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고종황제(1852~1919.1.21 재위 : 1863~1907)
고종의 대외 정세 인식
고종의 개화-개방정책
고종, 개명군주 성격 강하다
한국 근대화의 특수성 고려해야 한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의 비판
우리나라의 근대화 늦추고 외국의 침략 가속화.
실권 이후 흥선대원군의 정치행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고종황제와 홍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개혁에 대한 평가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고종의 대외 정세 인식
고종의 개화-개방정책
고종, 개명군주 성격 강하다
한국 근대화의 특수성 고려해야 한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의 비판
우리나라의 근대화 늦추고 외국의 침략 가속화.
실권 이후 흥선대원군의 정치행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고종황제와 홍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개혁에 대한 평가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본문내용
점이다. 많은 학자들이 대원군의 개혁 정치중 경제적인 실책(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무명잡세 징수, 당백전 발행 등)에 대한 문제점만을 제기했지, 그의 세도정치 타파와 능력위주의 인재등용, 서원 철폐, 조세 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왔다. 그러나 이것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상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대원군은 서원 철폐나 조세 개혁을 통해 양반들의 특권을 많이 빼앗았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인 평등한 개혁 이라기보다는 농민들의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계책이 숨어있었다.
대원군의 능력 본위의 인재 등용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중인, 서리, 서얼들을 정치에 참여시킨 사실이다. 물론 이들은 대원군의 사조직 속에 널리 분포하여 통치 도구로 활용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이들의 정치적 지위를 보장하는 어떤 \'제도 개혁\'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당시 중인들의 정치적 지위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이르고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이것의 한계가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다음은 대원군의 조세 제도 개혁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의 개혁으로 인해 많은 민중들이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의 개혁목적은 민생 안정과 사회 전반의 근대화보다는 다른 목적 아래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원군이 어려운 국가 재정과 민중생활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을 중건한다고 선언한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왕실을 위한 것이었으며, 미래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1. 개화파
“우리나라는 너무 보수적이야 !! 외국의 발달된 선질 문물을 받아 들어야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개화파라고 합니다. 대체로 혁신적인 유생들이나 시대에 앞선 사람들이죠!! 개화파의 연결도를 보겠습니다.(시대에 따라 연결됩니다.)
(1876)
[북학파]----[통상개화파]--강화도조약---[급진개화. 온건개화파]--[독립협회(1906]
[북학파]는 박지원등의 인물로 조선후기 북학파(중상학파)와 중농학파가 있었던거 아시죠?
북학파는 청의문물 수용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젤 처음의 개화파죠
[통상개화파]는 강화도 조약 전에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인물로 박규수는 박지원의 조카로 북학파를 이어받습니다. 그래서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구 주장을 합니다.
박규수는 여러 제자들에게 개화사상을 전파 하는데요. 그 제자들이 강화도 조약시기 때에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두개의 파를 나눕니다.
[급진개화파]는 인물은 생각이 잘 안나는군욤 !!
옆 이웃나라인 일본을 메이지유신이라는 선진문물 수용운동을 벌여 엄청나게 쎄졌죠. 그래서 나중에 우리를 무력으로 강화도조약도 맺게 하죠!! 급진개화파들은 이러한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받아들여서 우리나라가 빨리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구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체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우리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급진개화파들은 강화도 조약 후에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실패하죠(1984)
[온건개화파]들은 \"아냐!! 우리의 옛것을 지키고 몇 개만 받아 들이면되!!\"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청의 양무운동 \" 정치부분만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청의운동\"을 본받아서 우리도 일부분만 바꾸면되1! 그러니까 천천히 바꿔야데. 이런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갑오개혁을 일으키죠...(1984) 그리고 후에 독립협회가 이 개화파를 이어받습니다....
개화파->는 나라를 바꾸려는 생각을 가진 시대에앞서는 사람들 !! 이라고보면되여
2. 위정척사파
\"우리 그대로 나라를 유지하고 서양 놈들과는 거래하지말자 !!\" 나라를 안 바꾸려는 보수적인 세력들이죠. 주로 양반들(양반은 자기세력을 유지하기바라겠죠>??) 이나 보수 세력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통상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라를 지키는 의병운동과 독립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1960개항 전 1970개화 전 1980개화 후
[위정척사운동]-[통상반대운동]-[개항반대운동]-[개화반대운동]-[의병운동]-[독립투쟁운동]
위정척사운동은 1960년대에는 외국 세력들이 우리나라에 통상을 요구했죠! 그때 위정척사론(통상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을 주장하고 !!통상을 반대 합니다 !!
그러나 통상을 한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개화를 요구했죠!! 강화도조약을요구! 그래서 이들은 왜양일체론(왜놈들은 곧 서양이다!)을 주장하면서 개화를 반대했습니다.
이들의 반대에도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
먼저 대원군은 서원 철폐나 조세 개혁을 통해 양반들의 특권을 많이 빼앗았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인 평등한 개혁 이라기보다는 농민들의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계책이 숨어있었다.
대원군의 능력 본위의 인재 등용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중인, 서리, 서얼들을 정치에 참여시킨 사실이다. 물론 이들은 대원군의 사조직 속에 널리 분포하여 통치 도구로 활용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이들의 정치적 지위를 보장하는 어떤 \'제도 개혁\'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당시 중인들의 정치적 지위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이르고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이것의 한계가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다음은 대원군의 조세 제도 개혁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의 개혁으로 인해 많은 민중들이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의 개혁목적은 민생 안정과 사회 전반의 근대화보다는 다른 목적 아래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원군이 어려운 국가 재정과 민중생활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을 중건한다고 선언한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왕실을 위한 것이었으며, 미래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1. 개화파
“우리나라는 너무 보수적이야 !! 외국의 발달된 선질 문물을 받아 들어야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개화파라고 합니다. 대체로 혁신적인 유생들이나 시대에 앞선 사람들이죠!! 개화파의 연결도를 보겠습니다.(시대에 따라 연결됩니다.)
(1876)
[북학파]----[통상개화파]--강화도조약---[급진개화. 온건개화파]--[독립협회(1906]
[북학파]는 박지원등의 인물로 조선후기 북학파(중상학파)와 중농학파가 있었던거 아시죠?
북학파는 청의문물 수용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젤 처음의 개화파죠
[통상개화파]는 강화도 조약 전에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인물로 박규수는 박지원의 조카로 북학파를 이어받습니다. 그래서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구 주장을 합니다.
박규수는 여러 제자들에게 개화사상을 전파 하는데요. 그 제자들이 강화도 조약시기 때에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두개의 파를 나눕니다.
[급진개화파]는 인물은 생각이 잘 안나는군욤 !!
옆 이웃나라인 일본을 메이지유신이라는 선진문물 수용운동을 벌여 엄청나게 쎄졌죠. 그래서 나중에 우리를 무력으로 강화도조약도 맺게 하죠!! 급진개화파들은 이러한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받아들여서 우리나라가 빨리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구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체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우리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급진개화파들은 강화도 조약 후에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실패하죠(1984)
[온건개화파]들은 \"아냐!! 우리의 옛것을 지키고 몇 개만 받아 들이면되!!\"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청의 양무운동 \" 정치부분만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청의운동\"을 본받아서 우리도 일부분만 바꾸면되1! 그러니까 천천히 바꿔야데. 이런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갑오개혁을 일으키죠...(1984) 그리고 후에 독립협회가 이 개화파를 이어받습니다....
개화파->는 나라를 바꾸려는 생각을 가진 시대에앞서는 사람들 !! 이라고보면되여
2. 위정척사파
\"우리 그대로 나라를 유지하고 서양 놈들과는 거래하지말자 !!\" 나라를 안 바꾸려는 보수적인 세력들이죠. 주로 양반들(양반은 자기세력을 유지하기바라겠죠>??) 이나 보수 세력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통상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라를 지키는 의병운동과 독립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1960개항 전 1970개화 전 1980개화 후
[위정척사운동]-[통상반대운동]-[개항반대운동]-[개화반대운동]-[의병운동]-[독립투쟁운동]
위정척사운동은 1960년대에는 외국 세력들이 우리나라에 통상을 요구했죠! 그때 위정척사론(통상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을 주장하고 !!통상을 반대 합니다 !!
그러나 통상을 한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개화를 요구했죠!! 강화도조약을요구! 그래서 이들은 왜양일체론(왜놈들은 곧 서양이다!)을 주장하면서 개화를 반대했습니다.
이들의 반대에도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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