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개념
2. 주요 용어 해설
(1) 제국주의(帝國主義)
(2) 신식민시대(新植民時代)
(3) 탈식민주의에서의 ‘장소’
(4) 양가성과 모방 그리고 혼성성
(5)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6) 헤게모니(hegemony)
3. 주요 이론가
(1) 식민지 주체형성과 담론과정
1) 프란츠 파농(Fanon, Frantz Omar) 2)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Said)
(2) 하위계층 연구와 모방의 양면성
1)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2) 호미 바바(Homi K.Bhabha)
4. 대표작품 이해
(1) 국외 작품
1) 『아프리카인』 - J.M.G. 르 클레지오
2)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 - 응구기 & 시옹오
3) 『탈식민주의 이론』 - 피터 차일즈 & 패트릭 윌리엄스
4) 『제3세계 문학과 식민주의 비평』 - 치누아 아체베
(2) 국내 작품
- 김수영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거대한 뿌리」
Ⅲ. 결론
※ 참고 문헌
Ⅱ. 본론
1.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개념
2. 주요 용어 해설
(1) 제국주의(帝國主義)
(2) 신식민시대(新植民時代)
(3) 탈식민주의에서의 ‘장소’
(4) 양가성과 모방 그리고 혼성성
(5)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6) 헤게모니(hegemony)
3. 주요 이론가
(1) 식민지 주체형성과 담론과정
1) 프란츠 파농(Fanon, Frantz Omar) 2)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Said)
(2) 하위계층 연구와 모방의 양면성
1)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2) 호미 바바(Homi K.Bhabha)
4. 대표작품 이해
(1) 국외 작품
1) 『아프리카인』 - J.M.G. 르 클레지오
2)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 - 응구기 & 시옹오
3) 『탈식민주의 이론』 - 피터 차일즈 & 패트릭 윌리엄스
4) 『제3세계 문학과 식민주의 비평』 - 치누아 아체베
(2) 국내 작품
- 김수영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거대한 뿌리」
Ⅲ. 결론
※ 참고 문헌
본문내용
너는 내 뒤를 따라와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다
한데다 묶어놔라
야 이놈들아 고갤 숙여
너희놈 손에 돌아가신 우리 형님들
무덤 앞에 절을 구천구백삼십오만번만 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두목 ! 나머지 놈들 다 잡아왔읍니다
아 홍찐구놈도 섞여 있구나
너 이놈 정동 재판소에서 언제 달아나왔느냐 갓땜!
오냐 그놈들을 물에다 거꾸로 박아 놓아라
쨈보야 너는 이성망이 놈을 빨리 잡아오너라
여기 떡갈나무 잎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와이 영사한테 보여라
그리고 돌아올 때는 구름을 타고 오너라
내가 구름운전수 재퍼슨 선생에게 말해놨으니까 시간은
이분밖에 안 걸릴 거다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지
이놈들 여기 개미구멍으로 다 들어가
이 구멍으로 들어가면 아리조나에 있는
우리 고조할아버지 산소 망두석 밑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
째보야 태평양 밑의 개미 길에
미국사람들이 세워놓은 자동차란 자동차는
싹 없애버려라
저놈들이 타고 가면 안된다
야 빨리 들어가 하바 ! 하바 !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아리조나 카보이야 <1960. 7. 15>
4.19 혁명은 시인에게 참으로 거대한 이상주의적 저항 에너지의 분출이요, 아름다운 자생적 생명의 솟구침이었다. 4.19 혁명은 시인에게 인식의 결정적 전환을 마련해 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배적 언술에 맞선 탈식민주의 반언술의 논리와 전략을 통한 시 작업이었다.
이 시는 자신을 자기중심적 주체인 아리조나 카우보이에 동일시하여 비수의 칼날을 부메랑처럼 되돌려 꽂아 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서 김수영은 두 종류의 적을 지적하고 있는데, 하나는 카우보이에 대응되는 미국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이성만’과 그 부하들로 분류되는 한국의 독재세력이다. 그런데 ‘나’는 카우보이이다. 이러한 이중의 대립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적으로 규정되는 대상이 이 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분류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암시이다.
이 시를 표면적인 내용만을 삼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성망’으로 분류되는 적들은 3연에서 ‘하와이 영사’와 ‘구름운전수 제퍼슨 선생’의 도움을 받아 일망타진하였다. 그런데 자신은 미국적 경찰 격인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되어 ‘이성망’을 비롯한 독재세력의 중심과 그 잔당을 잡은 뒤에 4연에서 개미구멍으로 나오는 ‘하와이 영사’나 ‘구른 운전수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이겠다는 설정을 한다. ‘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로의 잠깐 동안 타협은 더 거대한 독재 권력인 미국적 지배를 없애버리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 즉, 기존 언술의 방식을 그대로 이용하지만 전례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뒤틀린 챌 되돌려주는 탈식민적 알레고리이며, 하부구조의 ‘발산적 형상’ 인 것이다. 지배의 중심이었던 두 세력, 이성망과 아리조나 카우보이(미국문화의 저급성)는 일시에 침몰한다. 그럼으로써 지배적 힘을 지닌 문화적 상징인 카우보이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지배적인 두 부류의 주인들을 해체하는 것이다.
2) 탈중심화된 저항주체의 확립 - 혁명의 탈신비화와 소시민적 주체
김수영은 4.19 혁명의 환희가 서서히 가라앉고 환멸이 넓어지면서 무능력한 민주당과도 정부와 군사정권과 신식민주의적 질서 안에서 또다시 주변인으로, 소시민으로 약화 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소하고 소외된, 억압된, 현실적 힘 앞에서 무능력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소시민적’주체로 변해가는 것이다.
◆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은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젼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 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힌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역사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부리에 비하면.. <1964. 2. 3.>
김수영은 위의 시를 통해서 소시민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다른 사람의 타자로서, 억압된 피식민적 소외자로서의 소시민적 주체를 담대하게 전복시킨다. 그 전복 속에는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다
한데다 묶어놔라
야 이놈들아 고갤 숙여
너희놈 손에 돌아가신 우리 형님들
무덤 앞에 절을 구천구백삼십오만번만 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두목 ! 나머지 놈들 다 잡아왔읍니다
아 홍찐구놈도 섞여 있구나
너 이놈 정동 재판소에서 언제 달아나왔느냐 갓땜!
오냐 그놈들을 물에다 거꾸로 박아 놓아라
쨈보야 너는 이성망이 놈을 빨리 잡아오너라
여기 떡갈나무 잎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와이 영사한테 보여라
그리고 돌아올 때는 구름을 타고 오너라
내가 구름운전수 재퍼슨 선생에게 말해놨으니까 시간은
이분밖에 안 걸릴 거다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지
이놈들 여기 개미구멍으로 다 들어가
이 구멍으로 들어가면 아리조나에 있는
우리 고조할아버지 산소 망두석 밑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
째보야 태평양 밑의 개미 길에
미국사람들이 세워놓은 자동차란 자동차는
싹 없애버려라
저놈들이 타고 가면 안된다
야 빨리 들어가 하바 ! 하바 !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아리조나 카보이야 <1960. 7. 15>
4.19 혁명은 시인에게 참으로 거대한 이상주의적 저항 에너지의 분출이요, 아름다운 자생적 생명의 솟구침이었다. 4.19 혁명은 시인에게 인식의 결정적 전환을 마련해 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배적 언술에 맞선 탈식민주의 반언술의 논리와 전략을 통한 시 작업이었다.
이 시는 자신을 자기중심적 주체인 아리조나 카우보이에 동일시하여 비수의 칼날을 부메랑처럼 되돌려 꽂아 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서 김수영은 두 종류의 적을 지적하고 있는데, 하나는 카우보이에 대응되는 미국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이성만’과 그 부하들로 분류되는 한국의 독재세력이다. 그런데 ‘나’는 카우보이이다. 이러한 이중의 대립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적으로 규정되는 대상이 이 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분류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암시이다.
이 시를 표면적인 내용만을 삼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성망’으로 분류되는 적들은 3연에서 ‘하와이 영사’와 ‘구름운전수 제퍼슨 선생’의 도움을 받아 일망타진하였다. 그런데 자신은 미국적 경찰 격인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되어 ‘이성망’을 비롯한 독재세력의 중심과 그 잔당을 잡은 뒤에 4연에서 개미구멍으로 나오는 ‘하와이 영사’나 ‘구른 운전수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이겠다는 설정을 한다. ‘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로의 잠깐 동안 타협은 더 거대한 독재 권력인 미국적 지배를 없애버리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 즉, 기존 언술의 방식을 그대로 이용하지만 전례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뒤틀린 챌 되돌려주는 탈식민적 알레고리이며, 하부구조의 ‘발산적 형상’ 인 것이다. 지배의 중심이었던 두 세력, 이성망과 아리조나 카우보이(미국문화의 저급성)는 일시에 침몰한다. 그럼으로써 지배적 힘을 지닌 문화적 상징인 카우보이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지배적인 두 부류의 주인들을 해체하는 것이다.
2) 탈중심화된 저항주체의 확립 - 혁명의 탈신비화와 소시민적 주체
김수영은 4.19 혁명의 환희가 서서히 가라앉고 환멸이 넓어지면서 무능력한 민주당과도 정부와 군사정권과 신식민주의적 질서 안에서 또다시 주변인으로, 소시민으로 약화 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소하고 소외된, 억압된, 현실적 힘 앞에서 무능력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소시민적’주체로 변해가는 것이다.
◆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은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젼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 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힌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역사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부리에 비하면.. <1964. 2. 3.>
김수영은 위의 시를 통해서 소시민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다른 사람의 타자로서, 억압된 피식민적 소외자로서의 소시민적 주체를 담대하게 전복시킨다. 그 전복 속에는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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