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의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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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 그리스 의식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그리스 복식
1. 역사적 배경
2. 그리스 복식
3. 머리형과 모자
4. 신발
5. 장신구와 문양

Ⅱ. 고대 그리스의 식품
1. 올리브(The Olive)
2. 그리스세계의 포도주(Vintages of the Greek world)
3. 그리스의 음식과 요리(Greek food and cooking)

Ⅲ. 그리스 건축
1. 도시국가와 사회 건축의 발달
2. 신전 건축의 특징
3. 파에스툼의 신전들
4.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5. 도시와 도시 건축물

Ⅳ. 고대 그리스인의 생활 모습

※ Epilogue

본문내용

것을 사야했다. 다시 갚아야 할 시기가 오면 그는 자신이 생산한 농작물을 추수 후의 싼가격으로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거나 또는 시장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농작물을 팔지않고 기다렸는데 그럴 경우에는 고율의 이자를 지불해야만 했다.
1. 올리브(The Olive)
기원전 6세기 초에 솔론(Solon)은 올리브유 이외의 다른 농산물의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것은 선의에서 나온 조치 였으나, 그리스의 자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남아있던 섬유상 뿌리가 나는 수목들이 올리브경작을 위 해 벌채되었으며, 이 올리브나무의 깊이 뿌리내리는 주근 (主根)은 석회석의 내부까지 파고 들어가 수분을 빨아올렸 으며, 표토(表土)를 밀착시키거나 보존하거나 또는 영양을 공급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경 에 플라톤(Platon)은 그가 알고있던 아티카 교외의 하얗게 드러난 석회석을 과거의 녹색풀밭, 수풀, 샘물 등과 대조 시켜 우울하게 비교하였다. 오늘날 그리스의 특징이 된 깜
▲ 올리브 나무
짝 놀랄 정도의 순수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은 한때 그 땅을 비옥하게 유지시켜 주었던 수목들을 벌채한 댓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신석기혁명이 메소포타미아의 편평한 시골지방을 황폐화시키는데 수천년의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리스의 지형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는 단지 몇 백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올리브나무의 경작은 지중해의 동쪽 끝지방에서 6,000년전에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가지가 우거져 퍼지고 가시투성이이며 기름이 적은 야생 올리브나무는 이전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었으나, 농업과 상업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사람들에 의해 가시가 없고 내용물이 꽉 차고 기름이 풍부하게 함유된 품종이 개발되어 지중해의 해안을 따라 보급되게 되었다.
기름은 이집트의 정화의식과 고대의 지중해연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체에 바르던 향기가 나는 연고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음식, 조명, 약으로 쓰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비록 올리브가 서구의 청동기시대 중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었으나, 그것만이 유인한 공급원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스에서 기름은 호두와 양귀비에서도 또한 추출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참깨, 아나톨리아에서는 아몬드, 이집트에서는 아마와 무씨, 그리고 북유럽에서는 아마와 동백으로부터 추출되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콩과 야자수가 아마도 고대의 가장 풍부한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크레타(Crete)섬에서는 올리브가 적어도 일찍이 기원전 2,500년경에 재배되었고, 그 섬은 곧 새로운 작물을 재배할 토지를 마련하기 위해 벌채되어야만 했던 목재와 더불어 기름을 수출함으로써 부유해졌다. 크노소스(Knossos)에 있는 네스토르(Nestor)궁전은 고고학적 발굴결과 무수히 많은 등자모양의 항아리들(stirrup jars)이 나왔는데, 이는 언덕의 중턱에서 캐낸 향기로운 풀들로 향기를 낸 대단히 귀하게 여겨지던 값비싼 기름을 담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의 올리브에 대한 의존은 자연적인 결과로 생활필수품들을 대외무역에 의존하게 하였고 전시에는 무방비상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크레타는 이 점을 깨닫게 되었고 아테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솔론 이후 한세기 반 동안에 아테네는 라우리움(Laurium)의 광산들로부터 캐낸 은과 올리브나무로부터 추출한 녹황색의 기름으로 인하여 부유해졌다. 그러나 처음엔 올리브나무, 그 다음엔 포도나무 그리고 그에 곁들여서 무화과나무와 견과수들이 아티카의 경관을 형성하게 됨에 따라 가축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고, 밀과 보리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스의 무역과 그리스제국 그 자체는 식량공급이라는 국가적인 긴급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확대되었다.
2. 그리스세계의 포도주(Vintages of the Greek world)
올리브는 그리스의 첫째가는 수출작물이었으며 그 바로 다음가는 작물은 포도였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기원전 1세기 후반까지 그리스와 그 주변섬들은 지중해 세계에 있어서 좋은 포도주의 공급원이었다.
포도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얘기는 선사시대의 어느 시기에 포도가 그릇에 가득 담긴 채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이 발효가 되었고 어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그 발효된 즙을 맛보고 그 맛이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야생 포도나무는 코카서스지방에 많았는데 그 재배도 이 곳에서 처음 시작된 듯하며, 기원전 3,0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가 대단하였던 것 같으며 이집트에서는 포도주가 맨 처음엔 거의 전적으로 사원의 제의에 이용되었다. 기원전 1천년기(first millennium B.C.)에 이집트가 그리스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포도원의 사유는 흔한 일이 되었고 포도주는 일반적인 술이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신전의 포도주상인들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포도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그들이 사제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집트로부터 배운 지식을 세속화된 이집트에 다시 전해준 것에 불과한 것 같다.
그리스의 황금기동안 지중해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그들 고유의 보통 술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부자들은 레스보스(Lesbos)와 치오스(Chios)에서 만들어진 희귀하고 값비싼 수입 포도주들을 마셨다. 알이 매우 굵은 포도는 달콤하였던 것 같으며, 고대의 가장 유명한 포도주로서 호머에 의해 자주 언급된 바 있는 프람니안(Pramnian)은 토카이(Tokay : 헝가리 토카이 지방산의 포도주)만큼이나 진하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모두 이집트의 음주습관을 따라 포도주를 물로 희석해서 마셨으므로 고급 포도주들은 종종 꿀처럼 농도가 진하고 끈끈해질 때까지 보관되기도 하였다.
그 포도주는 수지(樹脂)를 안팎으로 바른 큰 통 속에서 발효되었는데 그것은 특유의 톡 쏘는 맛이 나게 하였으며, 그 다음엔 여과하여 그 지방에서 소비할 용도인 경우에는 염소가죽이나 돼지가죽에 담았고, 수출용인 경우에는 점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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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24
  • 저작시기2005.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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