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요약] 구도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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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책요약] 구도자의 나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였다. 아울러 중국인은 시간과 공간을 유한한 것으로 보며 몇 세대, 무슨 왕조와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 등으로 시간을 파악했지만 인도인은 그와 달리 시공을 무한한 것으로 상상하며 때로는 수십억년에 이르는 우주적인 영겁의 단위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 이 무렵 전래된 불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그 양태가 달랐다. 예컨대 중국인들은 부처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절대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다. 사실 불교는 불법의 근본 정신을 깨닫고 전파하는데 도움만 된다면 이를 위한 방편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종교였다. 불교의 이러한 관대한 문화는 여러 지방의 토착신들을 불교와 보호자로 받아들이거나 불법의 가르침을 위한 여러 신으로 새롭게 해석해 내곤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종교의 전파에 있어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효과를 주었던 것은 주술적인 효과나 초자연적인 기적이었다.
- 불교 전파 초기에 부처는 여러 다양한 신과 주술적인 문화를 간직한 중국의 도교사원의 한 신으로 종종 알려졌다.
- 평등설은 대중의 호응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현재의 고통은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이므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내생에 원하는 삶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면 된다는 희망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8. 생사를 넘나드는 천 년의 유학길
- 많은 군주들은 불교에 있는 전륜성왕이란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세상의 선을 옹호하는 자로서의 위광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 불교는 특정 인간 집단 속에서만 향유될 수 있는 종교로 출발하지 않았고 특정 지역에만 적용될 수 있는 폐쇄적인 규범들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이는 다양한 사상과 문화로 나누어져 있는 기존 세력을 통합하여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이념으로 채택하기에 매우 유리한 점이었다.
- 불교의 명상적이고 폭력을 싫어하는 특성은 권력에 대한 물리적인 반항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군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 중국문화와 타협, 절충의 길을 걷게 되며 중국화된 불교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아울러 세속적인 권력을 뛰어넘어 삶의 무한한 자유와 가치를 추구해 왔던 불교 교단은 중국적인 군주관을 수용하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권력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게 되거나 군주의 보호막 안에 안주하는 흐름을 낳기도 하였다.
- 중국에 맞는 불경의 편찬이었다. 불교와 유교의 대립 속에서 불필요한 마찰이나 오해를 줄이기 위해 중국의 실정에 맞는 불경의 편찬은 긴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 특히 도교의 용어는 불교를 번역하는 데 제한적이나마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가령 ‘가르침’을 뜻하는 다르마는 도로 번역되었고 ‘완전히 깨우친 자’를 뜻하는 아라트(아라한)는 도교에서 신선을 뜻하는 진인으로 번역되었다.
- 초기에는 편찬된 중국 불경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서민들을 교화하기 위해 저술된 경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도교적인 요소를 가미한 불경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유교의 효사상을 나름대로 흡수한 『부모은중경』등 중국의 사상이나 문화와 융합할 수 있는 수많은 경전이 제작되었다.
- 당시 중국 불교의 종파는 중국인의 현실 중시 경향에 따라 매우 체계적인 논리를 만들어 이후 동아시아 불교를 주도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불교가 당나라 때 이룩한 불교의 업적을 아직도 뛰어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 『금강경』『능가경』『유마경』등 인도에서 편찬된 불경들이 초기 선종의 발전을 주도했지만 이후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원각경』『능엄경』『대승기신론』등이 오히려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 중국에는 유교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탁월한 정치와 윤리 사상이 있었다. 이들은 매우 뛰어난 사상들로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지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와 관련된 부분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매우 조야했다. 이러한 중국에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중국의 사상이나 종교계는 그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게 되었다. 불교에 대항하여 발생한 도교는 매우 미신적 요소가 강했는데 송나라 때에 이르면 환골탈태하여 매우 지적인 사상 체계로 바뀐다. 이것은 전적으로 불교의 영향이 크다.
- 당나라 이후 불교의 교리 체계에 한편 고무되고 한편 발달하여 ‘성리학’이나 ‘양명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9. 한순간에 우주를 담는다
- 중국 근대 계몽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양계초는 선종은 중국인에 의해 중국인을 위한 불교로 재생된 불교이며, 이것은 인도 불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세계에서 오직 중국에서만 가능했던 중국인의 종교 사상이라고 지적하였다.
- 인도 불교에서의 선을 여래선, 중국에서의 선을 조사선이라 하여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
- 홍인 선사를 이은 신수는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점점 깨달음에 가깝게 가는 점수를 주장하였다. 주로 그가 활동한 무대가 중국 양자강 이북이어서 북종선이라 한다. 같은 홍인 선사의 문하에서 수학을 한 혜능은 단박에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버리는 돈오를 주장했는데 그의 활동무대는 양자강 이남이어서 남종선이라 부른다. 그러다 신수의 북종선은 남종선의 혜능으로 통일되며 마침내 중국 선종의 르네상스가 열리게 된다. 한국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명칭도 혜능 선사가 활동한 조계산의 명칭에서 유래하고 있다.
- “이미 지나 버린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마음도 매순간 사라져 얻을 수 없는데 스님은 어떤 마음에 점을 찍어 점심을 들고자 하시는 겁니까?”
10. 소도에 들어선 한국의 사원
- 미르(용의 옛말)를 신성시하던 우리의 전통 풍습 역시 불교의 미륵신앙과 결합된다.
- 한국 불교는 각 종파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통불교라 불리기도 한다.
- 중국에서 수많은 불경이 제작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 제작된 불경은 거의 없다. 다만 『금강삼매경』은 한국에서 제작된 경전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주장이 있다.
11. 우리는 왜 또다시 미륵불을 기다리는가
『불경』에 대해 더 알거나 깊게 배우려 하신다면
- 『잡아함경』, 선종에서 특히 중시하며 불교사상의 핵심을 찌르는 『금강경』, 대승불교의 가장

키워드

구도자,   나라,   종교,   힌두
  • 가격2,3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7.06.20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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