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수군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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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 수군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서론

- 본론
1. 연혁
2. 충무공의 위업
1) 옥포해전
2) 당항포해전
3) 한산도대첩
...각종 해전
3.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선조
4. 선조의 이순신 죽이기
5.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의문

- 결론
6) 이순신은 이런분

본문내용

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2) 이순신은 결백하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조정을 속여 업신여기고 적장을 놓아 주었으며 남의 공을 뻬앗았다는 등의 죄목을 씌워 그를 고문하고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결국 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자백을 받아내는데도 실패하였다. 그는 결백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일기와 장계초본이 무죄를 입증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선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순신을 죽이려 하였고 다시 고문을 가하려 하지만 이 역시 정탁의 상소문 때문에 하지 못하였다.
선조가 끝까지 이순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만일 이순신이 전장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선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 뻔하였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전장에서 장열히 전사하였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뒤집어 씌운 죄목들, 이들을 살펴보면 역시나 선조의 이순신을 죽이려는 작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이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것은 사실 김신국이 선조에게 올린 모함의 보고였다. 이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1596년 12월 안위와 이순신등이 부산의 왜군 진영에 기습하여 불을 질러 가옥과 군량등을 불태운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경주 이조좌랑 김신국이란 자가 안위가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마치 이순신이 한것처럼 거짓 보고하였다고 알리므로 이에 선조가 격분해 이순신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이 사건의 의문점은 김신국이란 자가 도대체 왜 이순신을 모함하였느냐이다. 선조에게 잘보여 득세하려는 것? 아니면 이순신이 아닌 그가 주장하는 전공자를 상주기 위해서? 그런 건 기록에 나와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선조를 부추겨 이순신을 모함하려 했던 것, 선조의 비위를 맞추고 선조 또한 자기가 원하던 거라 서로의 마음을 맞추어 나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조의 간악함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이 적장을 놓아주었다는 죄목을 보면 이 역시 선조의 이순신을 죽이려는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미 다대포에 와 있어 이를 잡으라고 명하였는데 듣지 않았다며 이순신을 옥에 가둔 일은 왜로써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간계가 통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까다로운 숙제 하나를 해결한 셈이었다. 이순신은 이 계략을 눈치채고 출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정에선는 이를 불모로 이순신을 잡아들이는 큰 실수를 하였던 것이었다. 선조는 이것으로 확실히 이순신을 죽이려 하였고 성균관 사성 남이신을 어사로 보내 이순신을 잡아들일 수 있는 허위보고를 만들어 올리게 하였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5.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의문
이순신은 정말 전장에서 적병을 추격하다 총탄에 맞아 전사한 것일까? 이 부분은 나도 정말 생각지 못한 거라 어떻게 말할 수가 없다. 책을 읽고 작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건데 이는 어쩌면 정말 계획적인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의문사는 일찍부터 제기되어 온 거라 많은 의견이 있었고, 작가는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1) 언제 진짜로 죽었는가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 즉 노량 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주위 인사들의 도움으로 그럴듯하게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 후 은둔 생활을 하며 70세까지 살았다는게 작가의 생각이다. 이순신의 장례날짜를 보면 1598년 11월 19일 노량 해전 중 전사, 영구는 먼저 고금도로 옮겨졌다가 12월 10일경에 고향인 아산으로 다시 옮겨지고 장례는 다음해 2월 11일에 치러졌다고 이분의 기록에 나와 있다. 그리고 15년 후인 1614년에 묘지를 이장하였다고도 나와 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장례비용은 국가에서 대주고 전쟁도 끝난 상황인데 도대체 죽은 후 80일이나 지나서 장례를 치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죽은 지 15년이 지난 후 묘지를 이장한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아마도 이순신의 생활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되고 15년후 비로소 죽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례를 다시 한 것이라 생각된다.
(2) 왜 죽음을 조작하였는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조는 이순신을 기여코 죽이려고 하였다. 꼭 이순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병장들처럼 전쟁의 영웅들을 없애려고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당연 위협을 느끼고 스스로 전장에서의 죽음을 택하였던 것이다. 기록을 보면 이여가 정탁의 상소문을 전재한 뒷부분에 쓴 글이 있다.
“공로가 클수록 용납되기 어려움을 스스로 깨닫고 마침내 싸움에 이르러 자기 몸을 버렸으니, 이순신의 죽음은 미리부터 계획한 것이었다고들 말하는데, 그때의 경우와 처지를 보면 그 말에 혹시 타당한 점도 있다 하련가! 아 슬프도다”
이보다 앞서는 기록으로 <김충장공유사>라는 글에 이민서의 것이 있다.
“김덕령 장군이 죽고부터는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 스스로 의혹하고 또 스스로 제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저 곽재우는 마침내 군사를 해산하고 숨어서 화를 피했고, 이순신은 바야흐로 전쟁중에 갑주를 벗고 스스로 탄환에 맞아죽었으며, 호남과 영남 등지에서는 부자와 형제들이 의병은 되지 말라고 서로들 경계하였다는 것이다.”
위 글들을 보면 만일 이순신이 전쟁이 끝났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선조가 필히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아 잡아다 죽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 그와 관련된 사람들(선조는 이미 정여립사건 등으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무참히 죽이는 포악함을 보였다.)이 연루자로 몰려서 함께 죽게 되었으리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단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가족이나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전 \"이순신 왜란, 선조, 그리고...\"』
6. 이순신은 이런 분
이순신은 문무를 겸비한 무인이었다. 이 점은 그가 문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글공부를 하다가 22세가 되어서 비로소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점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또 그가 조대중과 주고 받은 편지의 글씨와 문장을 조정에서 보고 아끼고 사랑하여 그를 평안북도 만포첨사에 임명한 사실이 있었다 하니 이런 점들을 보고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성실하고 정직하며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다. 그는 권세있는 사람에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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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9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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