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먼저 최윤의 소설을 조명해 보도록 하자.
2. 다음으로, 공지영의 소설을 짚어보겠다.
Ⅲ. 결 론
Ⅱ. 본 론
1. 먼저 최윤의 소설을 조명해 보도록 하자.
2. 다음으로, 공지영의 소설을 짚어보겠다.
Ⅲ. 결 론
본문내용
다면 모호성으로 가득 찬 최윤의 소설이 비교적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왜인가? 그의 소설이 독자 일반의 기대를 적당한 수준에서 채워줄 어떤 유인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마침 활동을 개시한 90년대가 모호성을 즐기게 된 시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념의 붕괴, 소비 풍속의 전반적 확산 그리고 새로운 문명 사회가 우연성에 부여한 활동적 기능 및 의미는 세계의 혼란을 그 자체로서 느슨한 바쿠스적 혼돈으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부추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90년대적 정황과 최윤의 소설은 그리 행복하게 조우하지 않는다. 90년대적 현상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개인의 와해가 진행되는 과정 그 자체가 개인에 대한 요구를 더욱 맹렬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90년대식 베스트 셀러들이 두루 인물들을 지극히 ‘사적인’ 의미망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외와 연관이 있다. 그에 비하면 최윤의 소설들이 직접 대면하고 있는 정황은 사적이라기 보다 사회적이다. 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가르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 사적 유대의 공동체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그가 생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적 유대의 공간은 금세 허망한 꿈으로 허물어지고, 그 붕괴를 통해 공적 공황(恐慌)의 상태를 곧바로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향하듯 지금까지의 최윤의 소설들은 그 소재에 있어서 90년대 적이라기보다 차라리 80년대 적이다. 운동권광주분단 등 780년대를 지배해온 핵심적 문제들이 여전히 최윤의 소설을 움직이는 중심 문제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뜻 보아 90년대 식의 사적 모호성에 감사여 잇는 듯이 보이는 최윤의 소설은 실상 그런척함으로써 독자들을 유인하는 한편, 동시에 그 사적 모호성의 세계를 사회적 공황의 한복판에 집어넣음으로써 모호성의 나른함을 즐기려 하는 독자들의 의식의 울타리를 깨뜨리고 단박에 악몽과도 같은 사회적 삶과 직접 대면케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종종 그의 소설이 그 가득한 모호성 그 자체로서 하나의 압축, 다시 말해 역사의 축약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며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주었던「회색 눈사람」역시 일개 지하 조직의 사건이라기보다는 670년대의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 전체를 암시한다. 하나의 우연한 사건을 통해 역사 전체에 반향하는 것, 그것을 위해 동원된 수법은 저 옛날 상징주의자들의 모토였던 암시와 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그 사건은 그 자체로서 세상 전체의 문제들을 압축시켜놓은, 따라서 세상의 모든 층위와 영역들을 향해 힘있게 그 의미를 방사하는 핵심 의미소로 기능한다. 그러니까 부재로서 실존하는 인물의 존재태, 사건들의 끝없는 모호함은 강력한 시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의미의 결여 혹은 인간적인 것의 박탈을 향해 있다기보다 의미의 무한을 향해 있는 것이며, 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의미의 무한은 그 정수, 즉 가장 축약된 형태에서조차 결여의 양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회색 눈사람」의 화자(話者)인 ‘나’의 김희진이라는 두 여자의 고통스런 삶의 행적이 참으로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다. 이들의 삶의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가. 이 작품은 그 원인에 대한 뼈아픈 물음이자, 그 물음과 추궁에 대한 자성적 구원 의지와 기구의 시편(詩篇)이다. 상처받고 전망 없는 삶이 그 이웃과 함께 ‘우리’의 이름으로 잠시 ‘내일에의 희망’을 맛본 뒤 그 우리로부터 마저도 다시 외면을 당하고 말았을 때의 무참스런 좌절과 고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여인들은, 그러나 최윤이란 작가의 빼어난 통찰력과 매서우면서도 뜨거운 인간 사랑의 숨결 속에 더없이 간절한 염원과 기구의 목소리로 힘차게 부활한다.
한편, 과연「회색 눈사람」의 ‘화자’가 20년 전의 사건을 독자에게 이야기한 후, “나는 늘 그 시기에 대한 짧은 보고서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아, 길고도 긴 길의 우울한 초겨울 풍경이라니! 사방은 술병 바닥 두꺼운 유리의 짙은 색깔처럼 흐렸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 보고서를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화자의 마음속에 파묻힌 채로 사라진 것인가? 그러나 독자는 그 이야기를 이미 읽지 않았는가? 화자는 그것을 보고서의 형식으로 쓸 수 없다는 얘기까지 포함하여 몽땅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이야기되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었을 뿐이다. 즉, 보고서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된 것이다. 소설의 형식으로라는 진술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소설의 내부에서는 그 이야기는 발설되지 않았지만, 소설 바깥으로는 발설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내부의 결여를 통해 바깥으로 충만한 의미를 방사한 것이다. 다음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진 것은 보고서와 다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거의 이십 년 전의 그 시기가 조명 속의 무대처럼 환하게 떠올랐다. 그 시기를 연상할 때면 내 머릿속은 온통 청록색으로 뒤덮인 어두운 구도가 잡힌다. 그렇지만 어두운 구도의 한쪽에 쳐진 창문의 저쪽에서 새어 들어오는 따뜻한 빛이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은 혼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픔이었다. 그것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삶의 단계에 정말 완성이라는 것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 그때……하고 가볍게 일축해버릴 수 없는 과거의 시기가 있다. 짧은 시기지만 일생을 두고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시기. 그래도 일상의 반복의 힘은 강한 것이어서 많은 시간 그 청록색의 구도 위에도 눈비가 내리고 꽃이 지고 피면서 서서히 둔감한 상처처럼 더께가 내려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선 보고서와 달리 소설은 짧지 않다. 그것은 “아, 그때……하고 가볍게 일축해버릴 수 없는 과거”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긴 이야기이고, 그것이 길다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길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며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주었던「회색 눈사람」역시 일개 지하 조직의 사건이라기보다는 670년대의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 전체를 암시한다. 하나의 우연한 사건을 통해 역사 전체에 반향하는 것, 그것을 위해 동원된 수법은 저 옛날 상징주의자들의 모토였던 암시와 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그 사건은 그 자체로서 세상 전체의 문제들을 압축시켜놓은, 따라서 세상의 모든 층위와 영역들을 향해 힘있게 그 의미를 방사하는 핵심 의미소로 기능한다. 그러니까 부재로서 실존하는 인물의 존재태, 사건들의 끝없는 모호함은 강력한 시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의미의 결여 혹은 인간적인 것의 박탈을 향해 있다기보다 의미의 무한을 향해 있는 것이며, 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의미의 무한은 그 정수, 즉 가장 축약된 형태에서조차 결여의 양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회색 눈사람」의 화자(話者)인 ‘나’의 김희진이라는 두 여자의 고통스런 삶의 행적이 참으로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다. 이들의 삶의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가. 이 작품은 그 원인에 대한 뼈아픈 물음이자, 그 물음과 추궁에 대한 자성적 구원 의지와 기구의 시편(詩篇)이다. 상처받고 전망 없는 삶이 그 이웃과 함께 ‘우리’의 이름으로 잠시 ‘내일에의 희망’을 맛본 뒤 그 우리로부터 마저도 다시 외면을 당하고 말았을 때의 무참스런 좌절과 고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여인들은, 그러나 최윤이란 작가의 빼어난 통찰력과 매서우면서도 뜨거운 인간 사랑의 숨결 속에 더없이 간절한 염원과 기구의 목소리로 힘차게 부활한다.
한편, 과연「회색 눈사람」의 ‘화자’가 20년 전의 사건을 독자에게 이야기한 후, “나는 늘 그 시기에 대한 짧은 보고서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아, 길고도 긴 길의 우울한 초겨울 풍경이라니! 사방은 술병 바닥 두꺼운 유리의 짙은 색깔처럼 흐렸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 보고서를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화자의 마음속에 파묻힌 채로 사라진 것인가? 그러나 독자는 그 이야기를 이미 읽지 않았는가? 화자는 그것을 보고서의 형식으로 쓸 수 없다는 얘기까지 포함하여 몽땅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이야기되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었을 뿐이다. 즉, 보고서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된 것이다. 소설의 형식으로라는 진술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소설의 내부에서는 그 이야기는 발설되지 않았지만, 소설 바깥으로는 발설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내부의 결여를 통해 바깥으로 충만한 의미를 방사한 것이다. 다음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진 것은 보고서와 다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거의 이십 년 전의 그 시기가 조명 속의 무대처럼 환하게 떠올랐다. 그 시기를 연상할 때면 내 머릿속은 온통 청록색으로 뒤덮인 어두운 구도가 잡힌다. 그렇지만 어두운 구도의 한쪽에 쳐진 창문의 저쪽에서 새어 들어오는 따뜻한 빛이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은 혼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픔이었다. 그것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삶의 단계에 정말 완성이라는 것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 그때……하고 가볍게 일축해버릴 수 없는 과거의 시기가 있다. 짧은 시기지만 일생을 두고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시기. 그래도 일상의 반복의 힘은 강한 것이어서 많은 시간 그 청록색의 구도 위에도 눈비가 내리고 꽃이 지고 피면서 서서히 둔감한 상처처럼 더께가 내려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선 보고서와 달리 소설은 짧지 않다. 그것은 “아, 그때……하고 가볍게 일축해버릴 수 없는 과거”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긴 이야기이고, 그것이 길다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길 뿐만 아니라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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