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 차
1)‘부(部)’의 성립
‘부(部)’와 왕권
5부의 성립시기
2)부체제의 구조
부내부, 집단예민, 후국
부의 계급 구성
3) 부체제의 하의 정치제도
관등제와 제가회의
동맹제(東盟祭)
4) 고유명 부에서 방위명 부로
1)‘부(部)’의 성립
‘부(部)’와 왕권
5부의 성립시기
2)부체제의 구조
부내부, 집단예민, 후국
부의 계급 구성
3) 부체제의 하의 정치제도
관등제와 제가회의
동맹제(東盟祭)
4) 고유명 부에서 방위명 부로
본문내용
『삼국지』고구려전을 보면 범죄자를 제가가 평의하여 처결하였다고 한다. 비단 사법 부분 외에도 제가회의는 국정의 주요 사항들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가회의의 구성원은 반드시 일정치는 않았고, 사안에 따라 가변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국가적 대사를 결정할 경우에는 왕과 5부의 주요 대가들이 참석하였을 것이다.
제가회의는 주요 문제에 대한 제가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그것을 국정에 반영함으로써, 제가층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편으로는 회의체를 통해 주요 상황을 결정함으로써 미약한 관료 조직과 집권력이 지닌 취약성을 보완하고 5부 전체에 걸친 통합력과 동원력을 확충할 수 있었다. 그런 면 때문에 제가회의가 왕권을 견제하고 때로는 왕권과 충돌할 수도 있었지만, 왕으로서도 제가회의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가들의 세력 기반을 해체할 수 없었고 관료 조직이 미비한 상황에서 회의체를 통해 그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5부의 통합력 유지에 불가력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가회의가 비록 국정의 주요 부분을 처결하였지만, 회의의 구성원인 제가가 왕이 사여하는 관등을 지녔고 그 관등에 따라 회의에서의 위차(位次)가 정해졌을 것인 만큼, 제가회의는 근본적으로 왕의 권위 아래 귀속되어 존재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가회의는 관등제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관등제와 제가회의가 지배층인 왕과 대가들 사이의 이해 간계를 조정하여 부체제의 유지에 작용하였다면, 동맹제는 피지배층을 포함한 5부민을 하나의 정치체로 결속시키는 데 적지 않은 작용을 하였다. 동맹제는 비단 정치사회적 기능의 측면뿐 아니라, 당대인이 갖고 있던 의식의 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유의된다. 이를 살펴보자.
동맹제(東盟祭)
동맹제(東盟祭)는 풍요와 안녕에 대한 5부인의 집단적 바람을 제의를 통해 표출한 것이며, 제의를 매개로 5부인의 정서적 융합을 촉진하였다. 제의가 행해지는 단위는 곧 그 집단의 정치적 통합 범위와 직결되었다. 제의 자체의 진행 실무를 담당하였던 것은 무였을 것이나, 동맹제 전체의 진행을 관장하고 최종적으로 일신과 수신에 제사를 올리는 주제자는 왕이었다. 그것은 다시 신성 사제인 왕의 권위를 높이는 작용을 하였다. 특히 수도에서 거행된 동맹제에 5부의 제가들이 참가한 것은 곧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의식에 참석하는 의미를 지녔다. 만약 제의에 불참할 경우, 그것은 곧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어 그에 따른 응징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참가한 제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여 주요 사항을 논의, 처결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5부의 주민들이 수도와 각 부의 중심 읍락들에서 동맹제에 참가하여 음부 가무와 제의를 함께 함으로써, 일신과 수신의 가호를 받는 제사 공동체로서의 그들의 존재를 재인식하고 상호간의 정서적 일체감을 함양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의가 행해질 때 많은 이들이 참집하게 되니, 자연 그에 따라 물자와 문화 교류 및 젊은 남녀간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동맹제는, 원시사회의 제의가 지녔던 족장을 선임하거나 폐립하는 기능은 이미 상실했지만, 부체제 하에서 5부인을 통합하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집회로서 주요한 작용을 하였다. 동맹제의 기저에는 공동체적 요소의 잔영이 짙게 깔려 있었다.
4) 고유명 부에서 방위명 부로
이상에서 고구려 초기의 부(部)의 성립과 그 성격 및 5부가 중심이 된 정치체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부체제는 그 후 해체되고 고구려는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 체제로 진전되어 갔다. 일환으로 부체제를 구성하던 자치체로서 단위 정치체적인 성격을 띠었던 고유명(固有名)의 5부는 소멸되고, 방위명(方位名) 5부가 등장하게 되었다.
먼저 방위명 부의 성격을 살펴보면, 고구려 중후기의 방위명 5부는 수도와 부도(副都)의 행정구획 단위였다. 5부는 귀족의 행정적 편제 단위로서의 의미도 지녔지만 기본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행정 구획 단위였다. ‘방위명’이 상징하듯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정적 편제 단위였음에 변함이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방위명 부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무신왕 15년조의 ‘남부 사자 추발소’가 비류부장을 처벌하는 기사에서이다. 그러나 이기사도 후대적 사실이 투영된 것이며, 방위명 부가 이때 존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이후 고국천왕기에 방위명 부가 보이며 이는 고구려 말기까지 이어진다. 즉 2세기 후반의 고국천왕대부터 3세기 후반의 중천왕대까지는 고유명부와 방위명 부가 함께 있다가, 서천왕 이후로는 방위명 부만 보인다.
그런데 서천왕대 이후 관등에 소형(小兄), 대형(大兄),등의 형계(兄系)가 등장하며, 재(宰),태수(太守)등의 지방관 명칭이 사서에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지방관의 명칭이 보이는 것은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었다는 주요 지표로 부체제 하에서 존재하던 각급 자치체들의 약화를 의미한다.
방위명 부가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일단 고국천왕대에는 실재하였다. 처음 방위명 부가 등장하였을 때, 그것을 설정하는 기준이라든지 운영 당상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방위명이 나타내 주듯, 그것은 계루부 왕권에 의해 인위적으로 편제된 단위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은 고유명 부와 확연히 다른 면이다. 초기에는 방위명5부, 즉 수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정치적 비중과 그 집중도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왕권과 중앙집권력이 점차 강화되어 감에 따라, 고유명 부의 제가들이 독자적인 자치제의 수장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왕으로 상징되는 국가권력에 크게 의존하는 중앙 귀족이나 관료로 전신하여 수도에 올라와 거주케 됨에 따라, 방위명 부가 고구려 지배층의 연소(淵沼)가 되었다. 이제 방위명 부에 속한 이들이 고구려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이 된 것이다. 한편 고유명 부는 점차 해체되어 곡(谷)이나 성(城)등의 지방행정 단위로 편제되어 중앙에서 임명하는 지방관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와 함께 부체제는 소멸되었다.
<참고 문헌>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1999
제가회의의 구성원은 반드시 일정치는 않았고, 사안에 따라 가변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국가적 대사를 결정할 경우에는 왕과 5부의 주요 대가들이 참석하였을 것이다.
제가회의는 주요 문제에 대한 제가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그것을 국정에 반영함으로써, 제가층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편으로는 회의체를 통해 주요 상황을 결정함으로써 미약한 관료 조직과 집권력이 지닌 취약성을 보완하고 5부 전체에 걸친 통합력과 동원력을 확충할 수 있었다. 그런 면 때문에 제가회의가 왕권을 견제하고 때로는 왕권과 충돌할 수도 있었지만, 왕으로서도 제가회의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가들의 세력 기반을 해체할 수 없었고 관료 조직이 미비한 상황에서 회의체를 통해 그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5부의 통합력 유지에 불가력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가회의가 비록 국정의 주요 부분을 처결하였지만, 회의의 구성원인 제가가 왕이 사여하는 관등을 지녔고 그 관등에 따라 회의에서의 위차(位次)가 정해졌을 것인 만큼, 제가회의는 근본적으로 왕의 권위 아래 귀속되어 존재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가회의는 관등제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관등제와 제가회의가 지배층인 왕과 대가들 사이의 이해 간계를 조정하여 부체제의 유지에 작용하였다면, 동맹제는 피지배층을 포함한 5부민을 하나의 정치체로 결속시키는 데 적지 않은 작용을 하였다. 동맹제는 비단 정치사회적 기능의 측면뿐 아니라, 당대인이 갖고 있던 의식의 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유의된다. 이를 살펴보자.
동맹제(東盟祭)
동맹제(東盟祭)는 풍요와 안녕에 대한 5부인의 집단적 바람을 제의를 통해 표출한 것이며, 제의를 매개로 5부인의 정서적 융합을 촉진하였다. 제의가 행해지는 단위는 곧 그 집단의 정치적 통합 범위와 직결되었다. 제의 자체의 진행 실무를 담당하였던 것은 무였을 것이나, 동맹제 전체의 진행을 관장하고 최종적으로 일신과 수신에 제사를 올리는 주제자는 왕이었다. 그것은 다시 신성 사제인 왕의 권위를 높이는 작용을 하였다. 특히 수도에서 거행된 동맹제에 5부의 제가들이 참가한 것은 곧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의식에 참석하는 의미를 지녔다. 만약 제의에 불참할 경우, 그것은 곧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어 그에 따른 응징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참가한 제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여 주요 사항을 논의, 처결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5부의 주민들이 수도와 각 부의 중심 읍락들에서 동맹제에 참가하여 음부 가무와 제의를 함께 함으로써, 일신과 수신의 가호를 받는 제사 공동체로서의 그들의 존재를 재인식하고 상호간의 정서적 일체감을 함양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의가 행해질 때 많은 이들이 참집하게 되니, 자연 그에 따라 물자와 문화 교류 및 젊은 남녀간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동맹제는, 원시사회의 제의가 지녔던 족장을 선임하거나 폐립하는 기능은 이미 상실했지만, 부체제 하에서 5부인을 통합하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집회로서 주요한 작용을 하였다. 동맹제의 기저에는 공동체적 요소의 잔영이 짙게 깔려 있었다.
4) 고유명 부에서 방위명 부로
이상에서 고구려 초기의 부(部)의 성립과 그 성격 및 5부가 중심이 된 정치체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부체제는 그 후 해체되고 고구려는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 체제로 진전되어 갔다. 일환으로 부체제를 구성하던 자치체로서 단위 정치체적인 성격을 띠었던 고유명(固有名)의 5부는 소멸되고, 방위명(方位名) 5부가 등장하게 되었다.
먼저 방위명 부의 성격을 살펴보면, 고구려 중후기의 방위명 5부는 수도와 부도(副都)의 행정구획 단위였다. 5부는 귀족의 행정적 편제 단위로서의 의미도 지녔지만 기본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행정 구획 단위였다. ‘방위명’이 상징하듯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정적 편제 단위였음에 변함이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방위명 부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무신왕 15년조의 ‘남부 사자 추발소’가 비류부장을 처벌하는 기사에서이다. 그러나 이기사도 후대적 사실이 투영된 것이며, 방위명 부가 이때 존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이후 고국천왕기에 방위명 부가 보이며 이는 고구려 말기까지 이어진다. 즉 2세기 후반의 고국천왕대부터 3세기 후반의 중천왕대까지는 고유명부와 방위명 부가 함께 있다가, 서천왕 이후로는 방위명 부만 보인다.
그런데 서천왕대 이후 관등에 소형(小兄), 대형(大兄),등의 형계(兄系)가 등장하며, 재(宰),태수(太守)등의 지방관 명칭이 사서에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지방관의 명칭이 보이는 것은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었다는 주요 지표로 부체제 하에서 존재하던 각급 자치체들의 약화를 의미한다.
방위명 부가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일단 고국천왕대에는 실재하였다. 처음 방위명 부가 등장하였을 때, 그것을 설정하는 기준이라든지 운영 당상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방위명이 나타내 주듯, 그것은 계루부 왕권에 의해 인위적으로 편제된 단위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은 고유명 부와 확연히 다른 면이다. 초기에는 방위명5부, 즉 수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정치적 비중과 그 집중도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왕권과 중앙집권력이 점차 강화되어 감에 따라, 고유명 부의 제가들이 독자적인 자치제의 수장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왕으로 상징되는 국가권력에 크게 의존하는 중앙 귀족이나 관료로 전신하여 수도에 올라와 거주케 됨에 따라, 방위명 부가 고구려 지배층의 연소(淵沼)가 되었다. 이제 방위명 부에 속한 이들이 고구려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이 된 것이다. 한편 고유명 부는 점차 해체되어 곡(谷)이나 성(城)등의 지방행정 단위로 편제되어 중앙에서 임명하는 지방관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와 함께 부체제는 소멸되었다.
<참고 문헌>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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