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목차
들어가는 말
1. 창가학회의 이해
1.1. 가마쿠라 바쿠후 시대
1.2. 1950년대의 일본사회
1.3. 1960년대의 일본사회
1.4. 니치렌쇼슈(日蓮正宗)
1.5. 창가학회의 창립과 역대회장
2. 창가학회의 활동
2.1. SGI의 국내 유입과정
2.2. 한국 SGI의 역사
2.3. 신앙생활
2.4. 한국 SGI의 활동
2.5. 한국 SGI의 조직도와 목적
3. 창가학회의 교리
3.1. 인간관과 구원관
3.2. 신앙 대상
4. 일본의 반 창가학회 운동
4.1.「자유의 성」이란?
4.2. 이케다 다이사쿠의 발언 기록
4.3. 학회가 일으킨 반사회적 사건의 여러 가지
나오는 말
1. 창가학회의 이해
1.1. 가마쿠라 바쿠후 시대
1.2. 1950년대의 일본사회
1.3. 1960년대의 일본사회
1.4. 니치렌쇼슈(日蓮正宗)
1.5. 창가학회의 창립과 역대회장
2. 창가학회의 활동
2.1. SGI의 국내 유입과정
2.2. 한국 SGI의 역사
2.3. 신앙생활
2.4. 한국 SGI의 활동
2.5. 한국 SGI의 조직도와 목적
3. 창가학회의 교리
3.1. 인간관과 구원관
3.2. 신앙 대상
4. 일본의 반 창가학회 운동
4.1.「자유의 성」이란?
4.2. 이케다 다이사쿠의 발언 기록
4.3. 학회가 일으킨 반사회적 사건의 여러 가지
나오는 말
본문내용
의 선교를 법으로 규제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단속 방침을 천명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 처분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행정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기각하였고 이는 창가 학회의 포교 활동을 막는 행정 처분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내무부는 그런 판결과 관계없이 행정 행위로서 창가 학회의 활동을 계속해서 단속할 것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서도 창가 학회는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대도시 변두리의 부녀자들을 휩쓸며 신도 수효를 불려 갔다. 그러자 각 종교 단체와 학회에서 이 ‘왜색 사이비’ 종교를 내쫓자는 성토 대회가 잇달았다. 대학생들이 집회소에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고등학교 삼학년 학생이 불을 지르는 ‘애국 테러’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으로 죽은 노파를 되살린다고 62일 동안이나 송장과 동거한 대구의 여자 광신도가 창가 학회를 따르다가 정신 병원에 입원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알려져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으며, 일련 정종의 신도 단체인 일본 창가 학회의 자금 밀반입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렸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1970년대 후반, 일련정종과 창가학회는 국내에서 내분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지역별로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일련정종의 신도조직인 창가학회가 종단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독자적인 종교법인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게 되자 그 여파는 국내에도 미쳐 일련정종 창가학회는 여러 분파 현 국내에는 한국 일련 정종 총본부와 한국 일련 정종 불교회, 대한 일련 정종 법화강, 단신도회로 갈라져 있다. 이 중에서 신도 수효와 재산과 조직이 가장 큰 것이 한국 일련 정종 불교회이니 이것은 일본 창가학회 계열로서 SGI, 곧 국제창가학회의 한국 지부이기도 하며 거느린 신도가 오십만명이다. 조직도 가장 방대해서 신도 7,000명에서 20,000명까지를 거느리는 총합 본부가 서울에만 23개, 전국에 49개나 있다. 이에 견주면 다른 분파들은 신도수가 많아야 50,000명에서 70,000명쯤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매우 영세한 상태에 있다.
의 일련정종과 SGI한국불교회로 완전히 분리된다.
창가학회라는 이름이 국민들로부터 왜색 종교라는 혐오감을 일으켜 포교에 어려움을 겪자 이들은 92년 이후 SGI한국불교회라는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 농촌 일손돕기, 국토대청결운동 등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펼쳐, 현재 서울, 경기, 대구, 부산 등 25개 지역에 70만 명의 신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2백20여개에 달하는 문화회관을 가지고 있으며 충불 진천에는 연간 1만 명 이상이 연수를 받을 수 있는 2만평 규모의 연수센터가 10월말 준공 예정으로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국제창가학회의 왕성한 활동에 대해 97년 7월부터 금년 5월까지 경희대에서는 이케다 회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제주대에서는 이케다 회장의 국내 방문을 위한 초청장을, 충북 진천군에서는 명예군민증서를, 포항시, 대구대, 통영시, 부산대, 안동대, 울릉군, 서울시의회, 서울 종로구청, 광주시의회, 고양시, 안동시의회, 구미시, 김천시, 경주시 등은 감사패와 현창패 등을 수여했다.
이들의 조직적인 국내 침투와 유포에 대해 교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헌법에 보장된 \'신앙의 자유\'만을 내세워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신흥 종교를 연구해온 종교학자들은 국제창가학회의 국내 정착에 대해 심한 우려와 함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특히 창가학회나 일련정종이 기존의 불교와는 정면으로 배치된 이론과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이들을 제외한 모든 불교종파를 방법(謗法)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자칫 불교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여 불교의 붕괴마저도 초래할 수 있다고 종교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2.2. 한국 SGI의 역사
한국의 일련정종은 1975년 6월에 서울의 동대문구 신설동에 중앙사무국을 세우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몇 개월 뒤, 전국 18개의 총합본부와 77개의 지역본부가 추가로 구성되었으며 1978년 7월 초대 이사장에 김동현이 취임하였다.
1981년 9월에 제2대 이사장으로 조대철이 취임하였으며 중앙사무국을 현재의 구로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도서출판 화광출판사의 등록과 ‘어서전집’의 한국어판이 출판되었다. 1990년 9월 21일 SGI 회장인 이케다의 한국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그날을 ‘불교회의 날’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1994년 조대철을 이어 받덕현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 후 일련정종은 발전을 거듭하여 23개의 방면과 69개의 권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97년에는 ‘聖敎 타임즈’가 현재의 화광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였고 제 4대 이사장 박재일이 취임하였다. 90년대 후반에 이케다 이사장은 경희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학위와 각종 감사패 등을 받으면서 국내에서의 입지를 다져갔으며 이 결과 마침내 2000년에 재단 법인 ‘한국 SGI\'로 등록하였으며 현 제5대 여상락 이사장의 취임과 지난 5월 나라 사랑 대축제(올림픽 주 경기장)의 개최와 전국 35개 방면, 112 권으로 개편 및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3. 신앙생활 참조 : 문화공보부, 한국신흥 및 유사종교 실태조사 보고서, 1970, 580- 584.
1) 예배(禮拜)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절은 층의 예배가 있고 어른들의 정식 예배는 12시부터 시작이다. 이들의 정식예배는 일요일 오후 7시이며 낮에는 청년회 남녀 학생회 및 부인회 등의 예불 시간이 있다.
예배의 장소 앞에는 동쪽을 향해 설단인 불단(壇)이 있으며 그 신위(神位)에는 ‘남무묘법련화경신영위(南無妙法蓮華經神靈位)’란 글자가 쓰여져 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신도들은 예배소에 들어와 제각기 자리에 앉아 불단을 향해 염주를 비비면서 남묘호렝게교를 봉창하면서 삼배한다. 봉창시 똑바로 눈을 뜨고 있어야 하며 독송도 세 번 외운다.
예배 순서는 「동양광포의 노래 봉창」 - 「염불(근행)」 - 「설법」 - 「공덕담」으로 되어 있다. 동양광포 1. 구원의 서광 묘병의 광선유포의 때는 왔도라.
굳세게 일어나 지금 이곳에 이 넓은 대지를 힘차게 밟고서
동양광포는 우리의 손으로
2. 믿는 자들은 항상 이기며 나아가자
이런 가운데서도 창가 학회는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대도시 변두리의 부녀자들을 휩쓸며 신도 수효를 불려 갔다. 그러자 각 종교 단체와 학회에서 이 ‘왜색 사이비’ 종교를 내쫓자는 성토 대회가 잇달았다. 대학생들이 집회소에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고등학교 삼학년 학생이 불을 지르는 ‘애국 테러’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으로 죽은 노파를 되살린다고 62일 동안이나 송장과 동거한 대구의 여자 광신도가 창가 학회를 따르다가 정신 병원에 입원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알려져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으며, 일련 정종의 신도 단체인 일본 창가 학회의 자금 밀반입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렸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1970년대 후반, 일련정종과 창가학회는 국내에서 내분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지역별로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일련정종의 신도조직인 창가학회가 종단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독자적인 종교법인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게 되자 그 여파는 국내에도 미쳐 일련정종 창가학회는 여러 분파 현 국내에는 한국 일련 정종 총본부와 한국 일련 정종 불교회, 대한 일련 정종 법화강, 단신도회로 갈라져 있다. 이 중에서 신도 수효와 재산과 조직이 가장 큰 것이 한국 일련 정종 불교회이니 이것은 일본 창가학회 계열로서 SGI, 곧 국제창가학회의 한국 지부이기도 하며 거느린 신도가 오십만명이다. 조직도 가장 방대해서 신도 7,000명에서 20,000명까지를 거느리는 총합 본부가 서울에만 23개, 전국에 49개나 있다. 이에 견주면 다른 분파들은 신도수가 많아야 50,000명에서 70,000명쯤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매우 영세한 상태에 있다.
의 일련정종과 SGI한국불교회로 완전히 분리된다.
창가학회라는 이름이 국민들로부터 왜색 종교라는 혐오감을 일으켜 포교에 어려움을 겪자 이들은 92년 이후 SGI한국불교회라는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 농촌 일손돕기, 국토대청결운동 등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펼쳐, 현재 서울, 경기, 대구, 부산 등 25개 지역에 70만 명의 신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2백20여개에 달하는 문화회관을 가지고 있으며 충불 진천에는 연간 1만 명 이상이 연수를 받을 수 있는 2만평 규모의 연수센터가 10월말 준공 예정으로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국제창가학회의 왕성한 활동에 대해 97년 7월부터 금년 5월까지 경희대에서는 이케다 회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제주대에서는 이케다 회장의 국내 방문을 위한 초청장을, 충북 진천군에서는 명예군민증서를, 포항시, 대구대, 통영시, 부산대, 안동대, 울릉군, 서울시의회, 서울 종로구청, 광주시의회, 고양시, 안동시의회, 구미시, 김천시, 경주시 등은 감사패와 현창패 등을 수여했다.
이들의 조직적인 국내 침투와 유포에 대해 교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헌법에 보장된 \'신앙의 자유\'만을 내세워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신흥 종교를 연구해온 종교학자들은 국제창가학회의 국내 정착에 대해 심한 우려와 함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특히 창가학회나 일련정종이 기존의 불교와는 정면으로 배치된 이론과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이들을 제외한 모든 불교종파를 방법(謗法)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자칫 불교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여 불교의 붕괴마저도 초래할 수 있다고 종교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2.2. 한국 SGI의 역사
한국의 일련정종은 1975년 6월에 서울의 동대문구 신설동에 중앙사무국을 세우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몇 개월 뒤, 전국 18개의 총합본부와 77개의 지역본부가 추가로 구성되었으며 1978년 7월 초대 이사장에 김동현이 취임하였다.
1981년 9월에 제2대 이사장으로 조대철이 취임하였으며 중앙사무국을 현재의 구로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도서출판 화광출판사의 등록과 ‘어서전집’의 한국어판이 출판되었다. 1990년 9월 21일 SGI 회장인 이케다의 한국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그날을 ‘불교회의 날’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1994년 조대철을 이어 받덕현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 후 일련정종은 발전을 거듭하여 23개의 방면과 69개의 권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97년에는 ‘聖敎 타임즈’가 현재의 화광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였고 제 4대 이사장 박재일이 취임하였다. 90년대 후반에 이케다 이사장은 경희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학위와 각종 감사패 등을 받으면서 국내에서의 입지를 다져갔으며 이 결과 마침내 2000년에 재단 법인 ‘한국 SGI\'로 등록하였으며 현 제5대 여상락 이사장의 취임과 지난 5월 나라 사랑 대축제(올림픽 주 경기장)의 개최와 전국 35개 방면, 112 권으로 개편 및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3. 신앙생활 참조 : 문화공보부, 한국신흥 및 유사종교 실태조사 보고서, 1970, 580- 584.
1) 예배(禮拜)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절은 층의 예배가 있고 어른들의 정식 예배는 12시부터 시작이다. 이들의 정식예배는 일요일 오후 7시이며 낮에는 청년회 남녀 학생회 및 부인회 등의 예불 시간이 있다.
예배의 장소 앞에는 동쪽을 향해 설단인 불단(壇)이 있으며 그 신위(神位)에는 ‘남무묘법련화경신영위(南無妙法蓮華經神靈位)’란 글자가 쓰여져 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신도들은 예배소에 들어와 제각기 자리에 앉아 불단을 향해 염주를 비비면서 남묘호렝게교를 봉창하면서 삼배한다. 봉창시 똑바로 눈을 뜨고 있어야 하며 독송도 세 번 외운다.
예배 순서는 「동양광포의 노래 봉창」 - 「염불(근행)」 - 「설법」 - 「공덕담」으로 되어 있다. 동양광포 1. 구원의 서광 묘병의 광선유포의 때는 왔도라.
굳세게 일어나 지금 이곳에 이 넓은 대지를 힘차게 밟고서
동양광포는 우리의 손으로
2. 믿는 자들은 항상 이기며 나아가자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