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적극적으로 안식일에 선행을 함으로 안식일을 범했다고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실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야로서 전권 의식에서 나온 메시야로서의 전권 주장이다.
4. 성전 정결(성전보다 크신 이)
예루살렘 성전 정결 사건은 그의 초월적 유래에 근거한 권위의식에서 나온 사건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도대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의 매매를 금하는지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물을 때 자기의 권위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늘에서 곧 하나님에게서 났음을 주장하였다(마 21:23-27: 막 11:27-33: 눅 20:1-8).
5. 사죄의 권세
그의 전권 주장은 중풍병자를 낫게 하면서 죄를 사하여 주신 데서 밝히 드러난다(마 9:1-8; 막 2:1-12; 눅 5:17 -26). 즉 예수가 인자로서 땅에 있어도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자 곧 메시야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 배후에는 오히려 자기가 사죄의 전권을 가진 하나님임을 암시하였다. 즉 자기가 육체 안에 오신 하나님임을 증거하였다.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까지 사죄의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 (마 16:18, 19).
6. 자신이 권위의 신임장(信任狀)
예수는 자기 자신이 자기 권위의 신임장이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의 권위 외에 다른 권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어법에서 너무도 명백하였고, 듣는 자들의 귀에 당돌할 뿐 아니라참람하다”고 할 만큼 들렸다. 선지자들과 율법의 교사들은 말할 때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로 시작하고 결말 하였으며, 또율법에 기록되어 있으되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했다.
결론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와 부활 이후는 율법이 구원의 길로서 종결되어 더 이상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로서 준수를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복음의 선포만으로, 그리고 그 복음 선포를 듣고 믿어 순종함만이 구원의 길이다. 복음 선포에 율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율법은 단지 구원 얻은 백성에게 생활 규범으로 역사한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를 받으면서도 율법 준수를 구원의 방편으로 보는 것은 종교 개혁의 발생 배경이나 종교심리의 작용에서 볼 수 있다. 율법은 그리스도이전까지요 그 이후는 믿음만이 구원의 길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를 정죄하신 후에는 영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사 우리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지켜 주신다. 이로써 글자만을 따라 지키려 하던 옛 언약의 백성들과 달리 율법의 깊은 정신을 따라 기쁘게 자원적으로 지켜지게 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표하였고, 거기서 성취를 바라고 달음질해 왔다. 구약은 그리스도의 준비였고, 그 기대였다.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다.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서 다 성취되었다. 이렇듯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바울이 전개한 구원사적 관점에서만 바로 이해된다. 이 관점에서 이해할 때만 기독교가 기독교로 남는다.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독교이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바른 해석에 바울이 그의 사도로 서 있다. 연약하여 율법 준수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길로 내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꼭 한 사람만이 율법을 다 지켰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은 오직 이 예수를 믿음뿐이다. 우리 모두 바울과 함께 합창하는 것은 구원은 예수를 믿음 뿐이요, 구원 얻은 자는 율법을 그 생활의 규범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4. 성전 정결(성전보다 크신 이)
예루살렘 성전 정결 사건은 그의 초월적 유래에 근거한 권위의식에서 나온 사건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도대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의 매매를 금하는지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물을 때 자기의 권위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늘에서 곧 하나님에게서 났음을 주장하였다(마 21:23-27: 막 11:27-33: 눅 20:1-8).
5. 사죄의 권세
그의 전권 주장은 중풍병자를 낫게 하면서 죄를 사하여 주신 데서 밝히 드러난다(마 9:1-8; 막 2:1-12; 눅 5:17 -26). 즉 예수가 인자로서 땅에 있어도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자 곧 메시야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 배후에는 오히려 자기가 사죄의 전권을 가진 하나님임을 암시하였다. 즉 자기가 육체 안에 오신 하나님임을 증거하였다.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까지 사죄의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 (마 16:18, 19).
6. 자신이 권위의 신임장(信任狀)
예수는 자기 자신이 자기 권위의 신임장이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의 권위 외에 다른 권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어법에서 너무도 명백하였고, 듣는 자들의 귀에 당돌할 뿐 아니라참람하다”고 할 만큼 들렸다. 선지자들과 율법의 교사들은 말할 때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로 시작하고 결말 하였으며, 또율법에 기록되어 있으되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했다.
결론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와 부활 이후는 율법이 구원의 길로서 종결되어 더 이상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로서 준수를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복음의 선포만으로, 그리고 그 복음 선포를 듣고 믿어 순종함만이 구원의 길이다. 복음 선포에 율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율법은 단지 구원 얻은 백성에게 생활 규범으로 역사한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를 받으면서도 율법 준수를 구원의 방편으로 보는 것은 종교 개혁의 발생 배경이나 종교심리의 작용에서 볼 수 있다. 율법은 그리스도이전까지요 그 이후는 믿음만이 구원의 길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를 정죄하신 후에는 영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사 우리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지켜 주신다. 이로써 글자만을 따라 지키려 하던 옛 언약의 백성들과 달리 율법의 깊은 정신을 따라 기쁘게 자원적으로 지켜지게 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표하였고, 거기서 성취를 바라고 달음질해 왔다. 구약은 그리스도의 준비였고, 그 기대였다.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다.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서 다 성취되었다. 이렇듯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바울이 전개한 구원사적 관점에서만 바로 이해된다. 이 관점에서 이해할 때만 기독교가 기독교로 남는다.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독교이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바른 해석에 바울이 그의 사도로 서 있다. 연약하여 율법 준수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길로 내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꼭 한 사람만이 율법을 다 지켰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은 오직 이 예수를 믿음뿐이다. 우리 모두 바울과 함께 합창하는 것은 구원은 예수를 믿음 뿐이요, 구원 얻은 자는 율법을 그 생활의 규범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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