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소개의글
스위스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
스위스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살며 일한다
스위스에는 진귀한 풀들이 자란다
지구의 중심
철도와 교량 그리고 고궁
“ 통일은 환영, 그러나 확일은 반대”
지구 인구의 천분의 2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기타 공익시설
스위스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본원칙은 중립
민주주의란 기나긴 과정이다.
단체 및 국민의 권리와 정당
누구에게나 총기를
농민과 호텔업자
소량의 우라늄
스위스인은 발명의 재간이 있다
은행과 보험
학문과 예술, 그리고 알프스의 호른
스위스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
스위스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살며 일한다
스위스에는 진귀한 풀들이 자란다
지구의 중심
철도와 교량 그리고 고궁
“ 통일은 환영, 그러나 확일은 반대”
지구 인구의 천분의 2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기타 공익시설
스위스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본원칙은 중립
민주주의란 기나긴 과정이다.
단체 및 국민의 권리와 정당
누구에게나 총기를
농민과 호텔업자
소량의 우라늄
스위스인은 발명의 재간이 있다
은행과 보험
학문과 예술, 그리고 알프스의 호른
본문내용
건물 앞에 서 있는 것과 똑같은 차들이 서있다. 생활수준은 일반적으로 높아서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젼수상기가 있다. 현대 산업사회의 신분 상징물은 다 갖추어 놓고 있는 셈이다. 세계 5대 부국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나라에도 빈곤은 있지만 국민 총생산은 1950년의 191억 프랑에서 1985년에는 2,415억 프랑으로 증가했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식인, 각 대륙에서 온 유학생들, 그리고 망명자들이 있다. 특히 지난 세기에는 많은 정치적 망명객들이 스위스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세계를 움직여 왔다. 러시아의 철학자 알렉산더. 헤르첸, 무정부주의를 창조한 바쿠닌, 이태리의 자유 투쟁가 가리발디와 마 찌니, 정치적 음악혁명가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레닌도 10월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가기 전까지는 취리히에 살았었고 시인 제임스. 죠이스도 취리히에 묻혀있다. 베른에 가면 조그만 동네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젊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은 연방정부의 특허 국에서 일했었다.
대도시 (1985)
인 구
도시부 시전
취리히 355 400 840 000
바아젤 176 400 363 600
제네바 162 600 382 000
베 른 140 400 301 100
로잔느 127 000 260 200
뷔터투어 85 000 107 400
루체른 74 000 125 400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기타 공익시설
베른의 특허궁에 등록되어 잇는 스위스사람들의 특허수는 괄목할만한 것으로 인구 10만 명에 750명 꼴이다. 스위스인들은 선천적으로 원가를 짜 맞추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몇 가지 발명품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지퍼, 새로운 스키, 또 새 스포츠 종목인 두 바퀴 썰매(Bob),긴 스케이트(Skeleton)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미국인이나 영국인들과 공동으로 고안해 냈지만 여름에도 눈 쌓인 산을 가진 이들은 어름스키도 유행시켜 놓고 있다. 또 등산과 등반을 많이 하고 자랑할 만한 지도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지도야말로 옛 스위스인 들의 취미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연방국가가 수립되기 바로 직전(1848년) 숙명적 내란을 진압시켰던 두 포장 군이 스위스의 산악지도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이 지도들은 지금까지 표본이 되고 있으며 지도제작자들도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스위스의 측정카메라도 빼놓을 수 없다. 스위스인 들은 여가가 있으면 정원에서 일하기를 좋아하고,(아직도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나라 안을 돌아다닌다. 우표를 수집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예술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뷔터투어의 오스카. 라인하르트와 스위스의 기업인 뷔를레의 수집품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산에 오를 때는 지도없이도 케이블카나 스키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다. 전국에 이런 시설이 1,500개 정도 잇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톱니바퀴를 이용하는 등산철로로 1860년경에 스위스인 하나가 특허를 얻은 것이다.
이 같은 톱니바퀴철로의 한 예가 융프라우철로로 클 리이네 솨덱에서 융프라우 역까지 만년설과 빙산지역을 뚫고 해발 3454m나 올라간다. 스위스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면 남에게도 가르치려는 노력을 항상 아끼지 않는데 스키가 바로 그런 것이다. 또 산이 많은 까닭에 케이블카가 많듯이, 호수가 많기 때문에 요트와 수상스키가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옛부터 신체단련에 힘써온 국민들을 위한 스포츠 단체도 곳곳에 있다. 최근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여가스포츠 시설인 비타 파르쿠스라는 야외 달리기 코스가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를 오래 몰던 사람들이 즐겨 이용한다. 아주 오래된 스포츠로는 사격이 있다. 국민적 영웅이었던 텔은 쇠뇌라는 사격기구를 지니고 다니지 않았던가. 지금도 일요일엔 사격연맹의 사격장에서 연습이 한창인데 이 사격은 취미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민방위대원에게는 사격연습의 의무가 있고 사격연맹이 이를 돕고 있는데 이들이 지난 세기에 스위스의 정치적 통일에 이바지한 공은 대단히 크다.
스위스는 무엇을 원하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샤또브리앙은 1832년 루체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섰다. “스위스인은 무엇을 바라는가? 자유인가? 그들은 이미 400년 전부터 자유를 누려왔다. 평등인가?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가? 공화체제? 이건 바로 이들의 정치체제가 이닌가? 세금의 경감? 이들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바라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이는 삶의 법칙이다.” 당시의 스위스는 혁명 중에 있었고 혁명은 50년이라는 오랜 시일을 끌다가 그 결과 새로운 연방국가가 탄생하였다. 그 전에는 과두체제와 공화제체를 혼합시킨 가부장적 군주체제로 무엇보다도 병역에 시달렸었다. 귀족들은 외국왕의 지배 하에서 스위스의 전 연대를 부양하고 있었다. 제네바출신 계몽사상가인 루소는 프랑스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으로 장래 스위스의 국가 모델로 공화적 협동 체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순을 실로 역사의 소금이다. 스위스는 소위공화국이면서 공화적 자유를 위해 싸운 국민친 위대가 프랑스 국왕과 맞섰을 때 프랑스 국왕을 편들어야 했다. 혁명군은 그 뒤 스위스에 들어와서 국가의 보물을 약탈해 갔는데 베른에서만도 2400만 프랑 어치에 이르러 이 재화를 실은 차는 그 무게로 인해 찌그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구체제의 종말이었다.
군대가 징발해 갔었던 프랑스가 이번에는 돈을 거두어갔지만 스위스에 새로운 기본법을 준 것이다. 황제인 동시 독재자였던 나폴레옹은 모든 주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하나의 중앙관서에 결석시켜 소수로 하여금 다수를 따르게 했었다. 이것이 새 연방국가의 예비연습 구실을 한 셈이다. 국민은 단조로운 권태를 원하기보다는 정치적 단판승부를 좋아하는 법이다. 시인 고트프리도. 켈러는 한 사격대회에서 선 젊은 기수의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결같은 스위스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취리히사람과 베른사람, 운터
스위스에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식인, 각 대륙에서 온 유학생들, 그리고 망명자들이 있다. 특히 지난 세기에는 많은 정치적 망명객들이 스위스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세계를 움직여 왔다. 러시아의 철학자 알렉산더. 헤르첸, 무정부주의를 창조한 바쿠닌, 이태리의 자유 투쟁가 가리발디와 마 찌니, 정치적 음악혁명가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레닌도 10월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가기 전까지는 취리히에 살았었고 시인 제임스. 죠이스도 취리히에 묻혀있다. 베른에 가면 조그만 동네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젊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은 연방정부의 특허 국에서 일했었다.
대도시 (1985)
인 구
도시부 시전
취리히 355 400 840 000
바아젤 176 400 363 600
제네바 162 600 382 000
베 른 140 400 301 100
로잔느 127 000 260 200
뷔터투어 85 000 107 400
루체른 74 000 125 400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기타 공익시설
베른의 특허궁에 등록되어 잇는 스위스사람들의 특허수는 괄목할만한 것으로 인구 10만 명에 750명 꼴이다. 스위스인들은 선천적으로 원가를 짜 맞추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몇 가지 발명품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지퍼, 새로운 스키, 또 새 스포츠 종목인 두 바퀴 썰매(Bob),긴 스케이트(Skeleton)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미국인이나 영국인들과 공동으로 고안해 냈지만 여름에도 눈 쌓인 산을 가진 이들은 어름스키도 유행시켜 놓고 있다. 또 등산과 등반을 많이 하고 자랑할 만한 지도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지도야말로 옛 스위스인 들의 취미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연방국가가 수립되기 바로 직전(1848년) 숙명적 내란을 진압시켰던 두 포장 군이 스위스의 산악지도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이 지도들은 지금까지 표본이 되고 있으며 지도제작자들도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스위스의 측정카메라도 빼놓을 수 없다. 스위스인 들은 여가가 있으면 정원에서 일하기를 좋아하고,(아직도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나라 안을 돌아다닌다. 우표를 수집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예술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뷔터투어의 오스카. 라인하르트와 스위스의 기업인 뷔를레의 수집품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산에 오를 때는 지도없이도 케이블카나 스키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다. 전국에 이런 시설이 1,500개 정도 잇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톱니바퀴를 이용하는 등산철로로 1860년경에 스위스인 하나가 특허를 얻은 것이다.
이 같은 톱니바퀴철로의 한 예가 융프라우철로로 클 리이네 솨덱에서 융프라우 역까지 만년설과 빙산지역을 뚫고 해발 3454m나 올라간다. 스위스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면 남에게도 가르치려는 노력을 항상 아끼지 않는데 스키가 바로 그런 것이다. 또 산이 많은 까닭에 케이블카가 많듯이, 호수가 많기 때문에 요트와 수상스키가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옛부터 신체단련에 힘써온 국민들을 위한 스포츠 단체도 곳곳에 있다. 최근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여가스포츠 시설인 비타 파르쿠스라는 야외 달리기 코스가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를 오래 몰던 사람들이 즐겨 이용한다. 아주 오래된 스포츠로는 사격이 있다. 국민적 영웅이었던 텔은 쇠뇌라는 사격기구를 지니고 다니지 않았던가. 지금도 일요일엔 사격연맹의 사격장에서 연습이 한창인데 이 사격은 취미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민방위대원에게는 사격연습의 의무가 있고 사격연맹이 이를 돕고 있는데 이들이 지난 세기에 스위스의 정치적 통일에 이바지한 공은 대단히 크다.
스위스는 무엇을 원하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샤또브리앙은 1832년 루체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섰다. “스위스인은 무엇을 바라는가? 자유인가? 그들은 이미 400년 전부터 자유를 누려왔다. 평등인가?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가? 공화체제? 이건 바로 이들의 정치체제가 이닌가? 세금의 경감? 이들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바라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이는 삶의 법칙이다.” 당시의 스위스는 혁명 중에 있었고 혁명은 50년이라는 오랜 시일을 끌다가 그 결과 새로운 연방국가가 탄생하였다. 그 전에는 과두체제와 공화제체를 혼합시킨 가부장적 군주체제로 무엇보다도 병역에 시달렸었다. 귀족들은 외국왕의 지배 하에서 스위스의 전 연대를 부양하고 있었다. 제네바출신 계몽사상가인 루소는 프랑스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으로 장래 스위스의 국가 모델로 공화적 협동 체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순을 실로 역사의 소금이다. 스위스는 소위공화국이면서 공화적 자유를 위해 싸운 국민친 위대가 프랑스 국왕과 맞섰을 때 프랑스 국왕을 편들어야 했다. 혁명군은 그 뒤 스위스에 들어와서 국가의 보물을 약탈해 갔는데 베른에서만도 2400만 프랑 어치에 이르러 이 재화를 실은 차는 그 무게로 인해 찌그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구체제의 종말이었다.
군대가 징발해 갔었던 프랑스가 이번에는 돈을 거두어갔지만 스위스에 새로운 기본법을 준 것이다. 황제인 동시 독재자였던 나폴레옹은 모든 주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하나의 중앙관서에 결석시켜 소수로 하여금 다수를 따르게 했었다. 이것이 새 연방국가의 예비연습 구실을 한 셈이다. 국민은 단조로운 권태를 원하기보다는 정치적 단판승부를 좋아하는 법이다. 시인 고트프리도. 켈러는 한 사격대회에서 선 젊은 기수의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결같은 스위스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취리히사람과 베른사람, 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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