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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글쓰기에 앞서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책을 읽고 난 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책을 읽고 난 후....
본문내용
반면, 두 번째 책은 그의 자료들을 너무 심하게 편집했다는 비평을 듣는다. 그들은 누가가 지나치게 자유로워서 그 결과로 사도행전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신빙성이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코 누가의 예술가적인 요소만을 살펴보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은 실제로 매우 아름답게 기술된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근본 관심사는 바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4. 주와 종
예수님의 앞 길을 예비하는 자 :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에베소 지방에까지 거주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데오빌로는 아마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누가가 예수님과 요한을 비교하면서 그의 복음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누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과 요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나타난 표현형식을 살펴보면 누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차례대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요한의 출생이 제시되며,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 기술된다. 계속해서 두 사람의 사역이 다루어지며, 여기서는 종종 같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요한의 사역을 언급할 때 모두 로마황제가 규정한 시간을 따르는 역사구조 속에서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자손, 그리스도, 성령을 전하는 자,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아들 등 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모습이 실제로 실현되어 나타났다. 그분의 오심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보내졌다. 마지막 아담인 예수는 사단의 유혹을 완전히 물리치셨다. 그분은 이 때부터 지상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이제 은혜의 빛 아래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고 있을 수 없다.
5. 축제의 해가 시작됨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 : 가난한 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음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가 언급한 가난한 자들이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요한 자들과 귀족들을 많이 포함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것을 강한 힘을 소유한 데오빌로에게 깨우쳐 주시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 : 누가는 첫 장에서 상당한 부분을 언약에 대하여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누가복음 전체에 걸쳐 언약이 강조되고 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는 예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는지를 보여준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일으키시는 그분의 계획 중 일부다.
이스라엘의 타락에 관한 문제 : 주의 종은 이방의 빛이 될 수 있는데 누구든지 유대의 후손인지, 좋은 일을 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축제의 해에 주어질 참평화는 오직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십자가의 조짐 :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신랑의 오심으로 기뻐한다든가 죄용서함 같은 것은 결코 원치 안았다. 데오빌로 역시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얻은 지식으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이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더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따로 기도하러 가셨을 때 말씀하신 대로 인자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는 거기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셔야만 했다.
6.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
구원을 선포하는 자 : 일반적으로 어떤 사건이 기술될 때마다 그 사건을 서론으로 시작하여 자연히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누가복음의 첫 단원에서 예수님이 구원을 행하는 자로 묘사되었다면, 이 단원에서는 구원을 선포하는 자로 나타난다.
예루살렘에서의 예언된 임무 : 기록된 모든 것은 주님의 출애굽이 이루어질 예루살렘을 향하여 의도적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7. 평화의 성에서 버림받으신 메시아
예루살렘이 결정해야 할 때 : 예수님과 예루살렘에 절정의 날이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맞아들이지 않으려 했음이 확실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분의 죽음 또한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그 성은 주님에 대하여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평화의 성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실 평화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땅은 평화를 박탕당하게 된다. 일찍이 스가랴는 그렇게나 즐거워했지만, 그들은 위로부터 찬란한 태양이 비췰 시간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 골고다로 갔던 영인들에게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에 임박했던 심판으로 인하여 허리를 펴실 수가 없었다. 그분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던 군인들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다가올 심판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예수님은 오순절 이후의 은혜의 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도 그들이 무엇을 행했는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옆에 못 박힌 자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을 때, 이 약속은 동시에 이스라엘의 광신자들이 검으로 낙원 찾는 것을 그만두고 너무 늦기 전에 참 메시아를 받아들이도록 부르짖는 호소였다.
8.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는 승리
교리 수업 : 영광으로 이끄는 길은 예수님의 무덤에서 시작된다. 산헤드린의 한회원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서 무덤에 넣을 수 있도록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는다. 갈릴리의 여인들도
4. 주와 종
예수님의 앞 길을 예비하는 자 :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에베소 지방에까지 거주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데오빌로는 아마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누가가 예수님과 요한을 비교하면서 그의 복음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누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과 요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나타난 표현형식을 살펴보면 누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차례대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요한의 출생이 제시되며,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 기술된다. 계속해서 두 사람의 사역이 다루어지며, 여기서는 종종 같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요한의 사역을 언급할 때 모두 로마황제가 규정한 시간을 따르는 역사구조 속에서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자손, 그리스도, 성령을 전하는 자,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아들 등 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모습이 실제로 실현되어 나타났다. 그분의 오심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보내졌다. 마지막 아담인 예수는 사단의 유혹을 완전히 물리치셨다. 그분은 이 때부터 지상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이제 은혜의 빛 아래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고 있을 수 없다.
5. 축제의 해가 시작됨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 : 가난한 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음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가 언급한 가난한 자들이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요한 자들과 귀족들을 많이 포함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것을 강한 힘을 소유한 데오빌로에게 깨우쳐 주시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 : 누가는 첫 장에서 상당한 부분을 언약에 대하여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누가복음 전체에 걸쳐 언약이 강조되고 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는 예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는지를 보여준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일으키시는 그분의 계획 중 일부다.
이스라엘의 타락에 관한 문제 : 주의 종은 이방의 빛이 될 수 있는데 누구든지 유대의 후손인지, 좋은 일을 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축제의 해에 주어질 참평화는 오직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십자가의 조짐 :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신랑의 오심으로 기뻐한다든가 죄용서함 같은 것은 결코 원치 안았다. 데오빌로 역시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얻은 지식으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이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더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따로 기도하러 가셨을 때 말씀하신 대로 인자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는 거기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셔야만 했다.
6.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
구원을 선포하는 자 : 일반적으로 어떤 사건이 기술될 때마다 그 사건을 서론으로 시작하여 자연히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누가복음의 첫 단원에서 예수님이 구원을 행하는 자로 묘사되었다면, 이 단원에서는 구원을 선포하는 자로 나타난다.
예루살렘에서의 예언된 임무 : 기록된 모든 것은 주님의 출애굽이 이루어질 예루살렘을 향하여 의도적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7. 평화의 성에서 버림받으신 메시아
예루살렘이 결정해야 할 때 : 예수님과 예루살렘에 절정의 날이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맞아들이지 않으려 했음이 확실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분의 죽음 또한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그 성은 주님에 대하여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평화의 성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실 평화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땅은 평화를 박탕당하게 된다. 일찍이 스가랴는 그렇게나 즐거워했지만, 그들은 위로부터 찬란한 태양이 비췰 시간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 골고다로 갔던 영인들에게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에 임박했던 심판으로 인하여 허리를 펴실 수가 없었다. 그분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던 군인들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다가올 심판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예수님은 오순절 이후의 은혜의 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도 그들이 무엇을 행했는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옆에 못 박힌 자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을 때, 이 약속은 동시에 이스라엘의 광신자들이 검으로 낙원 찾는 것을 그만두고 너무 늦기 전에 참 메시아를 받아들이도록 부르짖는 호소였다.
8.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는 승리
교리 수업 : 영광으로 이끄는 길은 예수님의 무덤에서 시작된다. 산헤드린의 한회원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서 무덤에 넣을 수 있도록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는다. 갈릴리의 여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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