문
1. 과학에 의한 물질적인 진보가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 퇴보와 타락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부분과 물질적인 진보가 실용주의(인간의 삶에 있어서 실용적인 부분에 중심두는)와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행복)로 연결되어 지면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제한하고 축소하게 되었으며 개인의 특이성을 빼앗아 갔다는 부분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어떻게 영적인 부분의 퇴보와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메이천 박사님이 말씀하시고자 했던 과거의 영광이 혹 종교개혁시 일어났던 기독교적 문화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어쩐건지...제 지식이 짧아 잘 모르겠으니 해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 총평
나름대로 '기독교와 자유주의'란 주제를 가진 책을 내가 이해한 나의 언어로 바꾸어 요약을 해 보았다. 사실 요약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제대로 요약을 한 것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으려 노력을 하긴 했지만 일단 배경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짧고, 이해력이 부족해서 어떤 부분은 5번 이상을 읽어야 비로소 어떤 느낌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첫째,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나 믿지 않는 자나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가 그들의 논지를 펴기 위해 깔아 놓은 '전제' 그 자체가 역사적 개혁주의를 따르는 우리와 다른 만큼 그들을 설득하여 우리 측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도를 하며 느낀 것이지만 우리가 기본으로 삼는 성경,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기독교의 교리, 그것에 기초를 두지 않고는 우리는 우리의 논지를 펼칠 수 없다. 문제는 자유주의자나 불신자나 그것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믿기를 기도하며 간구 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둘째, 변증법이라는 영역이 단지 기독교를 방어하는 측면으로 밖에는 사용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보기에도 현대 기독교가 자유주의 물결에 너무도 많이 노출이 되어 있고 일부분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기에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냥 기독교가 우리의 진리의 부분을 공격해 오는 적들에 대해 방어적 태도만으로 대처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보면 방어를 하는 쪽은 질 수 밖에 없다. 상대편이 이곳 저곳 약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너지는 쪽은 방어하는 쪽이다. 물론 방어력이 매우 좋다면 공격이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적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배움이 짧다는 것이 참 아쉽다. 하지만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책을 통해 변증법에 대해 약간 맛을 보았고 다행히 공부를 하고 싶다는 도전이 되었기에 감사하다. 앞으로 나를 갈고 닦는다면 기독교의 교리가 단지 기독교를 보호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들을 이겨나가는데 기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기대 해본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0)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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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6.22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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