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신학자 책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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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신학자 책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현대 신학을 시작하면서

현대 신학에 대한 세 가지 생각

제1부 20세기 전반기의 신학
칼바르트: 하나님 말씀의 신학자

제2부 20세기 후반기의 시학의 주요 특징

맺음말

본문내용

부 목회자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다룰 가치가 있는 제 1급의 신학자들은 모두 진리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신학을 한 분들이 었다.
또한 현대 신학에 설령위험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비판적 읽기를 통해 극복해야 할 성질의 것이지 회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문제를 직면할 때만 배울 수 있고 성장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 세 번째 오해는 그것이 신앙생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혀대 신학자들 특히 서구 신학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에서 신학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사와 문제의 식이 오늘 우리들의 관심사와 반드시 일할수 없으며 이 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다른 면에서 보면 현대 신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오늘 우리가 인간이자 그리스도인들로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다룬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그 질문들은 교회와 개인이 신앙을 더 풍요롭고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제1부 20세기 전반기의 신학
칼바르트: 하나님 말씀의 신학자
칼 바르트 (1886-1968)의 생애와 신학
20세기 개신교 신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를 한명만 꼽으라면 아마도 독일과 스위스에서 활동했던 칼 바르트 일것이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20세기 신학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데서 그의 신학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이다.
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보수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신학자 요한 프리드리히 프리츠 바르트의 아내 안나 사이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고 18살 1908년에 신학 공부를 시작해 베른 대학과 베들린 대학 그리고 튀빙겐 대학에서 계속 수학했으며 1908년 마르 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로 공부를 바쳤다. 학창시절 자유신학자 아들프 본 하르낙, 빌헬름 헤르만에게 배웠는데 특히 헤르만은 아주 오랬동안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공부를 마친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부목사로 활동했고1911-1921년 사이의 약 10년동안 스위스 아르가우 지방의 자펜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로 일했다. 그는 이곳에서 자본가들의 착취로 인한 노동자 계층의 비참함을 목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복음서가 말하는 사회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현실적인 나라로 이해했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으로 그 지역의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려고 하였다. 그는 지역의 공장주나 자본가로부터 빨갱이 목사라는 비판까지 듣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유주의에 한계를 절감하였다. 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며 이성적이고 역사 내재적인 신학으로 도덕적 능력과 문화 창조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광 그리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지 못하였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기 보다 인간의 종교 경험이 표현된 책이자 인간 사회에 필요한 윤리적 원칙을 제공해 주는 책 정도로만 간주하였다.
1914년7월28일 당시 독일의 황제인 빌헤름 카이저 2세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에서 암살된것을 빌미로 제 1차세계 대전을 일으켰다.이것은 유럽의 민족주의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서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찾을수 없는 비도덕적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지성인 93명은 이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는 지성인 선언을 발표하였고 그속에는 바르트의 학창시절 스승들을 포함한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대부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젊음 목회자 바르트는 이사건을 통하여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충격으로 그가 배운 모든 것을 뒤로 던져 버리고 성경과 신학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신학의 첫 출발점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데 놓았다.
성경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한 바르트의 시도는 성서안의 새로운세계(1916)와 그 뒤를 이은 로마서 강해 초판으로 표현되었다. 바르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고 또한 새로운 신학 운동의 중심으로 만든것은 1921년 출판된 로마서 강해2판이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결코 범접할수 없는 분이며 그가 나타날 때 인간은 근본적인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움켜진 주먹, 사방이 막힌 불벽처럼 임하며 이런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인간의 모든 경건과 종교성 그리고 윤리적 성취등은 모두 죄악된 것으로 심판받을수밖에 없다며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은 그것이 마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바르트 자신도 어두운 밤 교회당의 계단을 올라가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교회 종의 줄을 잡아당겨 마을 사람들 모두의 잠을 깨운 사람과 같았다고 회고 하였다.
바르트는 2판을 통해 독일의 루터파 신학교인 괴팅겐 대학의 신학 교수로 초빙받아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새로운 신학은 아직 전혀 형성되지 못했던 그는 매번 강의 할때마다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개혁주의 전통에 서있던 바르트는 개혁 교회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대신할 새로운 신학의 내용을 찾았다. 그는 기독교 교의학 개요에서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으로 어느 정도의 신 인식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의 자연 신학과 인간의 종교성과 경건 및 윤리적 능력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자유주의 신학을 모두 반대하고 신학은 철저히 교회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또한 거기서 출발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주장은 지난 200여년 동안의 독일 신학 전통을 완전히 뒤집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통하여 연합국 측에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독일은 민족의 우수성과 사명을 말하는 히틀러를 제3제국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히틀러는 아리안 입법을 통과 시켜 유대인들의 공적인 권한과 자격을 박탈해서 유대인들을 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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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1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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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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