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 처절한 전쟁과 가난
II. 5.4 시기의 ‘신문화’운동과 유교비판
III. 모택동의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
IV.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80년대 중국의 ‘문화열’운동
V. 동아시아에 ‘근대화’는 실현되었는가?
II. 5.4 시기의 ‘신문화’운동과 유교비판
III. 모택동의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
IV.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80년대 중국의 ‘문화열’운동
V. 동아시아에 ‘근대화’는 실현되었는가?
본문내용
은 단지 문제를 혼란시킬 따름이다. 따라서 나는 ‘중체서용’에 반대하고, 이른바 ‘서체중용’에도 반대한다. 나의 입장은 인문문화를 근본(體)으로 삼고(문화적 측면에서), 도구적 이성을 용(用)으로 삼아야(사회적 측면에서) 한다는 것이다. 체와 용은 분리되어야 하지, ‘함께 있어도 분리할 수도 없는’(不卽不離)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유학(儒學)은 어떻게 서방문화의 도전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려하지 말고, 어떻게 서방문화 --- 정신과학 연구의 노선 --- 와 관련시킬 것인가, 인류의 가치적 관심을 촉진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상공업사회에서 전체사회와 관련되는 것은 단지 공리주의적인 대중문화일 뿐이다. ...유가(儒家)는 현대에 난처한 처지에 있다. 유학은 도구적 이성을 받아 들일 수 없으며, 그렇다고 그와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 도덕이성을 제창할 수도 없다. 따라서 유학에 남겨진 길은 인문문화를 지키는 길일 뿐이다(문화보수주의의길). 현대의 지식인, 특히 중국의 지식인은 괴롭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중국이 ‘마력에서 벗어나는’(Entzauberung der Welt) 과정을 지지해야만 한다. 설사 그가 도구적 이성을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甘陽, 현대중국에서 유학의 역할과 나아갈 길, 황희경역, 앞의 책, 633-634 쪽 참조.
따라서 “오늘날과 미래의 중국은 반드시 경제성장을 근본으로 삼아야하고 도구적 이성을 원칙으로 해야한다.” 甘陽, 같은 책, 629 쪽 참조.
낙후된 후진국 중국의 지성인 감양에게는 바로 도덕, 윤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무서운 계산과 이해타산의 ‘도구적 이성’의 폭력이 오히려 정의롭게 보이는 것이며, 오히려 도구적 이성의 폭력을 향한 계몽을 외쳐대는 것이다.
V. 동아시아에 ‘근대화’는 실현되었는가?
현대중국의 80년대의 ‘문화열’운동을 이끌어 갔던 ‘근대지향적’인 중국의 젊은 지성인들의 열화같은 비판과 대담한 논리전개는, 정신과학, 즉 인문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 중국의 현대화문제와 연관된 문화열논쟁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일찍이 지난 세기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실험이나 사회적 개혁에 대한 실패의 반동으로 열화같이 일어났었던 80년전의 5.4 신문화운동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의 공통점은 지성인들의 자신있는 전통적 보수주의에 대한 학술적이고 또한 대중적인 비판의 대규모 계몽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택후가 ‘서체중용’을 외쳐대고, 감양이 ‘도구적 이성’의 계몽을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낙후된 중국의 사회생산력의 증대, 현대과학기술의 도입의 강한 목소리를 만난다. 그것은 다름아닌 후진국 지성인의 ‘경제제일주의’ 노선이다. 우리도 사실 5.16 군사구테타 이후, 줄곧 그런 소리를 들어 왔다. 사실 인간의 인문주의와 참다운 자유와 평등의 요구는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거의 적나라하게 묵살당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침묵을 지켰고, 정부의 정책에 동조했다. 여기에 전통적인 충효의 논리와 농민들의 인고해내는 근면성은 ‘충효’사상과 ‘새마을운동’의 열띤 모습으로 승화되어 칭송되었다. 그리고 인간애와 자유, 평등의 이상을 걸고, 오직 독재정권을 향해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졌던 것은 철없는 젊은 학생들뿐이었다. 어디에도 성숙한 지성인이나 학자들의 ‘계몽’의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낙후된 중국의 현대지성사는 다르다. 80년전이나 지금이나 지성인, 교수, 학자들이 전통비판과 독재주의비판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구현을 외치는 계몽운동에 앞장을 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택후의 ‘서체중용’론의 논의와 감양의 ‘도구적 이성’을 찬가하는 계몽은 어딘가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선진서구세계에서는 이제 모두 ‘도구적 이성’의 폭력을 고발하는 “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과 “생활세계의 식민지화”(하버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문명비판과 이성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처에서, ‘도구적 이성’ 중심의 ‘현대성’의 해체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소리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현대문명의 도래와 함께 도덕이성의 몰락에서 스펭글러는 서구의 멸망(Untergang des Abendlandes)을 선언하였다. 사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단순히 서구적 ‘근대성’이나 ‘도구적 이성’에 대한 단순한 찬가의 계몽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중국대륙에서 서구지향적 현대화를 계몽했던 지식인들의 비극이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는 아직 후진국의 ‘계몽과 환상적 비판의 이중변주’로 들릴 뿐이다.
이제 20세기라는 긴 고통의 여정을 걸어온 중국, 한국, 베트남인들에게, 그렇다면, 지금 그들에게는 전근대의 처참한 가난은 도대체 극복된 것이며, 또한 개인의 권리와 인격적 존중, 또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려는 인문주의는 과연 과거의 고통과 짐에서 해방되어서, 이미 ‘근대’ 속에 실현되어 있는 것인가? 물론 팽덕회(彭德懷)장군이 유년기에 겪었던 그런 ‘전근대적’인 ‘가난’은 우리는 이제 벗어났다. 그러나 60-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단조로운 ‘위선적’(?) 도덕정신의 진작 운동과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아직도 민주화가 성숙되지 않은 독재체제의 ‘온존’은 이들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화’가 아직 아무래도 미흡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경제적 평등과 사회보장은 아직도 서둘러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지성계의 비판적 계몽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다. 사실 우리의 지성들이 과연 얼마나 가부장적 권위와 그 도덕적 폭력에 맞서서 싸워나가는가? -- 요컨대, 한편으로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청산과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현대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 진정한 ‘인문주의’의 계몽의 외침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를 우리 스스로 자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산업기술적인 면에서 피상적인 ‘근대화’를 맞고 살지만,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근대’에 알맞는 ‘인간해방’, ‘인문정신’을 외쳐내는 정신계의 계몽가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미래의 중국은 반드시 경제성장을 근본으로 삼아야하고 도구적 이성을 원칙으로 해야한다.” 甘陽, 같은 책, 629 쪽 참조.
낙후된 후진국 중국의 지성인 감양에게는 바로 도덕, 윤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무서운 계산과 이해타산의 ‘도구적 이성’의 폭력이 오히려 정의롭게 보이는 것이며, 오히려 도구적 이성의 폭력을 향한 계몽을 외쳐대는 것이다.
V. 동아시아에 ‘근대화’는 실현되었는가?
현대중국의 80년대의 ‘문화열’운동을 이끌어 갔던 ‘근대지향적’인 중국의 젊은 지성인들의 열화같은 비판과 대담한 논리전개는, 정신과학, 즉 인문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 중국의 현대화문제와 연관된 문화열논쟁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일찍이 지난 세기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실험이나 사회적 개혁에 대한 실패의 반동으로 열화같이 일어났었던 80년전의 5.4 신문화운동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의 공통점은 지성인들의 자신있는 전통적 보수주의에 대한 학술적이고 또한 대중적인 비판의 대규모 계몽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택후가 ‘서체중용’을 외쳐대고, 감양이 ‘도구적 이성’의 계몽을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낙후된 중국의 사회생산력의 증대, 현대과학기술의 도입의 강한 목소리를 만난다. 그것은 다름아닌 후진국 지성인의 ‘경제제일주의’ 노선이다. 우리도 사실 5.16 군사구테타 이후, 줄곧 그런 소리를 들어 왔다. 사실 인간의 인문주의와 참다운 자유와 평등의 요구는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거의 적나라하게 묵살당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침묵을 지켰고, 정부의 정책에 동조했다. 여기에 전통적인 충효의 논리와 농민들의 인고해내는 근면성은 ‘충효’사상과 ‘새마을운동’의 열띤 모습으로 승화되어 칭송되었다. 그리고 인간애와 자유, 평등의 이상을 걸고, 오직 독재정권을 향해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졌던 것은 철없는 젊은 학생들뿐이었다. 어디에도 성숙한 지성인이나 학자들의 ‘계몽’의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낙후된 중국의 현대지성사는 다르다. 80년전이나 지금이나 지성인, 교수, 학자들이 전통비판과 독재주의비판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구현을 외치는 계몽운동에 앞장을 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택후의 ‘서체중용’론의 논의와 감양의 ‘도구적 이성’을 찬가하는 계몽은 어딘가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선진서구세계에서는 이제 모두 ‘도구적 이성’의 폭력을 고발하는 “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과 “생활세계의 식민지화”(하버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문명비판과 이성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처에서, ‘도구적 이성’ 중심의 ‘현대성’의 해체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소리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현대문명의 도래와 함께 도덕이성의 몰락에서 스펭글러는 서구의 멸망(Untergang des Abendlandes)을 선언하였다. 사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단순히 서구적 ‘근대성’이나 ‘도구적 이성’에 대한 단순한 찬가의 계몽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중국대륙에서 서구지향적 현대화를 계몽했던 지식인들의 비극이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는 아직 후진국의 ‘계몽과 환상적 비판의 이중변주’로 들릴 뿐이다.
이제 20세기라는 긴 고통의 여정을 걸어온 중국, 한국, 베트남인들에게, 그렇다면, 지금 그들에게는 전근대의 처참한 가난은 도대체 극복된 것이며, 또한 개인의 권리와 인격적 존중, 또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려는 인문주의는 과연 과거의 고통과 짐에서 해방되어서, 이미 ‘근대’ 속에 실현되어 있는 것인가? 물론 팽덕회(彭德懷)장군이 유년기에 겪었던 그런 ‘전근대적’인 ‘가난’은 우리는 이제 벗어났다. 그러나 60-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단조로운 ‘위선적’(?) 도덕정신의 진작 운동과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아직도 민주화가 성숙되지 않은 독재체제의 ‘온존’은 이들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화’가 아직 아무래도 미흡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경제적 평등과 사회보장은 아직도 서둘러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지성계의 비판적 계몽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다. 사실 우리의 지성들이 과연 얼마나 가부장적 권위와 그 도덕적 폭력에 맞서서 싸워나가는가? -- 요컨대, 한편으로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청산과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현대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 진정한 ‘인문주의’의 계몽의 외침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를 우리 스스로 자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산업기술적인 면에서 피상적인 ‘근대화’를 맞고 살지만,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근대’에 알맞는 ‘인간해방’, ‘인문정신’을 외쳐내는 정신계의 계몽가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