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문학사 - 한국문학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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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문학사 - 한국문학사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유형으로 나뉜다. 그의 문체탐구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것은 긴 문장에서의 콤마 사용이다. 그것은 그의 문장을 염상섭의 긴 비판 문장과 다르게 만든 기본 요소로서 이를 통해 그의 문장은 감각적 탄력성을 얻고 있다.
4 김유정 혹은 농촌의 궁핍화 현상
김유정의 소설적 관심의 대상은 농촌이다. 그 자신이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농촌 점묘는 매우 탁월하여 그의 묘사에는 탄력과 활기가 넘친다. 그의 작품의 대개가 지주집 자식과 종의 사랑이라는 계층적 대립을 다루면서도 살벌한 증오심 대신 유머가 가득 차 있다. 그 유머들은 고전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머라는 점에서 그를 전통과 결부시킨다. 그의 초기 농촌 점경들은 결혼-연애라는 개화 초기의 중요한 풍속적 문제의 한 변형이다. 그러나 후기 작품들은 초기 작품들의 목가적 세계를 벗어난 뛰어난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농촌 청년들의 연애담에서 농가의 비참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식민지 치하의 농촌 풍경은 노름, 수탈, 매춘, 일확천금의 꿈으로 나타난다. 그의 소설은 비화해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소설적 트릭도 없이 세계를 그대로 내보여서 그는 어떤 작가보다도 식민지 치하의 농촌의 궁핍 상을 여실히 묘파한다.
5 기타 작가들
앞서의 작가들 이외에 식민지 후기의 산문 작가로 주목 할 만한 작가로 이태준, 김남천 등이 있다.
1) 이태준----봉건주의적인 풍속과 악랄한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감당한 폐쇄 사회에서의 패배주의적 인물을 즐겨 그린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거의 전부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에 복수 당하는 패배적 인간을 그리고 있다. 변화해서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에만 매달려 있는 <회의주의적이며 감상주의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시니시즘으로 인생에 대해서는 아이러니로 대인 관계는 페이소스로 대처해 나간다. 이태준의 산문에서의 일사일언문장 역시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2) 김남천----김남천의 문학적 활동은 그의 「고발문학론」과 카프 해산 이후 거기에 소속되어 있었던 사람들의 이후의 처신에 대한 단편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의 아시아주의가 갖는 허구성을 파헤치려고 애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 예찬을 비난하면서도 살아나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 사관에 동의해버린 전향자를 부주인공으로 세운다. 그러나 김남천의 식민지 사관 비판은 물론 일제 치하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발견되지 못하고 만다. 그것이 감상주의 때문인지 그것에 대한 탐구를 포기했기 때문인지는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제 9절 한국어의 훈련과 그 의미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는 김소월, 한용운, 이상화의 시적 공간을 전통으로 흡수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예술적 구조를 획득하는 문제와 부딪친다. 그러나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는 그러한 문제에 대답하지 못하고 깊이 있는 시를 창조하는데 실패한다.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아 회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 하는 경향과 재래적인 운율에 집착하여 음악성을 고집하는 경향 외에 자신의 내적 고통을 외적 현실에 투사시키고, 외부의 정경을 자신의 내적 경험으로 환치시키는 내용의 시는 한국 시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윤동주가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작업을 수행했을 따름이다.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지성이 재치와 동일시되고 고통은 기피되어야 할 감정적 누습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에서 주목해야 할 시적 노력은 시조 부흥론이다. 중인 지식 계층에 의해 명맥을 이어온 시조에 대한 관심이 이병기에 이르러 독특한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식민지 후기의 운문 작업에서 기록할 만한 업적을 남긴 시인은, 정지용과 윤동주, 그리고 이병기이다. 그 세 시인 외에 김광균과 김영랑, 백석이용악을 추가할 수 있다.
1 정지용 혹은 절제의 시인
정지용은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한 한국 최초의 시인이다. 그 이전의 거의 모든 시들이 한탄, 슬픔 등의 감정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 그의 시는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감정의 생경한 노출이 거의 보이지 않고, 그의 초기 시에 보이는 것은 엄격한 감정 규제이다. 감정의 대위법에 의해 감정을 완전무결하게 감추고 있는 그의 시작법은 감각의 단련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초기의 그는 슬픔을 가볍게 날리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가 슬픔을 가볍게 날릴 수 있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몇 개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그의 성격 때문이라는 가정이다. 그는 순결벽의 증세를 가지고 있어 흰색에 대한 경사는 병적일 정도이다. 감상주의에 대한 그의 기피증 역시 병적이다. 감정의 과다한 자기 노출을 될 수 있는 한 억제하고, 자신을 규제하여 절도 있게 사물을 인식하려는 노력은 고전주의의 본질로 그는 고전주의적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전주의는 모방의 대상이 없는 비극적 고전주의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조소성에 굳게 매달려 이미지즘으로 기운다. 둘째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인식 때문이라는 가정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시는 현실과 아무런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유희의 시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카페 프란스」,「슬픈 인상화」, 「고향」 등은 그의 현실 인식이 소박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 보여준다. 그는 고향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표현하며 바다와 여행을 소재로 시를 쓴다. 이는 식민지 치하의 폐쇄성에 대한 한 저항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는 소시민이기 때문에 한용운과 같이 피 묻은 깃대를 세우지는 못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력 아래 한국어를 고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명확하게 깨달은 시인이다. 셋째로는 그것이 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이라는 가정이다. 그와 더불어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는 김기림은 반봉건성과 감상주의의 배격을 열렬하게 주장하였고, 그것은 정지용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관적 언어를 통해 대상을 조소적으로 파악하려는 그의 초기 태도는 카톨릭에 귀의하면서 점차적으로 무욕의 철학으로 바뀐다. 완벽한 것에 대한 취향과 음험한 현실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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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6.11.14
  • 저작시기2004.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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