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글머리에
2. 윤동주의 간추린 생애
3. 윤동주 시의 자기 반성적 성격
4. 맺음말
<참고 문헌>
2. 윤동주의 간추린 생애
3. 윤동주 시의 자기 반성적 성격
4.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이 상접한 형상이었다고 한다. 유해는 부친의 손에 의해 간도 용정 동산의 교회묘지에 묻혔다.
3. 윤동주 시의 자기 반성적 성격
윤동주를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평문들은 전기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시는 그의 삶에 의해 설명되어지곤 했다. 그것은 그만큼 그의 시가 다른 시인의 경우에 비해 고백적이라는 것이다. 시가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띠면 띨수록 그것은 일기에 가까워지고 전기적인 해석이 그만큼 유용해질 것이다.
그의 유고시집의 서시를 보자. 이것은 그의 대표작이면서 그의 시 전체를 관류하는 고백적, 자기 성찰적인 자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하 윤동주의 시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서울:명지사,1982)에 따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1.11. 20
주지하다시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仰不愧於天)은 물론 맹자, 진심장구의 한 구절이다. 수신서의 한 구절을 시집의 서시에 인용한 것부터 그 시집에 실린 시들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말하자면 수신서의 한 구절을 도덕률로 간직한 채, 부끄럽지 않도록 주어진 길을 의연하게 가겠노라는 고백이면 다짐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들이, 그의 삶을 추스리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도록 해 준다. 일기라는 것이, 생활에서 겪은 일과 그에 대한 생각을 하루 단위로 기록한 것으로, 자신의 정신적인 고백이며, 자신과의 대화이며, 자기를 응시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해 볼 때 그의 시의 성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1939년 9월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자화상’을 보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후략>
이 시는 동주의 고향인 명동 마을에 있는 ‘깊은 우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건청의 ‘윤동주 평전’에 언급된 김정우씨의 지적을 잠시 들어 보자.
<그의 집은 학교촌 입구의 첫 집이었다. 가랑나무가 우거진 야산 기슭에 교회당이 있고 그 교회당 옆으로 두 채의 집이 있는 앞집이다. 그의 집은 정남향 큰 기와집으로 후면과 좌우에는 그리 크지 아니한 과수원이 있고, 뒷문으로 나가면 그의 시 ‘자화상’에 영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물맛으로 유명한 수십 길도 더 되는 깊은 우물이 있다. 우리는 동주와 같이 과수원 울타리로 되어 있는 뽕나무 오디를 따먹고, 물을 길어 입을 닦기도 했으며, 그 우물 속을 들여다 보고 소리치며 우물 속에 울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
시인 윤동주는 이따금 신화의 나르키소스처럼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반성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현실 속에서 이렇게 경험한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그가 우물을 바라본 경험이 ‘체험의 선택적 형식화’를 통해 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하여 물에 빠져 죽고 말았지만, 동주는 ‘부끄럼 없기를’ 다짐했기에 ‘사나이가 가엾어지고’, ‘사나이가 미워’지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나르키소스에게서와 달리 동주에게 물(거울)은 반성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동주의 반성적 태도는 ‘십자가’에 이르면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는 성찰을 넘어 죄의식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예수처럼 속죄양이 되고자 하기도 한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려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1941. 5. 31
제목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내걸고 있는 이 시는 물론 기독교적 인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고 죄스런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일상의
3. 윤동주 시의 자기 반성적 성격
윤동주를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평문들은 전기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시는 그의 삶에 의해 설명되어지곤 했다. 그것은 그만큼 그의 시가 다른 시인의 경우에 비해 고백적이라는 것이다. 시가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띠면 띨수록 그것은 일기에 가까워지고 전기적인 해석이 그만큼 유용해질 것이다.
그의 유고시집의 서시를 보자. 이것은 그의 대표작이면서 그의 시 전체를 관류하는 고백적, 자기 성찰적인 자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하 윤동주의 시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서울:명지사,1982)에 따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1.11. 20
주지하다시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仰不愧於天)은 물론 맹자, 진심장구의 한 구절이다. 수신서의 한 구절을 시집의 서시에 인용한 것부터 그 시집에 실린 시들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말하자면 수신서의 한 구절을 도덕률로 간직한 채, 부끄럽지 않도록 주어진 길을 의연하게 가겠노라는 고백이면 다짐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들이, 그의 삶을 추스리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도록 해 준다. 일기라는 것이, 생활에서 겪은 일과 그에 대한 생각을 하루 단위로 기록한 것으로, 자신의 정신적인 고백이며, 자신과의 대화이며, 자기를 응시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해 볼 때 그의 시의 성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1939년 9월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자화상’을 보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후략>
이 시는 동주의 고향인 명동 마을에 있는 ‘깊은 우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건청의 ‘윤동주 평전’에 언급된 김정우씨의 지적을 잠시 들어 보자.
<그의 집은 학교촌 입구의 첫 집이었다. 가랑나무가 우거진 야산 기슭에 교회당이 있고 그 교회당 옆으로 두 채의 집이 있는 앞집이다. 그의 집은 정남향 큰 기와집으로 후면과 좌우에는 그리 크지 아니한 과수원이 있고, 뒷문으로 나가면 그의 시 ‘자화상’에 영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물맛으로 유명한 수십 길도 더 되는 깊은 우물이 있다. 우리는 동주와 같이 과수원 울타리로 되어 있는 뽕나무 오디를 따먹고, 물을 길어 입을 닦기도 했으며, 그 우물 속을 들여다 보고 소리치며 우물 속에 울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
시인 윤동주는 이따금 신화의 나르키소스처럼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반성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현실 속에서 이렇게 경험한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그가 우물을 바라본 경험이 ‘체험의 선택적 형식화’를 통해 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하여 물에 빠져 죽고 말았지만, 동주는 ‘부끄럼 없기를’ 다짐했기에 ‘사나이가 가엾어지고’, ‘사나이가 미워’지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나르키소스에게서와 달리 동주에게 물(거울)은 반성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동주의 반성적 태도는 ‘십자가’에 이르면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는 성찰을 넘어 죄의식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예수처럼 속죄양이 되고자 하기도 한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려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1941. 5. 31
제목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내걸고 있는 이 시는 물론 기독교적 인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고 죄스런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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