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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데뷔한 작품이다.
전창근 감독은 항일투쟁의 영웅이자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의 전기영화로 옮긴 <아 백범 김구 선생>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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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961년
4.19 혁명으로 뜻밖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정국 수습에 무능력했다. 5월 16일 육사 8기생이 주도하는 혁명군이 수도 서울을 장악하고 5.16군사 쿠데타에 성공한다. 리더는 육군소장 박정희였다. 4.19 혁명의 봄은 너무나 짧았다. 5.16 군사 쿠데타로 영화사 사장 이화룡이 4.19 혁명으로 사형된 임화수에 이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영화사의 사장이었던 이화룡은 완력이 뛰어나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났지만, 1960년에 <박서방>(강대진 감독),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2월에는 또 하나의 수작 <마부(馬夫)>를 제작하는 등 영화제작자로 전향한 사람이었다.
문교부에서는 출판물을 통제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이 해에 KBS 국영 TV가 개국했다.
<오발탄>(1961년)
감독: 유현목
출연: 최무룡, 김진규, 문정숙, 서애자
한편 4.19 혁명 이후 영륜에서 통과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재검열을 이유로 상영이 중지된다. 민간기구 영륜 역시 해체되고 다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1961년에 영화 79편이 제작되었다. 영화바람은 꺼지지 않고 게속 불어닥쳤다. 신상옥 감독은 궁정 사극 <연산군>을 연출했다. 비교적 스케일이 큰 사극이었다. 1958년부터 사극, 시대극 영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많은 제작비가 소요되는 장르지만, 역사물에에 대한 관객의 욕구도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1961년에 들어서면서 영화계의 화제는 단연 \'춘향\'이었다. 한국영화사의 고비마다 나타나는 춘향이가 또 나나타난 것이다.
홍성기 감독은 아내인, 톱스타 김지미를 춘향으로 하여 총천연색 영화 <춘향전>을 만들고, 한편 그의 라이벌인 신상옥 감독 역시 아내인, 톱스타 최은희를 춘향으로 내세운 컬러판 <성춘향>을 만들어 흥행의 최고 길이라는 설날을 전후하여 대결하게 된다. 흥행 결과는 산상옥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신상옥은 1960년대의 영화계 패권을 잡게 된다. 또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또 하나의 작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감독)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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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2월에 신인 임권택 감독이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계에 등장했다. 한중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을 무대로 항일 레지스탕스들의 액션물이었다. 유현목 감독은 6.25 전쟁중 임시 수도에서 연상의 여인과 20대 청년사이에 벌어지느 멜로 드라마인 <아낌없이 주련다>를 연출했다. 한편 당시 영화사의 재벌로 꼽힌 한양영화사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권영순 감독)을 만들었다.
미국에서 영화수업을 마친 정일몽 감독이 6.25 전쟁을 배경으로 <빼앗긴 일요일>을 연출했다. 신상옥 감독은 <열녀문>을 리메이크하였다. 이규환 감독이 1932년 만든 명작 <임자 없는 나룻배>가 리메이크 되었다. 감독은 엄심호. 그러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소시민 가정을 무대로 한 코미디, 홈 드라마들이 부쩍 눈에 띄는 한해였다.
<아낌없이 주련다>(1960년)
감독: 유현목
출연: 이민자, 신성일, 허장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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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작 편수는 148편으로 늘어났으며, 멜로 드라마가 81편으로 여전히 강세였다. 2월에 개봉된 박상호 감독의 <또순이>가 대히트하면서 \'또순이\'라는 이름이 사회에 널리 유행하였다. 근거절약, 억척스런 또순이라는 여인의 인간승리를 엮은 드라마이다. 또순이는 그후에 우리 사회에 하나의 모법적인 인간상이 되어,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여이늘 일컫는 말로 \'또순이\'라는 별명이 유행하게 되었다.
김기영 감독이 <고려장>을 발표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화전 마을 사람들의 \'고려장\'을 영화한 한것이다. 김기영 특유의 그로케스크한 묘사들이 인상 깊었던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일본에서도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제목으로 두 번이나 영화화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결국 노모를 버리는 거스로 끝나지만, <고려장>에서는 부모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유현목도 <김약국집 딸들>이라는 영화를 발표했다. 박경리 원작으로, 음영이 짙은 톤으로 한 가조의 성격과 심리묘사 돋보인 문예영화로 국내 영화상을 휩쓸었던 유현목 감독의 가작이다.
김수용이 <청춘교실>을 연출했다. 발랄한 하이틴들의 낭만과 방황을 그린 작품으로, 한참 물이 오른 신성일, 엄앵란 커플이 젊은 세대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형표의 <말띠 여대생>도 청춘물의 유행을 재촉한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영화계에 청춘물이 쏟아지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3, 40대 여성관객들이 주류를 이루던 관객 구성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관객의 연령층이 내려간 것이다.
김수용이 이어서 김영수 원작 <혈맥(血脈)>을 발표하여 왕성한 의욕을 과시했다. 북에서 내려온 한 가족을 중심으로, 세대차로 인해 늘어나는 갈등 등 서민생활의 애환을 엮은 격조 높은 홈 드라마였다.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했고, 아시아영화제에도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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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국일보사가 또 하나의 영화상 제정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한국연극영화예술상\'으로, 후에 \'백상예술대상\'이라고 이름을 고쳐 현재까지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존속하고 있다.
1964년 제작된 영화는 모두 137편이다.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본영화를 완전 표절한 작품이었다. 신상옥 감독은 전투 차일럿들의 활약을 그린 <빨간 마후라>를 발표한다.
전창근 감독은 항일투쟁의 영웅이자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의 전기영화로 옮긴 <아 백범 김구 선생>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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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961년
4.19 혁명으로 뜻밖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정국 수습에 무능력했다. 5월 16일 육사 8기생이 주도하는 혁명군이 수도 서울을 장악하고 5.16군사 쿠데타에 성공한다. 리더는 육군소장 박정희였다. 4.19 혁명의 봄은 너무나 짧았다. 5.16 군사 쿠데타로 영화사 사장 이화룡이 4.19 혁명으로 사형된 임화수에 이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영화사의 사장이었던 이화룡은 완력이 뛰어나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났지만, 1960년에 <박서방>(강대진 감독),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2월에는 또 하나의 수작 <마부(馬夫)>를 제작하는 등 영화제작자로 전향한 사람이었다.
문교부에서는 출판물을 통제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이 해에 KBS 국영 TV가 개국했다.
<오발탄>(1961년)
감독: 유현목
출연: 최무룡, 김진규, 문정숙, 서애자
한편 4.19 혁명 이후 영륜에서 통과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재검열을 이유로 상영이 중지된다. 민간기구 영륜 역시 해체되고 다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1961년에 영화 79편이 제작되었다. 영화바람은 꺼지지 않고 게속 불어닥쳤다. 신상옥 감독은 궁정 사극 <연산군>을 연출했다. 비교적 스케일이 큰 사극이었다. 1958년부터 사극, 시대극 영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많은 제작비가 소요되는 장르지만, 역사물에에 대한 관객의 욕구도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1961년에 들어서면서 영화계의 화제는 단연 \'춘향\'이었다. 한국영화사의 고비마다 나타나는 춘향이가 또 나나타난 것이다.
홍성기 감독은 아내인, 톱스타 김지미를 춘향으로 하여 총천연색 영화 <춘향전>을 만들고, 한편 그의 라이벌인 신상옥 감독 역시 아내인, 톱스타 최은희를 춘향으로 내세운 컬러판 <성춘향>을 만들어 흥행의 최고 길이라는 설날을 전후하여 대결하게 된다. 흥행 결과는 산상옥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신상옥은 1960년대의 영화계 패권을 잡게 된다. 또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또 하나의 작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감독)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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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2월에 신인 임권택 감독이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계에 등장했다. 한중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을 무대로 항일 레지스탕스들의 액션물이었다. 유현목 감독은 6.25 전쟁중 임시 수도에서 연상의 여인과 20대 청년사이에 벌어지느 멜로 드라마인 <아낌없이 주련다>를 연출했다. 한편 당시 영화사의 재벌로 꼽힌 한양영화사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권영순 감독)을 만들었다.
미국에서 영화수업을 마친 정일몽 감독이 6.25 전쟁을 배경으로 <빼앗긴 일요일>을 연출했다. 신상옥 감독은 <열녀문>을 리메이크하였다. 이규환 감독이 1932년 만든 명작 <임자 없는 나룻배>가 리메이크 되었다. 감독은 엄심호. 그러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소시민 가정을 무대로 한 코미디, 홈 드라마들이 부쩍 눈에 띄는 한해였다.
<아낌없이 주련다>(1960년)
감독: 유현목
출연: 이민자, 신성일, 허장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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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작 편수는 148편으로 늘어났으며, 멜로 드라마가 81편으로 여전히 강세였다. 2월에 개봉된 박상호 감독의 <또순이>가 대히트하면서 \'또순이\'라는 이름이 사회에 널리 유행하였다. 근거절약, 억척스런 또순이라는 여인의 인간승리를 엮은 드라마이다. 또순이는 그후에 우리 사회에 하나의 모법적인 인간상이 되어,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여이늘 일컫는 말로 \'또순이\'라는 별명이 유행하게 되었다.
김기영 감독이 <고려장>을 발표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화전 마을 사람들의 \'고려장\'을 영화한 한것이다. 김기영 특유의 그로케스크한 묘사들이 인상 깊었던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일본에서도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제목으로 두 번이나 영화화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결국 노모를 버리는 거스로 끝나지만, <고려장>에서는 부모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유현목도 <김약국집 딸들>이라는 영화를 발표했다. 박경리 원작으로, 음영이 짙은 톤으로 한 가조의 성격과 심리묘사 돋보인 문예영화로 국내 영화상을 휩쓸었던 유현목 감독의 가작이다.
김수용이 <청춘교실>을 연출했다. 발랄한 하이틴들의 낭만과 방황을 그린 작품으로, 한참 물이 오른 신성일, 엄앵란 커플이 젊은 세대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형표의 <말띠 여대생>도 청춘물의 유행을 재촉한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영화계에 청춘물이 쏟아지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3, 40대 여성관객들이 주류를 이루던 관객 구성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관객의 연령층이 내려간 것이다.
김수용이 이어서 김영수 원작 <혈맥(血脈)>을 발표하여 왕성한 의욕을 과시했다. 북에서 내려온 한 가족을 중심으로, 세대차로 인해 늘어나는 갈등 등 서민생활의 애환을 엮은 격조 높은 홈 드라마였다.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했고, 아시아영화제에도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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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국일보사가 또 하나의 영화상 제정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한국연극영화예술상\'으로, 후에 \'백상예술대상\'이라고 이름을 고쳐 현재까지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존속하고 있다.
1964년 제작된 영화는 모두 137편이다.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본영화를 완전 표절한 작품이었다. 신상옥 감독은 전투 차일럿들의 활약을 그린 <빨간 마후라>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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