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지형
[2] 기후
[3] 역사
[4] 정치
[5] 경제
[6] 언어와 국가 구성원
[7] 사회와 문화
<여행 계획>
[2] 기후
[3] 역사
[4] 정치
[5] 경제
[6] 언어와 국가 구성원
[7] 사회와 문화
<여행 계획>
본문내용
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 초청된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는 배타적인 고급 클럽의 성격을 띠고 있다. WEF는 지난 71년 독일 출신의 하버드대 경영학교수 클라우스 슈바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독립적 비영리재단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본부는 제네바에 있다. 청음에는 '유럽인 경영심포지엄'으로 출발하였으나 73년부터 참석대상을 전세계로 넓히고 정치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81년부터 매년 1∼2월 스위스의 고급 휴양지인 다보스에서 회의를 하기 때문에 일명 '다보스회의'라고도 한다. WEF참가자격을 얻으려면 기업의 경우 연간 매출액 7억달러를 넘고 매년 1만 3,000달러의 회비와 2만달러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WEF는 다보스포럼은 연차총회 외에도 지역별 회의와 산업별 회의를 운영하면서 세계무역기구나 선진국 정상회담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WEF는 93년부터 매년 「미래의 세계지도자 100인」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작은 스위스 - 리히텐 슈타인*
리히텐 슈타인 국기
<국가개요> 리히텐 슈타인은 로마 시내의 바티칸 시국(市國), 이탈리아 중부의 산마리노, 프랑스 남해안의 모나코 공국 등과 마찬가지로 소국(小國)으로 유럽 중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나라. 정식국명은 리히텐슈타인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이다. 면적 160㎢. 인구 3만 1700명(1999). 인구밀도 198.1명/㎢(1999). 수도는 파두츠이며 공용어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입헌군주제를 정치조직으로 갖추고 있으며, 스위스 프랑을 통용화폐로 사용중이다. 리히텐 슈타인 국민들의 1인당 국민총생산 3만 7000달러이다.
지형 라인 계곡의 오른편에 위치한 북부 저지와 남부의 넓은 대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취락은 대지의 서쪽 기슭, 스위스의 바트라가츠와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를 잇는 간선도로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유일한 철도는 스위스의 부흐스에서 시발하여 서쪽 국경의 중앙을 지나, 북동으로 달리다가 펠트키르히로 빠져나간다.
요제프 2세 성
역사 신성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셸렌베르크 공국과 파두츠 공국이 1719년에 통일되어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형성하였다. 1806년에는 라인 동맹(同盟)의 일원으로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왔으며, 1815년부터 독일연방에 가맹해 있다가 1866년에 독립, 1867년에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오스트리아와 관세·통화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실질적으로 스위스의 보호하에 들어갔으며, 1921년에는 우편·통화, 1924년에는 관세를 공동화(共同化)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외교도 스위스 정부를 통한다.
정치 리히텐슈타인은 192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입헌세습의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공국(公國)의 국가원수는 한스아담 2세이다. 의회는 단원제, 의원 25명, 임기 4년이며, 20세 이상인 남자의 직접선거와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1997년 2월의 선거 결과, 조국시민동맹 13석, 진보시민당 10석, 프리리스트 2석을 각각 차지 하였다. 총리는 의회의 발의에 따라 원수가 임명한다. 1867년부터 군대 없는 영세중립국으로 지내고 있으며, 국민에게는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없다. 왕족 이외는 빈부의 차가 거의 없으며, 실업도 범죄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이다. 여성참정권은 1876년에 인정되었다.
경제 1996년 현재 리히텐슈타인의 산업인구 구성은 공업, 무역업 46%, 서비스업 52%, 농업과 임업 등이 5%로 이루어져 있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도 많다. 밀을 약간 수입하는 것 이외는 국내에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포도와 포도주, 그 밖에 과실 등이 많이 산출되며, 목초지가 잘 정비되어 축산도 활발하다. 공업에 대한 의존도도 크며, 지금까지의 방직·피혁 이외에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근대화정책으로 의치(義齒)·현미경·고주파기·광학기기 등의 정밀기계, 난방기기, 화학제품, 가죽제품, 소시지가공 등의 공업도 발달하고 있다. 또 아름답기로 소문난 우표의 매상이 많아 국고수입의 1/3을 차지할 정도이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항상 파두츠의 우체국에 몰린다. 국적 취득이 쉽고 각종 세부담이 매우 가볍기 때문에 외국자본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있으며, 수도인 파두츠에는 2,000을 넘는 회사들이 등록을 해 놓고 있다.
사회와 문화 알프스 산맥의 기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리히텐슈타인은 인구가 약 3만 명(그 가운데 3분의 1이 외국인 거주자)이며 면적이 160㎢에 불과한 국가이다. 주민은 독일계로 독일어(독일의 방언)가 공용어로 사용되는데 라인 강 좌안의 스위스와는 달리 레토로망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 3,500달러로 높은 편이며, 빈부의 차가 거의 없고 실업과 범죄도 거의 없다.
음악분야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유명한 작곡가 조셉 가브리엘 라인베르거(Joseph Gabriel Rheinberger: 1839-1901)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프란츠 리스트의 친구였으며 저명한 작곡가 험퍼딩크(Humperdinck)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오늘날 리히텐슈타인에는 유명한 음악가 뿐 아니라 많은 음악 협회나 합창단들이 있는데 그수가 400개 이상에 이른다. 또한 리히텐슈타인 음악학교는 국립재단으로 열성적으로 음악사업을 육성하며 '국제적 마스터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분야에서는 플라스틱 아트로 유명한 게오르그 말린(Dr. Georg Malin) 박사나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등이 유명하다.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도 활발하여 정부에서는 'Art on Buildings' 법률로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은행이나 기업들도 그들의 스폰서가 되어 주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에는 부활절 전에 푼켄존탁(Funkensonntag(Spark Sunday))이라는 축제가 있는데 일종의 마녀화 형식에서 유래하였으며 공공 축제이면서 마을 간의 대항전이기도 하다. 리히텐슈타인인의 90%가 로마가톨릭 교인이기 때문에 많은 전통이 기독교 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작은 스위스 - 리히텐 슈타인*
리히텐 슈타인 국기
<국가개요> 리히텐 슈타인은 로마 시내의 바티칸 시국(市國), 이탈리아 중부의 산마리노, 프랑스 남해안의 모나코 공국 등과 마찬가지로 소국(小國)으로 유럽 중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나라. 정식국명은 리히텐슈타인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이다. 면적 160㎢. 인구 3만 1700명(1999). 인구밀도 198.1명/㎢(1999). 수도는 파두츠이며 공용어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입헌군주제를 정치조직으로 갖추고 있으며, 스위스 프랑을 통용화폐로 사용중이다. 리히텐 슈타인 국민들의 1인당 국민총생산 3만 7000달러이다.
지형 라인 계곡의 오른편에 위치한 북부 저지와 남부의 넓은 대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취락은 대지의 서쪽 기슭, 스위스의 바트라가츠와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를 잇는 간선도로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유일한 철도는 스위스의 부흐스에서 시발하여 서쪽 국경의 중앙을 지나, 북동으로 달리다가 펠트키르히로 빠져나간다.
요제프 2세 성
역사 신성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셸렌베르크 공국과 파두츠 공국이 1719년에 통일되어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형성하였다. 1806년에는 라인 동맹(同盟)의 일원으로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왔으며, 1815년부터 독일연방에 가맹해 있다가 1866년에 독립, 1867년에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오스트리아와 관세·통화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실질적으로 스위스의 보호하에 들어갔으며, 1921년에는 우편·통화, 1924년에는 관세를 공동화(共同化)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외교도 스위스 정부를 통한다.
정치 리히텐슈타인은 192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입헌세습의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공국(公國)의 국가원수는 한스아담 2세이다. 의회는 단원제, 의원 25명, 임기 4년이며, 20세 이상인 남자의 직접선거와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1997년 2월의 선거 결과, 조국시민동맹 13석, 진보시민당 10석, 프리리스트 2석을 각각 차지 하였다. 총리는 의회의 발의에 따라 원수가 임명한다. 1867년부터 군대 없는 영세중립국으로 지내고 있으며, 국민에게는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없다. 왕족 이외는 빈부의 차가 거의 없으며, 실업도 범죄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이다. 여성참정권은 1876년에 인정되었다.
경제 1996년 현재 리히텐슈타인의 산업인구 구성은 공업, 무역업 46%, 서비스업 52%, 농업과 임업 등이 5%로 이루어져 있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도 많다. 밀을 약간 수입하는 것 이외는 국내에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포도와 포도주, 그 밖에 과실 등이 많이 산출되며, 목초지가 잘 정비되어 축산도 활발하다. 공업에 대한 의존도도 크며, 지금까지의 방직·피혁 이외에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근대화정책으로 의치(義齒)·현미경·고주파기·광학기기 등의 정밀기계, 난방기기, 화학제품, 가죽제품, 소시지가공 등의 공업도 발달하고 있다. 또 아름답기로 소문난 우표의 매상이 많아 국고수입의 1/3을 차지할 정도이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항상 파두츠의 우체국에 몰린다. 국적 취득이 쉽고 각종 세부담이 매우 가볍기 때문에 외국자본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있으며, 수도인 파두츠에는 2,000을 넘는 회사들이 등록을 해 놓고 있다.
사회와 문화 알프스 산맥의 기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리히텐슈타인은 인구가 약 3만 명(그 가운데 3분의 1이 외국인 거주자)이며 면적이 160㎢에 불과한 국가이다. 주민은 독일계로 독일어(독일의 방언)가 공용어로 사용되는데 라인 강 좌안의 스위스와는 달리 레토로망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 3,500달러로 높은 편이며, 빈부의 차가 거의 없고 실업과 범죄도 거의 없다.
음악분야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유명한 작곡가 조셉 가브리엘 라인베르거(Joseph Gabriel Rheinberger: 1839-1901)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프란츠 리스트의 친구였으며 저명한 작곡가 험퍼딩크(Humperdinck)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오늘날 리히텐슈타인에는 유명한 음악가 뿐 아니라 많은 음악 협회나 합창단들이 있는데 그수가 400개 이상에 이른다. 또한 리히텐슈타인 음악학교는 국립재단으로 열성적으로 음악사업을 육성하며 '국제적 마스터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분야에서는 플라스틱 아트로 유명한 게오르그 말린(Dr. Georg Malin) 박사나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등이 유명하다.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도 활발하여 정부에서는 'Art on Buildings' 법률로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은행이나 기업들도 그들의 스폰서가 되어 주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에는 부활절 전에 푼켄존탁(Funkensonntag(Spark Sunday))이라는 축제가 있는데 일종의 마녀화 형식에서 유래하였으며 공공 축제이면서 마을 간의 대항전이기도 하다. 리히텐슈타인인의 90%가 로마가톨릭 교인이기 때문에 많은 전통이 기독교 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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