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상 교통로가 되었다. 조선초기에는 남양부 화양만에 경기수영을 두고 경기만을 수비하기 위해 산하에 영종만호 제물포량만호 초지량만호 등 6개의 진을 두었는데, 당시 인천에는 제물포량에 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31년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군제가 편제됨에 따라 이곳도 모두 폐쇄되어 제물포 항구는 구한말 전까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어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구-
1882년(고종 19년) 5월 길일 한 ·미 최초의 조약이 동구 화도진(현 화수 1동) 군영에서 미합중국 슈펠트 제독과 조선의 신헌 대사간에 체결되었으며, 다음 해인 1883년(고종 20년) 개항을 보게된 유서깊은 화도진에 한미수교 17주년을 맞아 표지석을 제막한 바 있다. 1968년 1월 1일 구설치법에 관한 법률 제1919호(1967년 3월 30일 공포)에 의해 전 동부, 북부출장소를 합병하여 동구 송림동 17번지에 당시 도살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 동구 청사로 이용하고 산하에 11개동을 두었다.
-남구-
남구는 인천광역시의 남쪽에 돌출한 해안선을 따라 남동구와 접해 있고 숭의동 지역이 중구, 도화동 지역이 동구와 학익, 용현동 지역이 연수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구의 총 면적은 24.20km 로 시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천시가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 시세의 중심이 남구 지역으로 이동, 현재의 남구는 신시가지 개발과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인구의 증가 등으로 행정수요의 급증은 물론, 구 천제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인천광역시의 중심구 역할을 하고 있다. 남구의 산세는 시가지 중심의 수봉산(115m), 그리고 문학산 (232.8m) 사이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반도형의 구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질은 운모편암과 면암류 및 토사가 퇴적되어 중적층을 형성한 토질로 농작 등에는 알맞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서구-
서구는 삼국 시대에 주부토라 불리우면서 백제국에 속했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으로 고구려에 속하게 된다(475년). 신라 진흥뢍이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신라에 영속된다. \'주부토\'라는 이름은 원래 부평 평야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습지로 황무지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봇둑을 쌓았는데 그 \'봇국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고 하여 \'줄보뚝\'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줄보뚝이 한자로 \'主夫吐\'가 된 것이다. 757년 이 지역을 장제군으로 지명을 바꾸는데, \'장제\'라는 말도 \'긴 뚝\'을 듯하며, 고려 태조
-동구-
1882년(고종 19년) 5월 길일 한 ·미 최초의 조약이 동구 화도진(현 화수 1동) 군영에서 미합중국 슈펠트 제독과 조선의 신헌 대사간에 체결되었으며, 다음 해인 1883년(고종 20년) 개항을 보게된 유서깊은 화도진에 한미수교 17주년을 맞아 표지석을 제막한 바 있다. 1968년 1월 1일 구설치법에 관한 법률 제1919호(1967년 3월 30일 공포)에 의해 전 동부, 북부출장소를 합병하여 동구 송림동 17번지에 당시 도살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 동구 청사로 이용하고 산하에 11개동을 두었다.
-남구-
남구는 인천광역시의 남쪽에 돌출한 해안선을 따라 남동구와 접해 있고 숭의동 지역이 중구, 도화동 지역이 동구와 학익, 용현동 지역이 연수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구의 총 면적은 24.20km 로 시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천시가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 시세의 중심이 남구 지역으로 이동, 현재의 남구는 신시가지 개발과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인구의 증가 등으로 행정수요의 급증은 물론, 구 천제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인천광역시의 중심구 역할을 하고 있다. 남구의 산세는 시가지 중심의 수봉산(115m), 그리고 문학산 (232.8m) 사이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반도형의 구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질은 운모편암과 면암류 및 토사가 퇴적되어 중적층을 형성한 토질로 농작 등에는 알맞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서구-
서구는 삼국 시대에 주부토라 불리우면서 백제국에 속했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으로 고구려에 속하게 된다(475년). 신라 진흥뢍이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신라에 영속된다. \'주부토\'라는 이름은 원래 부평 평야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습지로 황무지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봇둑을 쌓았는데 그 \'봇국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고 하여 \'줄보뚝\'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줄보뚝이 한자로 \'主夫吐\'가 된 것이다. 757년 이 지역을 장제군으로 지명을 바꾸는데, \'장제\'라는 말도 \'긴 뚝\'을 듯하며, 고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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