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정구의 생애
*교육자로서의 삶
2. 한강집 소개
3. 한강의 학문정신
(1)궁리거경
(2)응용구시
4. 한강의 학문세계
(1)“심경발휘”에서 본 성리학(심학)
(2)예학
(3)문학
5. 현대적 의의와 계승 방향
(1)교육자로서의 태도
(2)곧은 정신
(3)학문에 대한 신념
Ⅲ. 결론
Ⅱ. 본론
1. 정구의 생애
*교육자로서의 삶
2. 한강집 소개
3. 한강의 학문정신
(1)궁리거경
(2)응용구시
4. 한강의 학문세계
(1)“심경발휘”에서 본 성리학(심학)
(2)예학
(3)문학
5. 현대적 의의와 계승 방향
(1)교육자로서의 태도
(2)곧은 정신
(3)학문에 대한 신념
Ⅲ. 결론
본문내용
그의 예학에 담겨 있는 ‘북고재게(復古改制-옛 자료를 새롭게 받아들임)’의 정신은 뒷날 기호남인 계열의 경세치용학파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3)문학적 측면
57세 때『고금문수(古今文粹)』,『낙천한적(樂天閒適)』,『주자시분류(朱子詩分類)』등을 편찬한 것으로 미루어, 한강이 문장에서는 고문(古文)에, 시에서는 주자시(朱子詩)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한강은 문학의 이상적인 지향으로서 상고적 문학관과 실생활을 통한 활용으로서 실용적인 문학관을 지녔으며, 문학과 도학의 관계에서는 전형적인 도학자의 문학관인 도본문말적 문학관을 지닌 것으로 상정된다.
① 상고적(尙古的) 문학관
한강은 고인의 문학을 숭상하고 중시하여 학업을 연마할 당시부터 학문의 지향점을고인,성현에 두고 여기에 이르기 위하여 힘썼다. 독서는 성현의 경전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행동에 있어서도 성현을 규범으로 삼아 그대로 따랐다. 성현의 학문을 추구하였으므로 문장을 지을 때에도 당연히 경전의 문장에 준거를 두어 평정하고 착실한 내용을 으뜸으로 삼고 화려한 표현을 일삼지 않았다. 이러한 문장관을 바탕으로 고문의 정수(精髓)를 선별하여『고금문수(古今文粹)』를 편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② 실용적 문학관
한강의 문집인『한강전서(寒岡全書)』를 살펴보면 그의 문필 활동의 경향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한강은 대체적으로 시와 만사를 포함하는 문예문보다는 서발서신전기 등의 실용문을 중심으로 문필 활동에 임했다. 문예문으로 간주되는 운문에 있어서도 그 내용이 순수문학적인 성향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이 많다. 스승, 동료, 제자 등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나 사우간(師友間)에 화답한 차운시 등 창작 동기면에서 볼 때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은 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여 실용적인 경향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잡기논변잠명 등 기타문의 제작에 있어서도 서책을 편찬하고 난 뒤에 지은 서후라든가 원규나 회의 등의 규약과 관계되는 글이 많아 이러한 실용적인 성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③ 도본문말적(道本文末的) 문학관
한강이 일생 동안 가장 힘쓴 학문이 유학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가 유학자의 보편적인 문학관인 도본문말적 문학관을 지닌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반적으로도본문말이라고 하면 도학만 인정하고 문학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여기서본말의 관계란선후,시종혹은표리의 관계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본은 먼저 할 일로,말은 나중에 할 일로 받아들여서 본을 이루고 나면 말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지 결코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한강은 도와 문의 관계를인문추리(因文推理)즉문장(문학)에 말미암아 이치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설정하여 성현의 문장에는 도가 실려 있으므로 이를 통하여 도학의 원리를 추구하려는 이른바문이재도적(文以載道的:글로써 도를 싣는다)인 도학자의 문학관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세계를 진지하게 관조하여 거기에서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이른바 구도(求道) 내지는 성도(省道)를 위한 문학을 하고자 하였으며, 여기에 충실한 문장이 주자의 문장이므로 주자서를 모범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문장은 수식이나 표현 기교를 배척하여 착실하고 평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강은 전통적인 유학자의 입장에서 시는 인간의 성정을 순화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인식하여, 성현의 문장을 통해 정심하고 이를 통해 성현의 도를 구현하려는 문학관을 지녔으므로 실제 그의 작품은 문예문보다 실용문에 치중되었다. 문예문인 시에서도 구도에의 의지와 자연과의 합일이 주류를 이루어 전형적인 도학자의 시 세계를 형상화하였다.
5. 현대적 의의와 계승방향
(1)한강의 교육자로서의 태도와 현대적 계승
한강이 학도들을 모아 강의함은 물론이요, 관직에 있을 때도 ‘흥학(興學)’을 가장 우선시 했던 것을 보면 그가 교육을 얼마나 중요시하였는지 알 수 있다.
한강은 퇴계가 그러했듯이 스스로를 남의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자와 함께 진리를 철학하는 동반자로 생각하였다. 자신을 스스로 스승이라고 높이지는 않았지만 한강은 자신이 맡은 책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강은 그의 문하를 찾는 사람에게 개성교육, 능력별 교육을 시키는 한편 자식된 사람에게는 ‘효경’을, 관리들에게는 ‘충근’을, 지학자들에게는 ‘도리’를 강조하여 ‘적시적소’의 교육을 시행하였다. 또한 한강이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 것은 학문을 통한 지식이 아니라 그 실천이었다.
이러한 한강의 교육자로서의 태도는 오늘날의 교육현실에 필요하다.
한강이 21세 때 퇴계를 처음 만나 학문하는 순서의 방법을 듣고 비로소 지난날 향하는 바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어 반성하고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교육의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해준다. 얼마 전 교사가 학생의 ‘내신점수’로 거래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와 같은 사건을 보며 오늘날 교육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학교와 교사는 ‘사람됨’을 가르치는 교육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단지 지식의 전달만을 담당할 뿐이어서 인성교육은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윤리 및 도덕도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게 되며 그러한 교육현실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는 사회로 직결된다.
이제 교육의 목적이 ‘사람됨’에 있음을 깨닫고 지식의 전달보다는 한강이 늘 강조한 실천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강이 사람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다른 교육을 한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능력과 개성에 따른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인재를 사회의 적재적소에 두는 것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할 것이다.
(2)곧은정신
한강 선생은 일찍이 벼슬길을 물리고 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세계를 등진 것이 아니라 상소를 통해 바른말을 많이 하였다. 한 예로, 광해군 조의 혼란한 시대상에서 다른 벼슬아치들이 겁에 질려 서로 눈치만 지내는 형편 이었을 때도 그는 상소를 올렸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이것은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고 자신 혹은 소속 된 정당의 이익만을
(3)문학적 측면
57세 때『고금문수(古今文粹)』,『낙천한적(樂天閒適)』,『주자시분류(朱子詩分類)』등을 편찬한 것으로 미루어, 한강이 문장에서는 고문(古文)에, 시에서는 주자시(朱子詩)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한강은 문학의 이상적인 지향으로서 상고적 문학관과 실생활을 통한 활용으로서 실용적인 문학관을 지녔으며, 문학과 도학의 관계에서는 전형적인 도학자의 문학관인 도본문말적 문학관을 지닌 것으로 상정된다.
① 상고적(尙古的) 문학관
한강은 고인의 문학을 숭상하고 중시하여 학업을 연마할 당시부터 학문의 지향점을고인,성현에 두고 여기에 이르기 위하여 힘썼다. 독서는 성현의 경전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행동에 있어서도 성현을 규범으로 삼아 그대로 따랐다. 성현의 학문을 추구하였으므로 문장을 지을 때에도 당연히 경전의 문장에 준거를 두어 평정하고 착실한 내용을 으뜸으로 삼고 화려한 표현을 일삼지 않았다. 이러한 문장관을 바탕으로 고문의 정수(精髓)를 선별하여『고금문수(古今文粹)』를 편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② 실용적 문학관
한강의 문집인『한강전서(寒岡全書)』를 살펴보면 그의 문필 활동의 경향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한강은 대체적으로 시와 만사를 포함하는 문예문보다는 서발서신전기 등의 실용문을 중심으로 문필 활동에 임했다. 문예문으로 간주되는 운문에 있어서도 그 내용이 순수문학적인 성향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이 많다. 스승, 동료, 제자 등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나 사우간(師友間)에 화답한 차운시 등 창작 동기면에서 볼 때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은 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여 실용적인 경향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잡기논변잠명 등 기타문의 제작에 있어서도 서책을 편찬하고 난 뒤에 지은 서후라든가 원규나 회의 등의 규약과 관계되는 글이 많아 이러한 실용적인 성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③ 도본문말적(道本文末的) 문학관
한강이 일생 동안 가장 힘쓴 학문이 유학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가 유학자의 보편적인 문학관인 도본문말적 문학관을 지닌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반적으로도본문말이라고 하면 도학만 인정하고 문학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여기서본말의 관계란선후,시종혹은표리의 관계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본은 먼저 할 일로,말은 나중에 할 일로 받아들여서 본을 이루고 나면 말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지 결코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한강은 도와 문의 관계를인문추리(因文推理)즉문장(문학)에 말미암아 이치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설정하여 성현의 문장에는 도가 실려 있으므로 이를 통하여 도학의 원리를 추구하려는 이른바문이재도적(文以載道的:글로써 도를 싣는다)인 도학자의 문학관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세계를 진지하게 관조하여 거기에서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이른바 구도(求道) 내지는 성도(省道)를 위한 문학을 하고자 하였으며, 여기에 충실한 문장이 주자의 문장이므로 주자서를 모범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문장은 수식이나 표현 기교를 배척하여 착실하고 평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강은 전통적인 유학자의 입장에서 시는 인간의 성정을 순화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인식하여, 성현의 문장을 통해 정심하고 이를 통해 성현의 도를 구현하려는 문학관을 지녔으므로 실제 그의 작품은 문예문보다 실용문에 치중되었다. 문예문인 시에서도 구도에의 의지와 자연과의 합일이 주류를 이루어 전형적인 도학자의 시 세계를 형상화하였다.
5. 현대적 의의와 계승방향
(1)한강의 교육자로서의 태도와 현대적 계승
한강이 학도들을 모아 강의함은 물론이요, 관직에 있을 때도 ‘흥학(興學)’을 가장 우선시 했던 것을 보면 그가 교육을 얼마나 중요시하였는지 알 수 있다.
한강은 퇴계가 그러했듯이 스스로를 남의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자와 함께 진리를 철학하는 동반자로 생각하였다. 자신을 스스로 스승이라고 높이지는 않았지만 한강은 자신이 맡은 책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강은 그의 문하를 찾는 사람에게 개성교육, 능력별 교육을 시키는 한편 자식된 사람에게는 ‘효경’을, 관리들에게는 ‘충근’을, 지학자들에게는 ‘도리’를 강조하여 ‘적시적소’의 교육을 시행하였다. 또한 한강이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 것은 학문을 통한 지식이 아니라 그 실천이었다.
이러한 한강의 교육자로서의 태도는 오늘날의 교육현실에 필요하다.
한강이 21세 때 퇴계를 처음 만나 학문하는 순서의 방법을 듣고 비로소 지난날 향하는 바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어 반성하고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교육의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해준다. 얼마 전 교사가 학생의 ‘내신점수’로 거래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와 같은 사건을 보며 오늘날 교육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학교와 교사는 ‘사람됨’을 가르치는 교육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단지 지식의 전달만을 담당할 뿐이어서 인성교육은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윤리 및 도덕도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게 되며 그러한 교육현실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는 사회로 직결된다.
이제 교육의 목적이 ‘사람됨’에 있음을 깨닫고 지식의 전달보다는 한강이 늘 강조한 실천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강이 사람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다른 교육을 한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능력과 개성에 따른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인재를 사회의 적재적소에 두는 것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할 것이다.
(2)곧은정신
한강 선생은 일찍이 벼슬길을 물리고 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세계를 등진 것이 아니라 상소를 통해 바른말을 많이 하였다. 한 예로, 광해군 조의 혼란한 시대상에서 다른 벼슬아치들이 겁에 질려 서로 눈치만 지내는 형편 이었을 때도 그는 상소를 올렸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이것은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고 자신 혹은 소속 된 정당의 이익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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