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 론
II. 본 론
1. 허준의 출생
2. 내의원에 입문한 허준
3. 허준의 위기(유배)
4. 『동의보감』완성 및 타계
III. 결 론
II. 본 론
1. 허준의 출생
2. 내의원에 입문한 허준
3. 허준의 위기(유배)
4. 『동의보감』완성 및 타계
III. 결 론
본문내용
입문한 뒤의 생활에 관하여 주로 서술하였다.
허준은 의상이라고까지 추앙되는 인물이며, 신분적 불리함을 딛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도전적 인간상의 전형이다. 당시 동북아시아라는 ‘세계’의 의학 지식을 모두 수집, 정리하는 한편 이를 유 불 도의 화통으로 흡수함으로써 가장 체계적인 조선 의학의 전통과 철학을 만들었다. 의원으로서 허준의 뛰어난 점은 복약과 치료보다도 정신수양과 섭생에 의술의 본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료 의학보다는 예방 의학을 우선시했다는 점이 그의 의학 사상에 있어서 큰 특징이다. 그것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그의 모든 저술에 일관되게 흐르는 관념으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도 대단히 선각자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의술을 기술이 아닌 인술로 파악하여 인본주의자로서 의원의 길을 걸어간 허준은 항상 가난한 백성의 입장에서 치료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환경에 의한 영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항상 조선의 실정을 감안한 방안을 채택하였고, 우리 민족 체질의 특성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허준은 항상 힘없는 백성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일반 백성들이 의원들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도 기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대중용 의학 서적 편찬에 주력하였다. 방대한 자료를 편집하고 증보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들도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으로 달려가 치료에 임하면서 임상 경험을 쌓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의술의 목표는 가난한 백성들을 구호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자기가 배운 학문으로 그 어떤 정치가보다 더 치도의 근본을 실천해간 큰 인물이었으며, 전란을 전후해서 어수선하고 흔들리던 당시 왕조 정권을 한 쪽에서 굳건히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즉, 허준은 의학 쪽에서도 빛을 발하였고, 왕권의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필자는 허준의 신분이 더 높았다면...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만약 허준의 신분이 서얼 출신이 아닌 높은 양반의 출신이거나 왕족 출신이었다면, 어의의 신분에서 왕의 신뢰에 대해 다른 문신들도 함부로 건의를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허준이 서얼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명의가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만약 허준의 신분이 서얼 출신이 아니라 높은 양반의 신분이거나, 왕족 등 높은 신분이었다면 의원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얼의 신분의 허준이 아니었다면, 스승 유의태나, 양예수 등 명의들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세계에서 둘도 없을 정도로 훌륭한 명의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 솔직히 허준은 의학에도 정통하였지만, 자기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고, 백성들의 건강을 생각하였다는 점이다. 자기의 일평생을 의학에 전념하며 백성들의 건강을 생각하였고, 『동의보감』편찬 도중에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 즉 유배나 임진왜란, 정유재란, 문신들의 시기와 질투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소임을 다하였다는 점에서 필자는 “허준“이라는 인물을 존경한다. 솔직히 그러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닥쳤다면, 왠만한 끈기를 가진 사람들도 쉽게 착수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동의보감』에 대해 보자면, 정말 훌륭한 의서이다. 『동의보감』은 그 당시까지 나온 500여 권의 의학책을 모두 살펴보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간추려 간편하게 실용성 있게 엮었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의학을 부흥시듐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의서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중국에서 출판될 때 그 서문에서 “천하의 보물은 마땅히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여야한다.”고 극찬하였고, 일본에서도 “의가의 비급”으로 소중히 떠받들어졌다는 점에서 정말 위대하다 할 수 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19세기 정도의 의술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의술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동의보감』이라는 책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동의보감』은 조선 의학 사상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다.
IV. 참 고 문 헌
이이화, 한국사의 주체적 인물들, 여강, 1994.
김형광, 한 권으로 읽는 조선 인물실록, 시아출판, 1998.
이은직, 한국사 명인전2, 일빛, 1994.
김성환,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1001~2000), 오늘의 책, 1998.
김 호, 한국사 시민강좌, 일조각, 2005
허준은 의상이라고까지 추앙되는 인물이며, 신분적 불리함을 딛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도전적 인간상의 전형이다. 당시 동북아시아라는 ‘세계’의 의학 지식을 모두 수집, 정리하는 한편 이를 유 불 도의 화통으로 흡수함으로써 가장 체계적인 조선 의학의 전통과 철학을 만들었다. 의원으로서 허준의 뛰어난 점은 복약과 치료보다도 정신수양과 섭생에 의술의 본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료 의학보다는 예방 의학을 우선시했다는 점이 그의 의학 사상에 있어서 큰 특징이다. 그것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그의 모든 저술에 일관되게 흐르는 관념으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도 대단히 선각자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의술을 기술이 아닌 인술로 파악하여 인본주의자로서 의원의 길을 걸어간 허준은 항상 가난한 백성의 입장에서 치료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환경에 의한 영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항상 조선의 실정을 감안한 방안을 채택하였고, 우리 민족 체질의 특성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허준은 항상 힘없는 백성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일반 백성들이 의원들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도 기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대중용 의학 서적 편찬에 주력하였다. 방대한 자료를 편집하고 증보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들도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으로 달려가 치료에 임하면서 임상 경험을 쌓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의술의 목표는 가난한 백성들을 구호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자기가 배운 학문으로 그 어떤 정치가보다 더 치도의 근본을 실천해간 큰 인물이었으며, 전란을 전후해서 어수선하고 흔들리던 당시 왕조 정권을 한 쪽에서 굳건히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즉, 허준은 의학 쪽에서도 빛을 발하였고, 왕권의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필자는 허준의 신분이 더 높았다면...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만약 허준의 신분이 서얼 출신이 아닌 높은 양반의 출신이거나 왕족 출신이었다면, 어의의 신분에서 왕의 신뢰에 대해 다른 문신들도 함부로 건의를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허준이 서얼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명의가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만약 허준의 신분이 서얼 출신이 아니라 높은 양반의 신분이거나, 왕족 등 높은 신분이었다면 의원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얼의 신분의 허준이 아니었다면, 스승 유의태나, 양예수 등 명의들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세계에서 둘도 없을 정도로 훌륭한 명의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 솔직히 허준은 의학에도 정통하였지만, 자기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고, 백성들의 건강을 생각하였다는 점이다. 자기의 일평생을 의학에 전념하며 백성들의 건강을 생각하였고, 『동의보감』편찬 도중에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 즉 유배나 임진왜란, 정유재란, 문신들의 시기와 질투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소임을 다하였다는 점에서 필자는 “허준“이라는 인물을 존경한다. 솔직히 그러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닥쳤다면, 왠만한 끈기를 가진 사람들도 쉽게 착수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동의보감』에 대해 보자면, 정말 훌륭한 의서이다. 『동의보감』은 그 당시까지 나온 500여 권의 의학책을 모두 살펴보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간추려 간편하게 실용성 있게 엮었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의학을 부흥시듐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의서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중국에서 출판될 때 그 서문에서 “천하의 보물은 마땅히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여야한다.”고 극찬하였고, 일본에서도 “의가의 비급”으로 소중히 떠받들어졌다는 점에서 정말 위대하다 할 수 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19세기 정도의 의술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의술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동의보감』이라는 책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동의보감』은 조선 의학 사상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다.
IV. 참 고 문 헌
이이화, 한국사의 주체적 인물들, 여강, 1994.
김형광, 한 권으로 읽는 조선 인물실록, 시아출판, 1998.
이은직, 한국사 명인전2, 일빛, 1994.
김성환,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1001~2000), 오늘의 책, 1998.
김 호, 한국사 시민강좌, 일조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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