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보면 읽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규칙적인 행갈이 때문이다. 이러한 불규칙적 행갈이는 기존 서정시의 문법적 파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시들의 행/연 나눔은, 어떤 의식의 전개 상태를 따라서 혹은 정돈된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시는 거의 모든 행에서 불규칙적으로, 불편한 행갈이를 택하고 있다. 가령,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나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과 같은 식이다. 이러한 행갈이의 의미가 갖는 것은 이 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의 복합적인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의 의도는, \'아픔\'이 부재한 상태로서의, 삶이 거세된 상황에 대한 교란작전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규칙적인 행갈이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시인의 의식적인 거부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이 시를 만약에 위와 같은 패턴의 행갈이로 가져간다면 훨씬 읽기에 편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제시한 여러 인간 군상(群像)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명확하게 잡혀질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제시된 것처럼, 단순히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위와 같은 \'불감의 풍경\'들은 부정되어야 할 대상의 것이고 그 부정되어야 할 대상의 풍경은 일차적으로, \'읽기의 불편함\'에 의해서 해체된다. 이 시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상황은 시인의 파악에 의하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황\'이고, 그러한 상황은 의도적인 행갈이의 불편함, 그리고 그것에 의한 읽기의 부자연스러움에 의해서 일차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날\'로 명명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모습을 가능케 하는 삶의 조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시인이 부정하고자 한 대상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몇 가지 정보에 의해서 이 시가 씌여진 시기가 1970년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가 수록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의 출판 연도는 1980년이고 이성복은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데뷔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을 관통하는 대학생활을 겪었을 것이고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 출생이고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그 시대의 불합리와 여러 가지 모순들을 경험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유신독재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더라도, 시인이 가장 예민하게 시대에 반응한 시기는 명백하게 \'유폐\'라고 말할 수 있는 억압의 시기였다. 정치적 억압이나 자유의 제한 등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성복의 초기 시편들이 씌여진 시기는 인간의 삶을 인간의 것이게 하는 장치들이 어떤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서 억압되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시 쓰기는 고역일 수밖에 없고, \'아픔\'을 온전히 \'아픔\'으로 존재하게 만들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시인이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는 대상세계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아직도 지나가는 海軍 찝차를 보면 경례! 붙이고 싶어\'지는(「제대병」), 어떤 제도화된 병들어 있음에 길들여진 상황이고 그것은 \'아픔\'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와의 불화의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병이 극도로 깊었던 때이다. 그것은 이제 막 유연성과 탄력성이 붙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아플 각오와 용기를 한껏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앓던 병들은 대개 나의 바깥에서, 세상에서 나에게로 왔고, 아픈 나에게서 가까스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신음 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었으며, 병 자신의 것이었다.
- 이성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가』中
「동숭동 시절의 추억」에서 발췌
이성복의 첫 시집을 유심히 살펴보면 유난히, 어떤 시기를 지칭하는 낱말 중에 \'그\'라는 것이 많이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날」이 그렇고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이 그렇고 「그해 가을」이 그렇다. 하지만 세 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상적인 국면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일상적인 국면은 \'치욕\'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고 (이러한 \'치욕\'에 대한 천착은 두 번 째 시집 『남해 금산』에서 더욱 심화된다) \'그\'라고 명명된 시기는 그래서 자동화된 무감각화, 즉 은폐된 치욕과 환멸의 \'실감\'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시간이다. 이성복의 첫 시집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삶의 죽음으로서의 \'망각\'에 대한 \'드러내기\'에 있고, 그 망각의 드러냄은 \'아픔\'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날」이라는 시에서 보여지는 것은 \'아픔\'을 \'아픔\'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듦\'의 상태, 그리고 그 \'병듦\'의 상태에 대한 연대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행의 메시지는 이러한 \'치욕\'의 상황에 대한 자각, 그리고 \'치욕의 연대\'를 통해 \'병들어 있음\'을 치유하기 위한 강력한 열망이라고 읽어볼 수 있다.「그날」이 보여주는 세계는 계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쳐 있는 \'그날\'의 치욕적인 아픔의 망각 상태에 대한 괴로움의 발견이다. 이러한 발견은 \'병듦\'의 치료를 위한 첫 번째 이행, 즉 \'치유의 첫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 초입에 유하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발표함으로써 해체시의 시대를 선언한다.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 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
그러나 갈수록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이 시를 만약에 위와 같은 패턴의 행갈이로 가져간다면 훨씬 읽기에 편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제시한 여러 인간 군상(群像)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명확하게 잡혀질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제시된 것처럼, 단순히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위와 같은 \'불감의 풍경\'들은 부정되어야 할 대상의 것이고 그 부정되어야 할 대상의 풍경은 일차적으로, \'읽기의 불편함\'에 의해서 해체된다. 이 시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상황은 시인의 파악에 의하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황\'이고, 그러한 상황은 의도적인 행갈이의 불편함, 그리고 그것에 의한 읽기의 부자연스러움에 의해서 일차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날\'로 명명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모습을 가능케 하는 삶의 조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시인이 부정하고자 한 대상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몇 가지 정보에 의해서 이 시가 씌여진 시기가 1970년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가 수록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의 출판 연도는 1980년이고 이성복은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데뷔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을 관통하는 대학생활을 겪었을 것이고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 출생이고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그 시대의 불합리와 여러 가지 모순들을 경험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유신독재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더라도, 시인이 가장 예민하게 시대에 반응한 시기는 명백하게 \'유폐\'라고 말할 수 있는 억압의 시기였다. 정치적 억압이나 자유의 제한 등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성복의 초기 시편들이 씌여진 시기는 인간의 삶을 인간의 것이게 하는 장치들이 어떤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서 억압되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시 쓰기는 고역일 수밖에 없고, \'아픔\'을 온전히 \'아픔\'으로 존재하게 만들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시인이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는 대상세계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아직도 지나가는 海軍 찝차를 보면 경례! 붙이고 싶어\'지는(「제대병」), 어떤 제도화된 병들어 있음에 길들여진 상황이고 그것은 \'아픔\'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와의 불화의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병이 극도로 깊었던 때이다. 그것은 이제 막 유연성과 탄력성이 붙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아플 각오와 용기를 한껏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앓던 병들은 대개 나의 바깥에서, 세상에서 나에게로 왔고, 아픈 나에게서 가까스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신음 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었으며, 병 자신의 것이었다.
- 이성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가』中
「동숭동 시절의 추억」에서 발췌
이성복의 첫 시집을 유심히 살펴보면 유난히, 어떤 시기를 지칭하는 낱말 중에 \'그\'라는 것이 많이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날」이 그렇고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이 그렇고 「그해 가을」이 그렇다. 하지만 세 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상적인 국면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일상적인 국면은 \'치욕\'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고 (이러한 \'치욕\'에 대한 천착은 두 번 째 시집 『남해 금산』에서 더욱 심화된다) \'그\'라고 명명된 시기는 그래서 자동화된 무감각화, 즉 은폐된 치욕과 환멸의 \'실감\'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시간이다. 이성복의 첫 시집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삶의 죽음으로서의 \'망각\'에 대한 \'드러내기\'에 있고, 그 망각의 드러냄은 \'아픔\'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날」이라는 시에서 보여지는 것은 \'아픔\'을 \'아픔\'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듦\'의 상태, 그리고 그 \'병듦\'의 상태에 대한 연대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행의 메시지는 이러한 \'치욕\'의 상황에 대한 자각, 그리고 \'치욕의 연대\'를 통해 \'병들어 있음\'을 치유하기 위한 강력한 열망이라고 읽어볼 수 있다.「그날」이 보여주는 세계는 계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쳐 있는 \'그날\'의 치욕적인 아픔의 망각 상태에 대한 괴로움의 발견이다. 이러한 발견은 \'병듦\'의 치료를 위한 첫 번째 이행, 즉 \'치유의 첫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 초입에 유하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발표함으로써 해체시의 시대를 선언한다.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 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
그러나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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