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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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가 어렸을때에는 ‘북한은 나쁜놈, 남한은 착한놈.’ 등의 흑백논리가 완연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양분된 관념은 어느새 부드럽게 뭉개어져 오히려 우호적이다 싶을정도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내외로 외쳐대는 우리는 동포라는 외침에서 살짝 벗어나 경제와 한반도의 안보, 그리고 인권문제라는 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최근 남북관계의 주요 변수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한다면 한국은 최첨단 IT산업은 물론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도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울러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향후 통일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며, 이러한 면에서 현재 조성중인 개성공단의 성공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고 말했다. 즉 과거와는 다른 경제적 협력체로서의 북한에 대한 접근을 박 총재는 말하고 있는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남북관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70∼80년대가 정치부문이나 인도주의적 지원, 문화교류 성격이 강했다면 90년대에는 정치, 군사, 경제 전 부문으로 확대됐다. 2004년 여전히 북핵이라는 정치적인 변수가 남아있지만, 경제 쪽으로 중심이 바뀌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위 표에서 보듯이 해마다 남북교역액은 빠르게 증가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 흑백논리가 존재하던 70년대는 남북적십자회담, 74 남북공동성명 등 교류의 물꼬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교류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미했다. 79년은 물자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표에서 보듯이 90년대를 넘어서면서 2003년 기준으로 남북한 물자 교류는 7억24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남한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북한의 제3대 교역국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적교류도 증가일로다. 6•25 전쟁 이후 99년까지 남북을 오간 인원은 모두 1 만200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0년 이후 4년간 남북을 왕래한 인원이 총 5만 3603명에 이른다. 이는 98년부터 시작한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을 방문한 65만2 000명을 제외한 수치다. 남북 경협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개성공단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다. 남북경제협력 상징이 된 개성공단 시범단지 2만8000평이 착공 1년만인 지난 6월 30일 준공됐다. 시계제조업체인 로만손 등 15개 중견기업이 입주해 11월 공장을 가동한다. 빠르면 내년초까지 ‘made in 개성’ 제품을 볼 수 있게 될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개성 공단의 경제 잠재력을 지난 7월11일 발표한 개성공단 조성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통해 2007년부터 남한 경제에 연간 생산 9조4천억원, 부가가치 창출 2조7천억원의 직접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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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30
  • 저작시기2007.4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41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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