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 작가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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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친일문학 작가들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제 말기 문인들의 동향

2.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권

3. 정비석, 장혁주, 김동환, 김용제, 정인택, 주요한, 최정희 분석

본문내용

12일에 그는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의 주간을 지낸 최재서(崔載瑞)와 같이 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중도 와해로 그는 일주일 만에 풀려나고 말았다. 한국전쟁 와중에 그는 미군부대 산하 민병유격대 정훈학교 고문을 시작으로 반공투사로 변신했다. 그후 그는 〈청산무정〉 〈임꺽정전〉 〈김립(金笠)방랑기〉 〈김소월방랑기〉 등 시 몇 편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지난 1978년에 발간된 『한국문학』 8월호에 「고백적 친일문학론」이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친일은 독립운동을 위한 \'위장\'이었다며 심지어 박희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지광』이 항일 지하단체의 본거지였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바 있다. 그와 박희도는 1939년까지 이광수와 같이 \'민족실리쟁취\' 촉진을 위해 합법적 활동에 주력했으나 그후로는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민족무차별\'을 주장하며 『동양지광』을 소위 동아연맹 조선지부의 본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동아연맹은 원래 일본 극우파가 주동이 돼 황도사상을 기반으로 만든 단체다. 또 그가 조선본부의 후견인이라고 거명한 이시하라와 이타가키는 각각 일본군 교토지구사령관, 조선군사령관이다.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일제하 반민족행각은 해방 후 제대로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탓으로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⑤정인택
<약력>
서울 출생. 《매일신보》 《문장(文章)》의 기자로 있었으며, 1930년 소설 《나그네 두 사람》을 발표,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의 작품 《시계》 《촉루》 등은 무력한 지식인의 과잉된 의식세계를 추적하는 심리 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1인칭의 화자를 내세워 사소설(私小說) 형식을 취했으며, 도시를 변모와 오탁의 공간, 특히 무기력한 지식인의 집중 공간, 그리고 단절과 소외의식을 유발시키는 부정적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집중시켰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도시를 실제적 공간으로서보다는 내적 자기의식을 은유하는 비실제적 공간으로 바꾸어놓은 데서 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적 심리묘사의 경향은 점차 일상화된 애정세계의 묘사, 특히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의 한 단면의 묘사로 옮겨가서, 후기의 《여수(旅愁)》 《행복》 등은 거의 애정소설로 일관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조선문인보국회에 관여했으며, 친일적인 작품들을 썼다. 8·15광복 후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6·25전쟁 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집에 《연연기(戀戀記)》가 있다.
정인택의 창작정신을 말하는 평론 혹은 수필 종류는 거의 없다. 다만 국민대학 42년 1월호의 앙케이트 ‘금후 여하히 쓸 것인가‘에 답한 단상 및 동 ’작가의 각오 기타‘등을 통해서 그 단편적인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이 중 전자를 아래에 기록하면,
< 무엇보다도 문학 자체의 직능을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 하나의 부동한 신념 위에 서고, 문학자의 입장을 지켜 가면서 그것이 저절로 국책의 선에도 합치되도록, 그런 방향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맹목적인 편승적 작품은 불가하다는 정보국의 경고 속에는 많은 정당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극언한다면, 이 정신적 각오만 확고하다면 데카다니즘조차를 국책에 순응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워낙 이 계통의 글이 없는 정인택이라 이것만으로써 그의 창작 정신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이상 문면에 나타난 바로는 문학자다운 각오가 우선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문학의 중심 문제를 국책 협력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인택의 창작활동은 비교적 왕성한 편이다. 그리고 이 방면으로 우선 거론할 것이 창작집 ‘청량리계외’이다. 이 책은 단편 ‘청량리계외’, ‘색상자’, ‘곡’, ‘아름다운 생활’, ‘개나리꽃’, ‘바닷가’, ‘참새를 굽다’, ‘미련을 두지 않으리’, ‘학서’의 11편을 수록하였다. 이제 그 작품세계들에 대해 고찰하도록 하겠다.
<<청량리계외>>
-줄거리-
청량리로 이사하여 얼마간, 서먹서먹한 마음이 가셔질 무렵 ‘나’는 인문학원 조무래기들과 친했다. 친문을 읽는데 그들은 물을 얻어 먹으러 왔던 것이다. 아주머니한테 청해 먹으라는 대로 그들은 뒤곁으로 가서 마시고 끼얹고 법석이었다. 이후 그들은 연필 종이 등을 빌리러 왔고 월사금을 빌려 달라는 넉살좋은 녀석도 더러 있었다.
담장 하나 이웃인 인문학원은 부근 유일한 초등교육기관, 창고 같은 건물에 우물도 수도도 없이 주야 2부제로 백 평 정도이다. 책상조차 못 가진 그들이 가엾어서 ‘나’는 장난이 지나치다는 아내의 불평쯤 묵살해 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화초를 뽑고 낙서를 하고 우물가에다 오줌을 싸고 병아리를 때려 죽이고 법석을 떨었다. 그럴때마다 아내는 선생과 따집네 너무 귀여워하는 탓입네 하고 투덜거렸다. 선생이라야 중년 여인이 둘뿐이었지만-.
이러구러 어느 날 아이들은 펌프를 박살을 내고 말았다. 우물 속에다가는 흙을 처넣었다. 당장 저녁 물이 아쉬운데 마침 ‘갑돌’이가 지나치다 한 짐 길어 주었다. 이튿날 선생과 따지러 간 아내는 방학이 앞당겨진 것을 알고 낙심한다.
호박밭 하나 건너 갑돌네와는 내왕이 없던 차 저녁 물 한 짐의 인연으로 거래가 트인다. 그리고 이 계기가 아담한 문화주택과 이웃 초가집들과의 소원했던 거리를 좁힌다. 이 무렵 ‘청량리애국반제X구제X반장’에 추천된 아내는 국민총력이니 하는 잡지를 읽어가면서 그 주축을 담당한다. 아내는 이웃, 특히 갑돌네와 자주 내왕했다.
이웃은 모두 영세민이다. 그러나 아들만큼은 꼭 공부시키겠다는 갑돌이 어머니의 통사정에 감동한 아내는 ‘나’에게 인문학원의 발전책을 의논한다. 4년급 정도의 과정이니 졸업해 본들 별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참고 자료만 제시한 채 아내의 성장을 보려고 만사를 아내에게 맡겨 버린다.
아내는 무지한 이웃 상대로 시국계몽이다 국민방공 설명이다 하면서 늘 늦게 귀가했다. ‘회람판’조차 못 읽는 이웃을 훈련시키느라고 눈코를 못 뜨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내는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방공훈련이 원만히 끝난 날 아내를 위로할 겸 넌지시 갑돌이가 안 온다는 말을 내었다. 아내는 갑돌어머니가 앓나 보라고 하면서 부리나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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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5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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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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