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Introduction)
2. 본 론 (Main Body)
(1) 건 국 신 화
1) 고조선의 “단군신화(檀君神話)”
2) 북방지역의 건국신화
① 북부여의 “해모수신화(解慕數神話)”
② 동부여의 “해부루신화(解夫婁神話)” “금와신화(金蛙神話)”
3) 고구려의 “주몽신화(朱蒙神話)”
4) 신라의 “박혁거세신화(朴赫居世神話)”
5) 가야의 “김수로신화(金首露神話)”
6) 백제의 “온조와 비류신화”
(2) 성 씨 시 조 신 화
1) 신라 석씨왕가 “석탈해신화(昔脫解神話)”
2) 신라 김씨왕가 “김알지신화(金閼智神話)”
3. 결 론 (conclusion)
4. 참 고 문 헌 (Bibliography)BibliographyIntroduction)
2. 본 론 (Main Body)
(1) 건 국 신 화
1) 고조선의 “단군신화(檀君神話)”
2) 북방지역의 건국신화
① 북부여의 “해모수신화(解慕數神話)”
② 동부여의 “해부루신화(解夫婁神話)” “금와신화(金蛙神話)”
3) 고구려의 “주몽신화(朱蒙神話)”
4) 신라의 “박혁거세신화(朴赫居世神話)”
5) 가야의 “김수로신화(金首露神話)”
6) 백제의 “온조와 비류신화”
(2) 성 씨 시 조 신 화
1) 신라 석씨왕가 “석탈해신화(昔脫解神話)”
2) 신라 김씨왕가 “김알지신화(金閼智神話)”
3. 결 론 (conclusion)
4. 참 고 문 헌 (Bibliography)BibliographyIntroduction)
본문내용
을 옮기자 금빛 개구리 모양이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곧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그가 성장하자 태자로 삼았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받아 왕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태자 대소(帶素)에게 왕위가 전해졌다. 지황(址皇) 3년 임오년에 이르러 고구려왕 무휼(無恤)이 정벌하고 와 대소를 죽이니 나라가 망하였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역사에 등장한 부여족은 동이족의 일파로, 만주와 한반도로 이 주하며 크고작은 나라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북부여, 그 북부여의 유민 일부가 세운 것이 동부여이다.
북부여는 지금의 만주 지방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동부여는 함경도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북부여는 부여족이 세운 나라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국된 나라인데, 그 시조는 위의 신화와 같이 해모수(解慕數)이다. 해모수는 자신을 태양으로 자칭했다고 하는데, 그의 낮과 밤의 거처가 다른 것과 그의 성이 해(解)씨인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리고 해모수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모두 태양이나 일광의 변형된 상징이다. 자신을 해로 상징한 것은 절대적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내용도 단군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신화의 구성이 위와같은 구성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부여의 시조 해부루(解夫婁)는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로, 그는 그 자신이 해모수의 후예임을 자처했다. 신화에서는 해모수가 부루를 낳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화적인 요소로 부루는 북부여에서 떨어져나온 일파일 뿐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위에서 살펴본 단군신화, 그리고 앞서 본 해모수 신화와도 같은 구성으로, 부루를 하늘에서 하강한 해모수의 아들로 표현함으로써 그에게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다.
후에 부루는 꿈의 신탁으로 동해가 가십원에 가서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부루는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아이를 갖게 해달라 제를 지내니 바위아래 황금색 개구리 모양을 한 아이를 얻게 된다. 이 아이가 금와(金蛙)이다. 이 금와의 탄생 또한 같은 맥락으로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겠다. 하늘에 제를 올려 얻은 아이, 다시 말하면 하늘이 내려준 아이로, 금와는 바위 아래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을 알렸던 것은 말의 눈물로, 한낱 동물 따위가 상소로운 기를 느끼고 그 바위아래서 조아림을 할 정도로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라고 암묵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다. 또한 황금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이 태양은 다시 유일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개구리 모양의 아라 한 것은 개구리 자체의 다산의 생산성과 금빛의 신성성과의 결합을 통해 신성 왕권의 흥성을 기원함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금와의 이름은 ‘고마’라고도 불릴 수 있는데, 이 고마는 ‘감, 곰, 검’ 이라고도 하며, ‘신(神)’ , 곧 ‘신성한 사람, 높은 지위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금와는 해부루의 직접적인 혈통이 아닌 것으로 보아 해부루와는 다른 부족 출신의 외부 유민으로 보인다. 그가 해부루에 복속한 것을 바위아래서 탄생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해부루의 직접적인 혈통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외부인인 금와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을 신화에서는 간접적인 소통으로 전하고 있다.
3) 고구려의 “주몽신화(朱蒙神話)”
[ 곧 졸본부여(卒本扶餘)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화주(禾州)라고도 하고 성주(城州)라고도 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는데, ≪국사(國史)≫ <고구려본기[高瞿本紀]>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는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에 앞서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피해 가 살았는데,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금와는 그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하백(何伯)의 딸 유화(柳花)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웅신산(熊神山) 아래 압록강가로 있는 집으로 유혹하여 사통(私通)하고는, 저를 버리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간 것을 꾸짖어 드디어 이곳으로 귀양을 보내 살도록 했습니다.”
금와는 괴이하게 여겨 유화를 방안에 남몰래 가두었더니 햇빛이 비추었다. 그녀가 피하자 햇빛이 또 따라와 비추었다. 이로 인해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이 이것을 개, 돼지에게 던져 주었지만 모두 먹지 않았고, 길에다 버렸으나 말과 소가 그 알을 피해 갔으며, 들판에 버리니 새나 짐승이 알을 덮어 주었다. 왕은 그것을 깨뜨리려고 했지만 깨어지지 않았으므로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유화가 천으로 알을 부드럽게 감싸 따뜻한 곳에 두자 어린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겉모습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일곱에 용모야 재략이 비범했으며,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아 백 번 맞추었다. 나라의 풍속에 활 잘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예가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자 맏아들 대소가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일찍이 도모하지 않으면 아마도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왕은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고 먹이를 조금씩 주어 마르게 하고, 늙고 병든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은 자신은 살찐 말을 타고 마른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왕의 아들들과 여러 신하들이 함께 주몽을 해치려 하자, 주몽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아들이게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곧 너를 해치려고 하는데, 너의 재략(才略)이라면 어디를 간들 살지 못하겠느냐? 빨리 떠나거라.”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등 세사람과 벗을 삼아 엄수(淹水)에 이르러 물[水]에게 알려 말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자 하백의 손자이다. 오늘 도망치는데 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곧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그가 성장하자 태자로 삼았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받아 왕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태자 대소(帶素)에게 왕위가 전해졌다. 지황(址皇) 3년 임오년에 이르러 고구려왕 무휼(無恤)이 정벌하고 와 대소를 죽이니 나라가 망하였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역사에 등장한 부여족은 동이족의 일파로, 만주와 한반도로 이 주하며 크고작은 나라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북부여, 그 북부여의 유민 일부가 세운 것이 동부여이다.
북부여는 지금의 만주 지방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동부여는 함경도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북부여는 부여족이 세운 나라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국된 나라인데, 그 시조는 위의 신화와 같이 해모수(解慕數)이다. 해모수는 자신을 태양으로 자칭했다고 하는데, 그의 낮과 밤의 거처가 다른 것과 그의 성이 해(解)씨인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리고 해모수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모두 태양이나 일광의 변형된 상징이다. 자신을 해로 상징한 것은 절대적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내용도 단군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신화의 구성이 위와같은 구성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부여의 시조 해부루(解夫婁)는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로, 그는 그 자신이 해모수의 후예임을 자처했다. 신화에서는 해모수가 부루를 낳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화적인 요소로 부루는 북부여에서 떨어져나온 일파일 뿐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위에서 살펴본 단군신화, 그리고 앞서 본 해모수 신화와도 같은 구성으로, 부루를 하늘에서 하강한 해모수의 아들로 표현함으로써 그에게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다.
후에 부루는 꿈의 신탁으로 동해가 가십원에 가서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부루는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아이를 갖게 해달라 제를 지내니 바위아래 황금색 개구리 모양을 한 아이를 얻게 된다. 이 아이가 금와(金蛙)이다. 이 금와의 탄생 또한 같은 맥락으로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겠다. 하늘에 제를 올려 얻은 아이, 다시 말하면 하늘이 내려준 아이로, 금와는 바위 아래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을 알렸던 것은 말의 눈물로, 한낱 동물 따위가 상소로운 기를 느끼고 그 바위아래서 조아림을 할 정도로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라고 암묵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다. 또한 황금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이 태양은 다시 유일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개구리 모양의 아라 한 것은 개구리 자체의 다산의 생산성과 금빛의 신성성과의 결합을 통해 신성 왕권의 흥성을 기원함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금와의 이름은 ‘고마’라고도 불릴 수 있는데, 이 고마는 ‘감, 곰, 검’ 이라고도 하며, ‘신(神)’ , 곧 ‘신성한 사람, 높은 지위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금와는 해부루의 직접적인 혈통이 아닌 것으로 보아 해부루와는 다른 부족 출신의 외부 유민으로 보인다. 그가 해부루에 복속한 것을 바위아래서 탄생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해부루의 직접적인 혈통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외부인인 금와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을 신화에서는 간접적인 소통으로 전하고 있다.
3) 고구려의 “주몽신화(朱蒙神話)”
[ 곧 졸본부여(卒本扶餘)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화주(禾州)라고도 하고 성주(城州)라고도 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는데, ≪국사(國史)≫ <고구려본기[高瞿本紀]>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는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에 앞서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피해 가 살았는데,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금와는 그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하백(何伯)의 딸 유화(柳花)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웅신산(熊神山) 아래 압록강가로 있는 집으로 유혹하여 사통(私通)하고는, 저를 버리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간 것을 꾸짖어 드디어 이곳으로 귀양을 보내 살도록 했습니다.”
금와는 괴이하게 여겨 유화를 방안에 남몰래 가두었더니 햇빛이 비추었다. 그녀가 피하자 햇빛이 또 따라와 비추었다. 이로 인해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이 이것을 개, 돼지에게 던져 주었지만 모두 먹지 않았고, 길에다 버렸으나 말과 소가 그 알을 피해 갔으며, 들판에 버리니 새나 짐승이 알을 덮어 주었다. 왕은 그것을 깨뜨리려고 했지만 깨어지지 않았으므로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유화가 천으로 알을 부드럽게 감싸 따뜻한 곳에 두자 어린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겉모습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일곱에 용모야 재략이 비범했으며,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아 백 번 맞추었다. 나라의 풍속에 활 잘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예가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자 맏아들 대소가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일찍이 도모하지 않으면 아마도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왕은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고 먹이를 조금씩 주어 마르게 하고, 늙고 병든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은 자신은 살찐 말을 타고 마른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왕의 아들들과 여러 신하들이 함께 주몽을 해치려 하자, 주몽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아들이게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곧 너를 해치려고 하는데, 너의 재략(才略)이라면 어디를 간들 살지 못하겠느냐? 빨리 떠나거라.”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등 세사람과 벗을 삼아 엄수(淹水)에 이르러 물[水]에게 알려 말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자 하백의 손자이다. 오늘 도망치는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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