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에니메이션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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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디즈니 에니메이션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1)‘디즈니’가 순수하다고? - 순수함을 상표화한 디즈니 에니메이션
2) 디즈니식 사고와 상품으로 세뇌하라(?)
3) 디즈니 영화에 대한 비판
4) 아이들이 디즈니에게서 배우는 것들 - 디즈니의 ‘미국식 가족’ 전략
5) 정말 폭력적인 영화가 폭력을 조장할까? - 디즈니 제대로 가르치기

2. 패러디란 무엇인가?
• 리메이크 영화와 패러디영화의 차이점
<참고: 벌레스크[burlesque] 풍자[諷刺, Satire]등 용어설명>

3. “슈렉”과 “프린스 앤 프린세스” VS 디즈니 만화영화들의 비교
1) 슈렉
① 화제 집중!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
② 드림웍스의 <슈렉> VS 디즈니 영화들
③ 영화 “슈렉”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2) 프린스 앤 프린세스
① 동화에서 벗어난 여섯 개의 동화
② 디즈니 왕국의 셀 애니메이션과 가난한 사무실의 실루엣 애니메이션

본문내용

완고함, 선택, 탐욕, 남성우월주의 가운데 잔인성 같은 폭넓은 이야기들과 밀접하게 결속돼 있다.
만약 영화 관람객들이 영화의 이념적 의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면 그 희열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들이 주는 메시지는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이런 영화를 구성하는 가설은 에니메이션에 담겨질 수 있는 소수의 문화적 의미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예상 관객들이 대부분 어린이들일 경우에 더욱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에 대한 비평가들의 역할은 어떤 이념적 해석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이 영화들이 전달하는 주제와 가설을 작품 내부 혹은 외부에서 지배하는 제도적이고 이념적인 형식을 염두해 두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분석을 위해, 첫째로 디즈니 영화를 디즈니의 다른 자료들과 대비해 살펴보면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합법화시키는 유사한 시도들에 대해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디즈니의 미국에 대한 상징화와 미국의 디즈니에 대한 상징화의 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근저에 깔린 의미를 해석해내며, 그 의미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며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4) 아이들이 디즈니에게서 배우는 것들 - 디즈니의 ‘미국식 가족’ 전략
유치한 소녀감정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데렐라〉의 요정할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샬라카 둘라 멘치카 불라~’ 주문을 외거나, 〈정글북〉의 모글리와 곰이 배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디즈니의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쇼를 보면 디즈니월드 곳곳에 서 있는 ‘디즈니 100년간의 마술’이란 표어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디즈니는 여전히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코드였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꿈과 환상’이란 게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볼 기회가 있었다. 월트 디즈니의 조카이자 현재 디즈니그룹의 부회장인 로이 디즈니,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장 토머스 슈마커 등 경영진과의 인터뷰 대화내용을 보고 나서이다.
“드림웍스가 어떤 시도를 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디즈니는 다르다. 지난 75년간 쌓아온 사람들의 기대를 버릴 이유가 없다. 특히 적어도 미국에서 중요한 주제는 여전히 ‘가족’이다. 우리 전략은 가치 더하기 오락이다. 오락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가족의 유대’라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그들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외부의 비판에 ‘귀를 막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언제나 가족은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다. 미국만큼 가족단위가 해체되고 문제가 많은 나라도 없는데 말이다.
〈디즈니의 순수함과 거짓말〉에서 헨리 지루가 “디즈니의 세계에서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는 이념적 도구”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도피주의와 역사적 망각과 인위적인 세뇌라는 전략은 미국의 정체성을 백인, 교외 주거지, 중산층 그리고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만으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새삼 디즈니의 전략을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나 또한 충분히 디즈니를 즐기니까. 다만 디즈니의 미국식 전략을 전세계인이 똑같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디즈니에게서 배우는 것들은 무엇일까?
여자아이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디즈니 에니메이션에서 가장 논란의 소지가 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인어공주>와 <라이온 킹>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켜 한정된 의미만으로 여성 등장인물을 구성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성 인물은 궁극적으로 남성들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힘이나 희망을 전적으로 지배적인 남성들의 이야기 안으로 국한시킨다. 예를들어 다소 나약한 바비 인형을 닮은 <인어공주>의 아리엘은 언뜻 보기에는 부모의 통제에 대항하는 것처럼 보이고 인간 세계를 탐험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소망에서 주체와 객체를 제한하는 위험을 무릅쓰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 트리톤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투쟁과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바다의 마녀인 우술라와 파멸의 계약을 맺는다. 그 대가로 아리엘은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고 미남 왕자 에릭을 따르기 위해 두 다리를 얻는다.
여자 아이들은 아리엘의 십대 소녀 같은 반항에 즐거워할지 모르지만, 결국 욕망과 힘을 얻는 방법은 멋진 남자를 잡아서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고 믿도록 길들여진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여주인공 아리엘은 영화의 진행 과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우술라가 남성들은 말 많은 여성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목소리가 없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는데, 그 의미는 에릭 왕자가 말 못하는 아리엘에게 입맞춤을 하려는 장면에서 극화된다. 이런 여성에 대한 고지식한 표현방식에서 여성성은 아리엘처럼 해저생활을 포기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올바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상받는다. 이것이 바로 디즈니의 세계관 속에서 보편적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정체성의 문화적 모델인 것이다.
<인어공주>에서처럼 고지식한 여성의 역할은 디즈니 영화 세계에서 쉽게 발견된다. 오히려 디즈니의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되면서 더욱더 강화된다. 예를 들어 <알라딘>에서 주체적인 행동과 힘은, 서두에서 거리의 부랑아로 나오는 알라딘에게 집중돼 있다. 알라딘이 사랑에 빠진 자스민은 그의 즉흥적인 욕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출세의 주춧돌이다. 자스민의 인생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들에게 달려있고, 그녀의 행복은 마침내 결혼을 허락해주는 알라딘에 의해 보장된다.
디즈니 영화에서 성이라는 주체는 <미녀와 야수>,<포카혼타스>,<뮬란>에서 좀더 복잡해진다. <미녀와 야수>의 여주인공 벨은 18세기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 묻혀 사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항상 책읽기를 좋아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벨을, 198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허풍이 센 근육질의 남성을 떠올리게 하는 개스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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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4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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