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프랑스의 지리♣
♣ 프랑스의 날씨♣
♣프랑스 사람♣
♣ 프랑스의 종교
1. 클로비스의 개종
2. 샤를마뉴의 황제대관식
3. 잔 다르크의 활약
4. 십자군원정: 백년전쟁보다 앞섬
5. 성당 및 수도원 건축
6. 아비뇽 교황청
7.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8. 대혁명과 종교
9. laïcité: 1905년 정교분리
10. 기독교의 쇠락
11. 이슬람의 약진: 제2의 종교(약 4백만)
♣ 영원한 수도-파리
♣ 프랑스 대혁명(18C)
♣ 르네상스 시대
♣ 왕권 확립기(17C)
♣ 개봉시대 (18C)
♣ 프랑스 대혁명 (18C)
♣ 프랑스의 산업혁명 (19C)
♣ 프랑스의 날씨♣
♣프랑스 사람♣
♣ 프랑스의 종교
1. 클로비스의 개종
2. 샤를마뉴의 황제대관식
3. 잔 다르크의 활약
4. 십자군원정: 백년전쟁보다 앞섬
5. 성당 및 수도원 건축
6. 아비뇽 교황청
7.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8. 대혁명과 종교
9. laïcité: 1905년 정교분리
10. 기독교의 쇠락
11. 이슬람의 약진: 제2의 종교(약 4백만)
♣ 영원한 수도-파리
♣ 프랑스 대혁명(18C)
♣ 르네상스 시대
♣ 왕권 확립기(17C)
♣ 개봉시대 (18C)
♣ 프랑스 대혁명 (18C)
♣ 프랑스의 산업혁명 (19C)
본문내용
목을 자르고, “공화정”의 시대가 시작
- 처참하고 지독했다.
- 공약위원회가 있었다: 혁명이란 명목 하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이 시기를 “공포시대“라고 함)
- 로베스필: 혁명을 위해 끝까지 주도한 사람
결국, 자신이 주장하던 혁명의 내용처럼 자기 자신도 목이 잘림
② 오늘날의 여러 가지 모습(제도, 법률)이 새로 만들어졌다.
- 프랑스 국기: 삼색기 (파랑색, 흰 색, 빨강색)
민주화를 의미함
프랑스 대혁명 전의 프랑스 국기는 흰 색이었다.
- 프랑스 정치, 사회전반의 이념이 되는 “국시”가 나왔다.
프랑스의 국시: 자유, 평등, 형제애
- 인권선언: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개인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 혁명력(달력)을 새로 만듦: 그레고리아식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달력방식인데, 이 시 기에 프랑스는 현재의 우리가 쓰는 달력과 매우 다르게 달력을 새로이 만듦
(생각의 틀까지 바꿔버린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의 수도 - 파리
- 파리의 외곽지역에도 외곽도시들이 많음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수도권을 이룸
- 파리 면적: 30 평방 키로미터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좁다.
- 도시의 기원: 파리가 아니라 르떼스. 여기에 빠리지족이 삶
그래서 오늘날의 “파리“란 이름
- 파리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음
갈로로망 시대, “리옹”이란 도시가 수도역할을 했음
중요하게 되어진 배경: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왕(496년, 5C)은 기독교로 개종
클로비스 왕이 빠리지족이 사는 파리를 프랑크왕국의 수도로 지정
- 르네상스(15~16C)시대에 파리가 본격적으로 수도로서 발전, 확대됨
- 1910(20C)에 들어와서 외곽순환도로를 만듦
(원래 성벽이 있던 자리)
2. 쎈느강과 시테섬
- 파리는 세느강을 끼고 있다.
파리는 세느강 가운데의 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세느강에 걸린 파리의 다리: 36개
- 다리의 이름이 다 있다.
- 뽕르프: 1608년에 만들어진 다리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새다리“라는 뜻
솔페니도 다리: 가장 최근에 지어진 다리로 인도인들만 다니는 다리이다.
- 대서양을 향한 출항: “Flotte mais ne coule pas\"
세느강을 따라서 대서양을 향해 떠가는 모습
- 좌안과 우안
*우안(강북): 산업적인 성격을 띈 도시
- 12C부터 중세에 유명한 장이 있었음. 공장도 많았음
여러곳에서 올라온 상품이 교환되던 곳이었고 오늘날에도 이곳엔 대형백화점 들이 많음 (중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
*좌안(강남): 학생들과 대학들이 많음, 학구적인 지역
- 소르본느 대학이 있었다.
: 소르봉이란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
: 신학 위주이고 프랑스의 보수적 학문을 지켜옴
- 35개의 다리: Pont neuf(1608) -> 솔페리노 인도교(1999)
- 시테섬: 파리의 기원지
- 주변의 가장 중요한 기관은 노트르담 대 성당
- 중세는 종교의 시대! 가르치고 배움!
- 시테섬에서 행해지는 전통신앙 말고, 전통신앙에 도전하는 신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시테섬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음.
♣ 르네상스 시대때...
- 인간 중심의 학문이 발전했고,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됨. 왕권 확립, 외국의 학자들도 몰려옴
- 프랑스와 1세: 학문 숭상, 학자들 격려
원래 요새가 있던 지역에 파리의 건물 중 하나인 루브르 궁을 짓게 함
살벌하고 군사적인 바탕에 멋진 이태리식의 궁전을 지었음
♣ 왕권 확립기(17C)
- 르네상스: 절대왕정
- 가장 대표적인 왕: 루이 14세
- 파리에서 20Km 떨어져 있는 곳에 베르사유궁전을 지음
- 베르사유가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왕이 민심을 살펴보는 데, 차질이 있었을 듯
♣ 개봉시대 (18C)
- 철학가들의 시대
- 사람들의 머리가 서서히 깨이기 시작했음
- 이 시대 백과사전 편찬: 많은 사람들을 보게 하기위한 목적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음
- 18C 파리의 살롱(교류): 귀족부인들이 살롱을 개방해서 많은 개몽 사상가를 초대함
- 살롱문화, 토론문화 형성, 수준 있는 문화였다.
♣ 프랑스 대혁명 (18C)
- 질서가 새로 잡힘
- 혁명주도 세력들이 지방 곳곳에도 알리기 위해 절대 권력을 휘두름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파리였다.)
♣ 프랑스의 산업혁명 (19C)
- “혁명의 시기“라고도 함
- 혁명이 많이 일어난 이유: 도시화로 인한 민생문제 부각
(특히 노동자들의 죽음이 사회문제로 많이 대두되었음)
- 공장을 많이 짓고 도시화와 맞물려 프랑스의 외적인 모습이 많이 열악하였다.
- 그래서 19C에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음
* 프랑스의 제1재정기: 나폴레옹의 역할
* 프랑스의 제2재정기: 1850년
-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휘둘렀는데,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 남작은 이런 루이 나폴레옹의 신임을 받았다.
- 재정비의 구체적인 배경
① 공장이 많이 세워짐: 환경오염문제 대두되었음
공기를 정화시키는게 필요했음
② 혁명이 많이 일어남: 데모를 많이 했음
: 나폴레옹 2세의 입장에서는 데모를 완벽히 억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음
③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 남작을 신임하고 능력을 인정하였음
- 그 당시에 도시환경조례가 있었음
오늘날에도, 모범이 됨
- 19C 말에 오면 만국박람회가 많이 열리는데, 그 기념으로 에펠탑을 세움(1889년)
-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식을 하던 해에 열림
- 오스만 남작: 반듯반듯 한 것을 좋아했음
3. 행정구역 - 확대와 정비
- 달팽이모양의 20개 구(區)
- Baron Haussmann의 도시정비
- 이런 순서대로 나아가게 된 이유: 파리가 점점 확대되어 나간 순서이다.
4. 거리와 기념물
- 샹젤리제: 샹젤리제 거리도 오스만 남작이 다시 만듦
- 가운데 개선문이 있고 루브르까지 이어짐
- 몽마르트르
- 개선문: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의 전성 기념물
- 에펠탑: 19C 말에 오면 만국박람회가 많이 열리는데, 그 기념으로 에펠탑을 세움(1889 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식을 하던 해에 열림
- 높이 300m
- 룩상부르봉: 파리에 녹지대를 많이 만들기 위해 공원을 조성함
- 파리의 서쪽(블로뉴 숲)과 동쪽(
- 처참하고 지독했다.
- 공약위원회가 있었다: 혁명이란 명목 하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이 시기를 “공포시대“라고 함)
- 로베스필: 혁명을 위해 끝까지 주도한 사람
결국, 자신이 주장하던 혁명의 내용처럼 자기 자신도 목이 잘림
② 오늘날의 여러 가지 모습(제도, 법률)이 새로 만들어졌다.
- 프랑스 국기: 삼색기 (파랑색, 흰 색, 빨강색)
민주화를 의미함
프랑스 대혁명 전의 프랑스 국기는 흰 색이었다.
- 프랑스 정치, 사회전반의 이념이 되는 “국시”가 나왔다.
프랑스의 국시: 자유, 평등, 형제애
- 인권선언: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개인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 혁명력(달력)을 새로 만듦: 그레고리아식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달력방식인데, 이 시 기에 프랑스는 현재의 우리가 쓰는 달력과 매우 다르게 달력을 새로이 만듦
(생각의 틀까지 바꿔버린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의 수도 - 파리
- 파리의 외곽지역에도 외곽도시들이 많음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수도권을 이룸
- 파리 면적: 30 평방 키로미터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좁다.
- 도시의 기원: 파리가 아니라 르떼스. 여기에 빠리지족이 삶
그래서 오늘날의 “파리“란 이름
- 파리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음
갈로로망 시대, “리옹”이란 도시가 수도역할을 했음
중요하게 되어진 배경: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왕(496년, 5C)은 기독교로 개종
클로비스 왕이 빠리지족이 사는 파리를 프랑크왕국의 수도로 지정
- 르네상스(15~16C)시대에 파리가 본격적으로 수도로서 발전, 확대됨
- 1910(20C)에 들어와서 외곽순환도로를 만듦
(원래 성벽이 있던 자리)
2. 쎈느강과 시테섬
- 파리는 세느강을 끼고 있다.
파리는 세느강 가운데의 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세느강에 걸린 파리의 다리: 36개
- 다리의 이름이 다 있다.
- 뽕르프: 1608년에 만들어진 다리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새다리“라는 뜻
솔페니도 다리: 가장 최근에 지어진 다리로 인도인들만 다니는 다리이다.
- 대서양을 향한 출항: “Flotte mais ne coule pas\"
세느강을 따라서 대서양을 향해 떠가는 모습
- 좌안과 우안
*우안(강북): 산업적인 성격을 띈 도시
- 12C부터 중세에 유명한 장이 있었음. 공장도 많았음
여러곳에서 올라온 상품이 교환되던 곳이었고 오늘날에도 이곳엔 대형백화점 들이 많음 (중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
*좌안(강남): 학생들과 대학들이 많음, 학구적인 지역
- 소르본느 대학이 있었다.
: 소르봉이란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
: 신학 위주이고 프랑스의 보수적 학문을 지켜옴
- 35개의 다리: Pont neuf(1608) -> 솔페리노 인도교(1999)
- 시테섬: 파리의 기원지
- 주변의 가장 중요한 기관은 노트르담 대 성당
- 중세는 종교의 시대! 가르치고 배움!
- 시테섬에서 행해지는 전통신앙 말고, 전통신앙에 도전하는 신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시테섬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음.
♣ 르네상스 시대때...
- 인간 중심의 학문이 발전했고,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됨. 왕권 확립, 외국의 학자들도 몰려옴
- 프랑스와 1세: 학문 숭상, 학자들 격려
원래 요새가 있던 지역에 파리의 건물 중 하나인 루브르 궁을 짓게 함
살벌하고 군사적인 바탕에 멋진 이태리식의 궁전을 지었음
♣ 왕권 확립기(17C)
- 르네상스: 절대왕정
- 가장 대표적인 왕: 루이 14세
- 파리에서 20Km 떨어져 있는 곳에 베르사유궁전을 지음
- 베르사유가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왕이 민심을 살펴보는 데, 차질이 있었을 듯
♣ 개봉시대 (18C)
- 철학가들의 시대
- 사람들의 머리가 서서히 깨이기 시작했음
- 이 시대 백과사전 편찬: 많은 사람들을 보게 하기위한 목적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음
- 18C 파리의 살롱(교류): 귀족부인들이 살롱을 개방해서 많은 개몽 사상가를 초대함
- 살롱문화, 토론문화 형성, 수준 있는 문화였다.
♣ 프랑스 대혁명 (18C)
- 질서가 새로 잡힘
- 혁명주도 세력들이 지방 곳곳에도 알리기 위해 절대 권력을 휘두름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파리였다.)
♣ 프랑스의 산업혁명 (19C)
- “혁명의 시기“라고도 함
- 혁명이 많이 일어난 이유: 도시화로 인한 민생문제 부각
(특히 노동자들의 죽음이 사회문제로 많이 대두되었음)
- 공장을 많이 짓고 도시화와 맞물려 프랑스의 외적인 모습이 많이 열악하였다.
- 그래서 19C에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음
* 프랑스의 제1재정기: 나폴레옹의 역할
* 프랑스의 제2재정기: 1850년
-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휘둘렀는데,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 남작은 이런 루이 나폴레옹의 신임을 받았다.
- 재정비의 구체적인 배경
① 공장이 많이 세워짐: 환경오염문제 대두되었음
공기를 정화시키는게 필요했음
② 혁명이 많이 일어남: 데모를 많이 했음
: 나폴레옹 2세의 입장에서는 데모를 완벽히 억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음
③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 남작을 신임하고 능력을 인정하였음
- 그 당시에 도시환경조례가 있었음
오늘날에도, 모범이 됨
- 19C 말에 오면 만국박람회가 많이 열리는데, 그 기념으로 에펠탑을 세움(1889년)
-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식을 하던 해에 열림
- 오스만 남작: 반듯반듯 한 것을 좋아했음
3. 행정구역 - 확대와 정비
- 달팽이모양의 20개 구(區)
- Baron Haussmann의 도시정비
- 이런 순서대로 나아가게 된 이유: 파리가 점점 확대되어 나간 순서이다.
4. 거리와 기념물
- 샹젤리제: 샹젤리제 거리도 오스만 남작이 다시 만듦
- 가운데 개선문이 있고 루브르까지 이어짐
- 몽마르트르
- 개선문: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의 전성 기념물
- 에펠탑: 19C 말에 오면 만국박람회가 많이 열리는데, 그 기념으로 에펠탑을 세움(1889 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식을 하던 해에 열림
- 높이 300m
- 룩상부르봉: 파리에 녹지대를 많이 만들기 위해 공원을 조성함
- 파리의 서쪽(블로뉴 숲)과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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