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1)이광수
(2)줄거리
(3)핵심정리
(4)등장인물의 성격
(5)작품의 구성
2.본론
(1)<장편소설>무정
(2)작품해설
(3)연구사적 검토
(4)무정의 구성
(5)무정의 미적작품구조
(6)무정에 나타난 계몽성
(7)무정의 문학사적 의의
(8)무정의 소설사적 의의
3.결론
(1)이광수
(2)줄거리
(3)핵심정리
(4)등장인물의 성격
(5)작품의 구성
2.본론
(1)<장편소설>무정
(2)작품해설
(3)연구사적 검토
(4)무정의 구성
(5)무정의 미적작품구조
(6)무정에 나타난 계몽성
(7)무정의 문학사적 의의
(8)무정의 소설사적 의의
3.결론
본문내용
른바 순결성정결성의 정체이다. 그것은 작가 춘원의 소년적 혹은 청년적 순진성이자 배움의 길에 있는 일반 독자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형식은 학문에, 명예에, 성공에, 교사노릇에 열중하여 자주 순진성을 잃었다가 영채로 말미암아 그 순진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누이 콤플렉스는 평양에서 계향을 만났을 때에 더욱 고조된다. 계향을 만나고, 은인인 박진사의 무덤을 보는 일을 통해 이형식의 마음은 순진성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 순진성을 회복하자, 그의 마음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이형식의 생명감이자 작품 무정의 생명감이기도 하다.
또한 평양서 돌아오는 밤차 속에서 전개된 우주관은 기독교적 사상을 포기함으로써 획득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청교도주의 혹은 정결사상을 포기함으로써 쟁취된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누이 콤플렉스라는 정결성에의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그것을 초극하여 자기 나름의 청정한 우주관을 만들어 내는데서 솟아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은 둘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 바로 생명력, 생명의 감각 그것이었다.
무정을 무정이게끔 하는 네 번째 구조층은 한이라 규정된다. 그것은 이 소설의 비중이 영채에 크게 놓여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무정의 애당초 구성은 영채와 형식만을 주축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정전편을 통해 가장 기괴하고, 불쾌하고 또 우습고 참기 어려운 대목은 영채가 두 사람의 사나이에 의해 강간당하는 대목이다. 아들인 김현수와 파렴치한 교육자 배학감에 의해 강간당하게 하는 일은 사무치는 한이 아니면 안 된다. 작가는 청량사의 겁탈장면을 여러 모양으로 되풀이 상기시켜 놓았다. 이 사무치는 한은 다음 두 가지 사실로 더욱 고조된다. 배학감이나 김현수는 양심상 조금도 잘못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형식의 무력함이다. 당장 나가서 “두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뼈를 갈아마시고 싶었다”고 이형식은 생각했지만, 기껏해야 이형식이 할 수 있는 것은, 배학감을 향해서는 “여보, 배형. 이게 무슨 짓이요, 교육가로 강간이란 말이 웬말이요” 하며, 김현수를 향해서는 “여보, 당신은 귀족이요! 귀족이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는 아니지요.”
여기서 우리는 구시대의 가치관과 새시대의 가치관의 보이지 않는 대립과 그 대립의 자기모순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배학감과 김현수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가치관은 물을 것도 없이 훼손된 가치관이며, 한편 박진사로 대표되는 훼손되지 않은 가치의 세계는 영채의 겁탈모양 새 시대의 가치관에 의해 능욕된다. 기독교를 맹렬히 공격한 춘원이지만, 근대자본주의 문명을 일으킨 개신교의 청교도주의적 졍결성의 영향을 형식으로 하여금, 영채의 찢어진 치마와 피묻은 내의를 견디지 못하게 하였고, 박진사의 무덤의 흙과, 대동강에 시체가 되어 떠내려가는 영채의 시체의 이미지에 가슴을 쥐어뜯게 했다. 그것은 구세대의 깊은 원한이자 망국 백성의 원한 그것이기도 했다.
(8)『무정』의 소설사적 의의
이광수의 무정은 한국 근대 소설사를 완결짓는 작품이면서 또한 새로운 소설사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한국 근대 소설사가 작가의 정론적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논설과 그 의지의 효과적 형상화를 위한 서사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고 불 때 무정은 작가의 논설적 의지와 허구적 서사가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무정은 계몽성을 특질로 하는 한국 근대 소설사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정은 주권을 잃은 식민지 시대에 성장한 작품으로서의 부정적 면모 역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족주의에 대한 그릇된 표현이 그 예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근대적 계몽소설이 가는 길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정은 근대 소설사를 완결짓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 소설사를 완성해 보여주는 소설은 아니다. 완성된 근대 소설이란 식민지 시대라는 비정상적인 시대에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진정한 근대 문학이란 건강한 근대적 계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께 담아내는 문학이었다. 진정한 근대적 민족 문학의 성장을 위해서는 건강한 근대적 계몽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민족적 매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1910년 말 당시 우리에게는 그런 매체의 존립이 불가능했다. 매체의 존속은 그것이 존속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여건의 총체적 결과이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적 여건은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정 이후 등장한 계몽소설들은 그 어느 것도 무정이 거둔 성과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즉 시대정신의 핵심을 반영하며 민족이 나아갈 길을 올바로 보여주는 건강한 근대적 계몽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광수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식민지 시대라는 비정상적인시대가 둘러쳐놓은 장벽에서 오는 한계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탁월한 작가가 나온다 하더라도 무정 이상의 진정한 근대성을 드러내는 계몽소설을 쓸 수는 없었다.
계몽 문학의 길이 막힌 곳에서, 계몽보다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에 중심을 두는 새로운 문학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무정 이후 우리 문단은 김동인이나 염상섭, 현진건 등의 새로운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소설사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논설을 통한 계몽의 의지와 허구적 서사 양식의 결합이라는 모습으로 출발했던 한국 근대 소설사는 이렇게 이광수의 무정에 와서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무정이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무정이 생명적 진취도의 계층이 상승계층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것은 시류적인 표층적 구조라 하며, 역사적 요구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정은 상층적 계층의 가능한 문학적 장치중의 하나인 사제관계를 견고히 함으로서 오해나 갈등도 초극시켰다.
셋째는 누이 콤플렉스가 주는 순진성, 순결성, 신생성 등을 회복하여 자기 나름의 청정한 우주관을 창조하였다.
마지막으로 훼손된 시대이지만 정신적인 순결함인 정조가 능욕을 당한데 대한 비애나 원한을 개별적인 것에서 망국적으로 비화시켰다.
이형식은 학문에, 명예에, 성공에, 교사노릇에 열중하여 자주 순진성을 잃었다가 영채로 말미암아 그 순진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누이 콤플렉스는 평양에서 계향을 만났을 때에 더욱 고조된다. 계향을 만나고, 은인인 박진사의 무덤을 보는 일을 통해 이형식의 마음은 순진성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 순진성을 회복하자, 그의 마음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이형식의 생명감이자 작품 무정의 생명감이기도 하다.
또한 평양서 돌아오는 밤차 속에서 전개된 우주관은 기독교적 사상을 포기함으로써 획득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청교도주의 혹은 정결사상을 포기함으로써 쟁취된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누이 콤플렉스라는 정결성에의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그것을 초극하여 자기 나름의 청정한 우주관을 만들어 내는데서 솟아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은 둘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 바로 생명력, 생명의 감각 그것이었다.
무정을 무정이게끔 하는 네 번째 구조층은 한이라 규정된다. 그것은 이 소설의 비중이 영채에 크게 놓여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무정의 애당초 구성은 영채와 형식만을 주축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정전편을 통해 가장 기괴하고, 불쾌하고 또 우습고 참기 어려운 대목은 영채가 두 사람의 사나이에 의해 강간당하는 대목이다. 아들인 김현수와 파렴치한 교육자 배학감에 의해 강간당하게 하는 일은 사무치는 한이 아니면 안 된다. 작가는 청량사의 겁탈장면을 여러 모양으로 되풀이 상기시켜 놓았다. 이 사무치는 한은 다음 두 가지 사실로 더욱 고조된다. 배학감이나 김현수는 양심상 조금도 잘못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형식의 무력함이다. 당장 나가서 “두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뼈를 갈아마시고 싶었다”고 이형식은 생각했지만, 기껏해야 이형식이 할 수 있는 것은, 배학감을 향해서는 “여보, 배형. 이게 무슨 짓이요, 교육가로 강간이란 말이 웬말이요” 하며, 김현수를 향해서는 “여보, 당신은 귀족이요! 귀족이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는 아니지요.”
여기서 우리는 구시대의 가치관과 새시대의 가치관의 보이지 않는 대립과 그 대립의 자기모순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배학감과 김현수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가치관은 물을 것도 없이 훼손된 가치관이며, 한편 박진사로 대표되는 훼손되지 않은 가치의 세계는 영채의 겁탈모양 새 시대의 가치관에 의해 능욕된다. 기독교를 맹렬히 공격한 춘원이지만, 근대자본주의 문명을 일으킨 개신교의 청교도주의적 졍결성의 영향을 형식으로 하여금, 영채의 찢어진 치마와 피묻은 내의를 견디지 못하게 하였고, 박진사의 무덤의 흙과, 대동강에 시체가 되어 떠내려가는 영채의 시체의 이미지에 가슴을 쥐어뜯게 했다. 그것은 구세대의 깊은 원한이자 망국 백성의 원한 그것이기도 했다.
(8)『무정』의 소설사적 의의
이광수의 무정은 한국 근대 소설사를 완결짓는 작품이면서 또한 새로운 소설사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한국 근대 소설사가 작가의 정론적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논설과 그 의지의 효과적 형상화를 위한 서사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고 불 때 무정은 작가의 논설적 의지와 허구적 서사가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무정은 계몽성을 특질로 하는 한국 근대 소설사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정은 주권을 잃은 식민지 시대에 성장한 작품으로서의 부정적 면모 역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족주의에 대한 그릇된 표현이 그 예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근대적 계몽소설이 가는 길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정은 근대 소설사를 완결짓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 소설사를 완성해 보여주는 소설은 아니다. 완성된 근대 소설이란 식민지 시대라는 비정상적인 시대에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진정한 근대 문학이란 건강한 근대적 계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께 담아내는 문학이었다. 진정한 근대적 민족 문학의 성장을 위해서는 건강한 근대적 계몽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민족적 매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1910년 말 당시 우리에게는 그런 매체의 존립이 불가능했다. 매체의 존속은 그것이 존속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여건의 총체적 결과이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적 여건은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정 이후 등장한 계몽소설들은 그 어느 것도 무정이 거둔 성과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즉 시대정신의 핵심을 반영하며 민족이 나아갈 길을 올바로 보여주는 건강한 근대적 계몽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광수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식민지 시대라는 비정상적인시대가 둘러쳐놓은 장벽에서 오는 한계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탁월한 작가가 나온다 하더라도 무정 이상의 진정한 근대성을 드러내는 계몽소설을 쓸 수는 없었다.
계몽 문학의 길이 막힌 곳에서, 계몽보다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에 중심을 두는 새로운 문학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무정 이후 우리 문단은 김동인이나 염상섭, 현진건 등의 새로운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소설사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논설을 통한 계몽의 의지와 허구적 서사 양식의 결합이라는 모습으로 출발했던 한국 근대 소설사는 이렇게 이광수의 무정에 와서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무정이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무정이 생명적 진취도의 계층이 상승계층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것은 시류적인 표층적 구조라 하며, 역사적 요구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정은 상층적 계층의 가능한 문학적 장치중의 하나인 사제관계를 견고히 함으로서 오해나 갈등도 초극시켰다.
셋째는 누이 콤플렉스가 주는 순진성, 순결성, 신생성 등을 회복하여 자기 나름의 청정한 우주관을 창조하였다.
마지막으로 훼손된 시대이지만 정신적인 순결함인 정조가 능욕을 당한데 대한 비애나 원한을 개별적인 것에서 망국적으로 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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