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유희춘
미암일기 - 모현관
오랜 유배 마치고 나랏님의 스승으로
미암일기 - 모현관
오랜 유배 마치고 나랏님의 스승으로
본문내용
는 것을 듣고 탄식하며 "내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우리 어머니를 구할 수 없다"면서 혼자 절에 올라가 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런데 금년 여름엔 또 아비를 생각하고 울며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는 멀리 천리밖에 있으니 새가 되어 가서 뵙고 싶다"고 했다.
효순(孝順)하고 지극한 천성이 이 같은 나이에 나타나니 기특하다.
이를 소시(小詩)로 지어 보았다.
登科求母趨山寺 과거에 올라 모친 구한다며 산사로 가고
垂淚思爺願羽翰 눈물흘려 아비 생각해 날개 돋기를 생각했다 .
江夏黃童蘭已茁 강하 땅의 황동란처럼 이미 자라니
他年華袞荷君歡 다른 해에 벼슬하면 너 때문에 기쁘리라.
1574년 3월 16일.
손녀 은우(恩遇)가 어제 그 어미로부터 작은 버들고리를 잃어버렸다고 야단을 맞았는데 꾸중을 들으면서도 웃고 태연히 화를 내지 않고 평시처럼 밥을 먹자 옆 사람이 "어찌 슬퍼하고 울지 않느냐"고 묻자 답하기를 "내가 물건을 잃어버려 죄가 있으니 꾸중을 듣는 것은 당연한데 무슨 한이 있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도량과 지식이 남보다 훨씬 원대하다. 나는 기뻐서 과일을 상으로 줬다.
동년 5월 12일.
은우 때문에 소시를 지었다. 8세인 손녀가 말하기를 "온 집안의 살아감이 주상이 주신 녹(祿)에 의지하니, 원컨대 주상은 천년수(千年壽)를 하소서"하였다. 그 충성하고 후덕함이 어린애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은우는 또 해성의 상부(喪夫)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사람의 남편은 하나뿐이다. 이미 혼인했으니 어찌 두 남편이 있겠느냐"하니 그 말이 늠름하다. 참으로 기특한 아이요, 문호(門戶)를 빛낼 자(者)다.
1574년 6월 29일.
부모로서 딸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나 딸의 성격이 사납고 못되어 어제 종(婢)에게 화를 내어 부인에게까지 욕을 하고 나에게 야단을 맞자 또 지나친 말을 했다. 부인이 "이렇게 사납고 못된 딸년하고는 함께 살 수가 없다"하므로 내가 크게 꾸짖어 꺾었다.
■ 부녀자생활
덕봉은 산대놀이(1572년 10월)와 임금의 행차(1569년 8월)를 구경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서기도 했다.
74년 4월 25일. 날이 저물어 부인이 김참의 댁에서 돌아왔다. 생일잔치를 마련하면서 우리집 부인을 청하므로 은우를 데리고 다녀왔다. 경기감사 박소립의 부인도 왔는데 서로 이야기하고 마시며 즐겼다고 하고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 부인의 용모와 언변, 은우의 안색과 거동에 탄복했다고 한다.
■ 기타 집안이야기
예전엔 밥 지을 솥과 밥상도 빌려서 쓰곤 했나보다. 1574년 7월 2일자를 보면 내가 이 집으로 이사온 뒤 밥 지을 솥이 없어 남에게 빌려 썼는데 일전에 우리 집 노비가 빨래하러 우물가에 가자 마을 여자들이 모두 "이 사람이 밥지을 솥이 없어 남의 집에서 빌려다 쓰는 재상댁(宰相宅)의 종인가"했다고 한다. 웃을 일이다.
미암일기는 당시의 국사(國事)는 물론, 부인을 자랑스러워하는 자상한 남편, 자식문제로 고민하는 아버지, 손주들을 영특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미암 선생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금년 여름엔 또 아비를 생각하고 울며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는 멀리 천리밖에 있으니 새가 되어 가서 뵙고 싶다"고 했다.
효순(孝順)하고 지극한 천성이 이 같은 나이에 나타나니 기특하다.
이를 소시(小詩)로 지어 보았다.
登科求母趨山寺 과거에 올라 모친 구한다며 산사로 가고
垂淚思爺願羽翰 눈물흘려 아비 생각해 날개 돋기를 생각했다 .
江夏黃童蘭已茁 강하 땅의 황동란처럼 이미 자라니
他年華袞荷君歡 다른 해에 벼슬하면 너 때문에 기쁘리라.
1574년 3월 16일.
손녀 은우(恩遇)가 어제 그 어미로부터 작은 버들고리를 잃어버렸다고 야단을 맞았는데 꾸중을 들으면서도 웃고 태연히 화를 내지 않고 평시처럼 밥을 먹자 옆 사람이 "어찌 슬퍼하고 울지 않느냐"고 묻자 답하기를 "내가 물건을 잃어버려 죄가 있으니 꾸중을 듣는 것은 당연한데 무슨 한이 있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도량과 지식이 남보다 훨씬 원대하다. 나는 기뻐서 과일을 상으로 줬다.
동년 5월 12일.
은우 때문에 소시를 지었다. 8세인 손녀가 말하기를 "온 집안의 살아감이 주상이 주신 녹(祿)에 의지하니, 원컨대 주상은 천년수(千年壽)를 하소서"하였다. 그 충성하고 후덕함이 어린애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은우는 또 해성의 상부(喪夫)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사람의 남편은 하나뿐이다. 이미 혼인했으니 어찌 두 남편이 있겠느냐"하니 그 말이 늠름하다. 참으로 기특한 아이요, 문호(門戶)를 빛낼 자(者)다.
1574년 6월 29일.
부모로서 딸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나 딸의 성격이 사납고 못되어 어제 종(婢)에게 화를 내어 부인에게까지 욕을 하고 나에게 야단을 맞자 또 지나친 말을 했다. 부인이 "이렇게 사납고 못된 딸년하고는 함께 살 수가 없다"하므로 내가 크게 꾸짖어 꺾었다.
■ 부녀자생활
덕봉은 산대놀이(1572년 10월)와 임금의 행차(1569년 8월)를 구경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서기도 했다.
74년 4월 25일. 날이 저물어 부인이 김참의 댁에서 돌아왔다. 생일잔치를 마련하면서 우리집 부인을 청하므로 은우를 데리고 다녀왔다. 경기감사 박소립의 부인도 왔는데 서로 이야기하고 마시며 즐겼다고 하고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 부인의 용모와 언변, 은우의 안색과 거동에 탄복했다고 한다.
■ 기타 집안이야기
예전엔 밥 지을 솥과 밥상도 빌려서 쓰곤 했나보다. 1574년 7월 2일자를 보면 내가 이 집으로 이사온 뒤 밥 지을 솥이 없어 남에게 빌려 썼는데 일전에 우리 집 노비가 빨래하러 우물가에 가자 마을 여자들이 모두 "이 사람이 밥지을 솥이 없어 남의 집에서 빌려다 쓰는 재상댁(宰相宅)의 종인가"했다고 한다. 웃을 일이다.
미암일기는 당시의 국사(國事)는 물론, 부인을 자랑스러워하는 자상한 남편, 자식문제로 고민하는 아버지, 손주들을 영특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미암 선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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