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들어가며
● 들어가서
1.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
2. 유항림- <마권>
1) 작가
2) <마권>에 나타난 모더니즘적 특징
3) <마권>의 심리탐구
3. 최명익- <비오는 길>
1) 작가
2) <비오는 길>에 나타난 모더니즘적 특징- 근대적 시․공간, 독서모티프
3) <비오는 길>의 심리탐구
4. 최명익- <심문>
심리묘사와 모더니즘적 모티브(승차 모티브)를 중심으로
● 나가며
● 들어가서
1.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
2. 유항림- <마권>
1) 작가
2) <마권>에 나타난 모더니즘적 특징
3) <마권>의 심리탐구
3. 최명익- <비오는 길>
1) 작가
2) <비오는 길>에 나타난 모더니즘적 특징- 근대적 시․공간, 독서모티프
3) <비오는 길>의 심리탐구
4. 최명익- <심문>
심리묘사와 모더니즘적 모티브(승차 모티브)를 중심으로
● 나가며
본문내용
모할 뿐 아니라, 시대나 사회적 문제를 하나하나 심도 있게 파악하므로 소설의 비중을 훨씬 무게 있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 통치기의 지식인은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의식계열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아상실의 체험계열이며 다른 하나는 무한투쟁의 체험계열이다. 이들은 문화에 대한 대응 양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다시 두 가지 양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식민통치기간에 나타난 한국 지식인의 자아상실과 무한투쟁은 한민족의 전통문화와 구미일본의 외래문화에 대한 대응양식에도 나타났다. 자아 상실은 다시 두 가지 양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양태는 전통문화를 외면하고 외래문화에 기울어지는 양태이며, 둘째 양태는 외래문화를 거부하고 전통문화에 숨어들어감으로써 현실을 외면하는 양태이다. 그리고 무한 투쟁은 식민통치에 대한 국내외의 항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양태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지식인의 의식과 사회적 기능』고려원, 1987, 62쪽
이 경우 유항림 소설에 등장하는 지식인 주인공들은 모두 식민통치기간에 자아상실형으로 드러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아상실의 지식인 양태에서도 첫째 경우에 해당되는 전통문화를 외면하고 전적으로 외래문화에만 경사되고 있는 이른바 무위자 또는 삶의 방종자 들이다.
둘째, 도시공간에서 부유하는 삶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마권>에서는 주인공 만성의 행적을 살펴보면 주로 도시의 문화공간이 비중 있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아침 또는 저녁으로서 어두운 이미지를 주는 공간과 분위기가 집중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3) <마권>의 심리탐구
<마권>에는 특별한 활동을 한 경험은 없지만 진보적 학습을 통해 현실에 대한 높은 이상을 가졌던 창세, 종서, 만성이 1930년대 후반이라는 급격히 열악해진 정세 속에서 나름대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변증법적 유물론’, ‘독서회’, ‘구속’ 같은 어휘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의지와 실천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권>에는 지식인들이 급격한 현실에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내면풍경을 전지적 작가의 눈을 통해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식인들의 세 가지 반응이 보인다. 종서와 창세, 그리고 만성이 그 모델이 되는데 이 세 명은 급격한 현실변화에 반응하는 지식인들의 유형을 대변한다. 작가 자신도 역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면서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지식인의 유형인 종서는 한때 진보적인 세계관과 젊은 열정은 가진 청년으로서 당대의 지식이었다. 물론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세 친구의 행동이나 대화, 사상 등에서 세 친구 모두가 비슷한 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종서는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자 꿈도 희망도 모두 포기하게 된다. 원래 꿈도 이상도 없었던 사람마냥 소박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제약 때문이다. 가족의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종서에게 생활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25원짜리 월급쟁이가 되고 만다. 심지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형편 때문에 당장의 선택을 강요하는 애인과의 결혼마저 미루게 된다. 소설 속 종서의 말들을 통해 더 알아보자.
“그런 말씀마시소. 결혼이 다 무어요.”
“제발 가는니 어드르니 하지 마시고 내 말 들으시소. 그건 뭘 창피스레 가시겠소. 누가 25원 짜 리 월급쟁이한테 딸 주갔댑디까.”
사실 극중 애인으로 등장하는 혜경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혜경과의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종서는 이상적인 무엇보다 당장을 살아가야 하는 생활에 억눌려있는 인물이다.
현실의 무게에 억눌린 나머지 종서는 변화된 시대에 대해 소극적으로나마 적응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그저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이라 하겠다.
창세도 역시 지식인이다. 그렇지만 그는 종서와는 달리 어떠한 상황적 제약이 있어도 꿈과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적응하는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꿈과 이상을 현실의 제약 때문에 버렸던 종서를 공공연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에는 종서를 비난하면서 또한 자기 자신도 채근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바꿀 수 없더라도 그는 현실에 적응하여 평범하게 살기보다는 나약한 자기를 감추고 스스로를 강하게 보이며 자신을 속이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한다. 종서와 논쟁을 벌이는 소설의 장면을 보자.
“사는 것은 수평적 타락이라고 하는 말이다. 기계가 돼서야 멀 하러 살겠나 말이다.”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 가운데 사람이 있지 않을까. 죽음은 인간의 문제가 이니고 인간의 끝이 아닐까.”
하고 과장의 한숨까지 짓는다.
“장 꼭또 자신도 살어 있는 한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어 있다. 죽음이란 생물할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 죽음을 사상한다는 것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사상은 어떻게 살까 하는 절박한 문제에서 도피할려는 어리석은 수단이다.
종서는 그의 생각과 생활대로 사는 것이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을 하고 창세는 한숨지으며 종서의 말에 반대한다. 장 꼭또의 말을 빌려 사상하는 것이, 어떻게 살까하는 고민이 바로 사는 것이라 말한다. 창세는 종서의 입장에 반대하며 현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자신의 사상을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종서와 창세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없다. 창세의 생활이란 무위도식하면서 주변인들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자질구레한 일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만성은 소설의 주인공 격으로서 이데올로기에 참패한 지식인이다. 현실을
식민통치기간에 나타난 한국 지식인의 자아상실과 무한투쟁은 한민족의 전통문화와 구미일본의 외래문화에 대한 대응양식에도 나타났다. 자아 상실은 다시 두 가지 양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양태는 전통문화를 외면하고 외래문화에 기울어지는 양태이며, 둘째 양태는 외래문화를 거부하고 전통문화에 숨어들어감으로써 현실을 외면하는 양태이다. 그리고 무한 투쟁은 식민통치에 대한 국내외의 항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양태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지식인의 의식과 사회적 기능』고려원, 1987, 62쪽
이 경우 유항림 소설에 등장하는 지식인 주인공들은 모두 식민통치기간에 자아상실형으로 드러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아상실의 지식인 양태에서도 첫째 경우에 해당되는 전통문화를 외면하고 전적으로 외래문화에만 경사되고 있는 이른바 무위자 또는 삶의 방종자 들이다.
둘째, 도시공간에서 부유하는 삶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마권>에서는 주인공 만성의 행적을 살펴보면 주로 도시의 문화공간이 비중 있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아침 또는 저녁으로서 어두운 이미지를 주는 공간과 분위기가 집중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3) <마권>의 심리탐구
<마권>에는 특별한 활동을 한 경험은 없지만 진보적 학습을 통해 현실에 대한 높은 이상을 가졌던 창세, 종서, 만성이 1930년대 후반이라는 급격히 열악해진 정세 속에서 나름대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변증법적 유물론’, ‘독서회’, ‘구속’ 같은 어휘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의지와 실천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권>에는 지식인들이 급격한 현실에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내면풍경을 전지적 작가의 눈을 통해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식인들의 세 가지 반응이 보인다. 종서와 창세, 그리고 만성이 그 모델이 되는데 이 세 명은 급격한 현실변화에 반응하는 지식인들의 유형을 대변한다. 작가 자신도 역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면서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지식인의 유형인 종서는 한때 진보적인 세계관과 젊은 열정은 가진 청년으로서 당대의 지식이었다. 물론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세 친구의 행동이나 대화, 사상 등에서 세 친구 모두가 비슷한 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종서는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자 꿈도 희망도 모두 포기하게 된다. 원래 꿈도 이상도 없었던 사람마냥 소박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제약 때문이다. 가족의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종서에게 생활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25원짜리 월급쟁이가 되고 만다. 심지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형편 때문에 당장의 선택을 강요하는 애인과의 결혼마저 미루게 된다. 소설 속 종서의 말들을 통해 더 알아보자.
“그런 말씀마시소. 결혼이 다 무어요.”
“제발 가는니 어드르니 하지 마시고 내 말 들으시소. 그건 뭘 창피스레 가시겠소. 누가 25원 짜 리 월급쟁이한테 딸 주갔댑디까.”
사실 극중 애인으로 등장하는 혜경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혜경과의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종서는 이상적인 무엇보다 당장을 살아가야 하는 생활에 억눌려있는 인물이다.
현실의 무게에 억눌린 나머지 종서는 변화된 시대에 대해 소극적으로나마 적응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그저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이라 하겠다.
창세도 역시 지식인이다. 그렇지만 그는 종서와는 달리 어떠한 상황적 제약이 있어도 꿈과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적응하는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꿈과 이상을 현실의 제약 때문에 버렸던 종서를 공공연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에는 종서를 비난하면서 또한 자기 자신도 채근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바꿀 수 없더라도 그는 현실에 적응하여 평범하게 살기보다는 나약한 자기를 감추고 스스로를 강하게 보이며 자신을 속이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한다. 종서와 논쟁을 벌이는 소설의 장면을 보자.
“사는 것은 수평적 타락이라고 하는 말이다. 기계가 돼서야 멀 하러 살겠나 말이다.”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 가운데 사람이 있지 않을까. 죽음은 인간의 문제가 이니고 인간의 끝이 아닐까.”
하고 과장의 한숨까지 짓는다.
“장 꼭또 자신도 살어 있는 한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어 있다. 죽음이란 생물할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 죽음을 사상한다는 것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사상은 어떻게 살까 하는 절박한 문제에서 도피할려는 어리석은 수단이다.
종서는 그의 생각과 생활대로 사는 것이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을 하고 창세는 한숨지으며 종서의 말에 반대한다. 장 꼭또의 말을 빌려 사상하는 것이, 어떻게 살까하는 고민이 바로 사는 것이라 말한다. 창세는 종서의 입장에 반대하며 현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자신의 사상을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종서와 창세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없다. 창세의 생활이란 무위도식하면서 주변인들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자질구레한 일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만성은 소설의 주인공 격으로서 이데올로기에 참패한 지식인이다.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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