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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어리와 마아크 램피언이 처음 만나던 광경이 나타난다. 이런 연상의 방법을 발전시켜 가면 여자의 꽁무니를 좇아 다니는 남자에게서 언제나 수컷을 몸의 일부에 달고 다니는 어류의 암컷을 연상하게 된다. 푸르스름한 잇몸과 혀가 드러나 보이는 여자의 입에서 입을 쩍 벌린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인도로 장면이 전환된다. 램피언이 현대 문명을 논하고 석탄과 철의 중압에 짓눌린 노동자가 있다고 말하면 장면은 에드워드 경이라는 노과학자가 석탄의 사용량을 논하고 석탄에 모여드는 인간들은 석화한 썩은 고기에 모여드는 구더기 같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그러자 그 다음의 레스토랑 장면에서는 보들레르 썩은 고기에 대한 시가 인용된다. 이런 연상이나 유비(類比) 혹은 대조의 방법은 동일한 테마의 바리에이선을 말하는 〈소설의 음악화〉와도 통한다.
과학적 진리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하고 다양한 잡물이 섞여 있는 현실을 헉슬리는 〈전면적 진실(whole truth)〉이라고 부르며, 예술은 〈일면적 진실〉이 아닌 이 〈전면적 진실〉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의 주변에 있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의 세계도 관습이라는 기만적인 〈명백성obviousness)〉을 띠고 있을 뿐이라고 하여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헉슬리는, 과학의 줄자[尺]로써도 더듬을 수 없는 현실의 심연의 밑바닥을 파헤치기 위해서 그의 모든 지력을 다해서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18세기이래 꽃피어 온 근대 문학의 꽃이라 할 소설이 어느 극한에 다다른 현대에 있어, 20세기 소설이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적 진리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하고 다양한 잡물이 섞여 있는 현실을 헉슬리는 〈전면적 진실(whole truth)〉이라고 부르며, 예술은 〈일면적 진실〉이 아닌 이 〈전면적 진실〉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의 주변에 있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의 세계도 관습이라는 기만적인 〈명백성obviousness)〉을 띠고 있을 뿐이라고 하여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헉슬리는, 과학의 줄자[尺]로써도 더듬을 수 없는 현실의 심연의 밑바닥을 파헤치기 위해서 그의 모든 지력을 다해서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18세기이래 꽃피어 온 근대 문학의 꽃이라 할 소설이 어느 극한에 다다른 현대에 있어, 20세기 소설이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