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를 읽기 전에...
2.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
3. 윤봉길의사의 연보
2.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
3. 윤봉길의사의 연보
본문내용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 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몇 시간 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하기로 나는 기념으로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 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윤 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하고 묻는 내 말에 윤 군이 “ 자동차값 주고도 5,6원은 남아요”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해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달렸다.
의 내용에 잘 나와 있다.
홍구 공원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기갑 부대가 상해 온 시가를 누비게 했고, 공중에서는 수십 대의 비행기가 시위 비행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무력을 과시할 뿐 아니라, 군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하는 식장의 경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식장 경비를 위해서는 따로 보병기병들이 식장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상해에 와 있는 일본의 군부 및 외교계의 거물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또 여기 모이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상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었다. 식이 시작 될 무렵이 되자 식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붐비기 시작했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임중빈 저- 222페이지 참조.
막 공원 입구를 들어서는 윤봉길 의사는 새 양복에 새 구두로 정장을 하고 유유히 입장하였다. 도시락을 들고 물통을 메었으며 오른손에는 일기장을 하나 들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일본인 유지쯤 되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누구 한 사람 감히 검문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미리 작정해두었던 지점에 이르렀다. 폭탄을 던지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로, 벌써 수차례나 현장 답사를 마쳐놓은 자리였다.
드디어 개회사가 끝나고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고 식장이 고요해지던 순간.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그는 온 힘을 모아 물통 폭탄을 던졌다. 바로 단상 중앙에 명중하였다. 단상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케 했다. 조금 전 단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던 요인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식장이 놀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 의거로 상해 거류민단장 가와바타는 그 자리에서 폭사하고 시라카와 대장은 치명상을 입어 5월 26일 숨이 끊어졌으며 노무라 중장, 우이다 중장과 시게미쓰 공사, 무라이 상해 총영사, 거류민단 토모노 서기장, 특파 기자 등은 중상을 입었다. 참으로 통쾌한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대목에서 함께 가슴을 졸이고 함께 통쾌해 했으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윤봉길 의사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뒤로하고 얼른 정신을 차려 자폭하려고 도시락 폭탄을 꺼내 들었으나 그가 도시락 폭탄의 안전핀을 뽑으려는 순간 윤봉길의사는 일본헌병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일본 헌병들이 거칠게 그를 잡아 일으킬 때 그는 목청껏 “대한 독립 만세! 만세!”외치며 소리쳤다.
이천만 한민족의 격찬은 절정에 달하였고, 반일 감정을 지닌 중국, 4억의 중국인 또한 환호했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모여 앉기만 하면 윤 의사의 무용담으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임중빈 저- 227페이지 참조.
자신의 거사가 바깥에서 이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간 윤봉길 의사는 말할 수 없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당당하게 모진 고문을 참아내며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며 한인애국단과 가족들의 안의를 지키려 애
의 내용에 잘 나와 있다.
홍구 공원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기갑 부대가 상해 온 시가를 누비게 했고, 공중에서는 수십 대의 비행기가 시위 비행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무력을 과시할 뿐 아니라, 군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하는 식장의 경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식장 경비를 위해서는 따로 보병기병들이 식장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상해에 와 있는 일본의 군부 및 외교계의 거물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또 여기 모이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상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었다. 식이 시작 될 무렵이 되자 식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붐비기 시작했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임중빈 저- 222페이지 참조.
막 공원 입구를 들어서는 윤봉길 의사는 새 양복에 새 구두로 정장을 하고 유유히 입장하였다. 도시락을 들고 물통을 메었으며 오른손에는 일기장을 하나 들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일본인 유지쯤 되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누구 한 사람 감히 검문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미리 작정해두었던 지점에 이르렀다. 폭탄을 던지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로, 벌써 수차례나 현장 답사를 마쳐놓은 자리였다.
드디어 개회사가 끝나고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고 식장이 고요해지던 순간.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그는 온 힘을 모아 물통 폭탄을 던졌다. 바로 단상 중앙에 명중하였다. 단상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케 했다. 조금 전 단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던 요인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식장이 놀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 의거로 상해 거류민단장 가와바타는 그 자리에서 폭사하고 시라카와 대장은 치명상을 입어 5월 26일 숨이 끊어졌으며 노무라 중장, 우이다 중장과 시게미쓰 공사, 무라이 상해 총영사, 거류민단 토모노 서기장, 특파 기자 등은 중상을 입었다. 참으로 통쾌한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대목에서 함께 가슴을 졸이고 함께 통쾌해 했으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윤봉길 의사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뒤로하고 얼른 정신을 차려 자폭하려고 도시락 폭탄을 꺼내 들었으나 그가 도시락 폭탄의 안전핀을 뽑으려는 순간 윤봉길의사는 일본헌병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일본 헌병들이 거칠게 그를 잡아 일으킬 때 그는 목청껏 “대한 독립 만세! 만세!”외치며 소리쳤다.
이천만 한민족의 격찬은 절정에 달하였고, 반일 감정을 지닌 중국, 4억의 중국인 또한 환호했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모여 앉기만 하면 윤 의사의 무용담으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임중빈 저- 227페이지 참조.
자신의 거사가 바깥에서 이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간 윤봉길 의사는 말할 수 없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당당하게 모진 고문을 참아내며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며 한인애국단과 가족들의 안의를 지키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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