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남편, 무책임한 남자 친구, 권위적인 형사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이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비관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등장하는 일련의 영화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운드>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힘에 의해 악녀인 팜므파탈이 제거되는 느와르 장르의 규칙을 뒤엎는다.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빼앗은 돈으로 자유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는데,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이전에 묘사되었던 레즈비언 혹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극복해내진 못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들은 살아남고 돈을 얻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남자를 유혹하고 속여서 결국 죽이는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
동양의 역사적인 악녀들, 우리가 보는 드라마의 악녀들, 서양의 팜므파탈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점은 그 시간, 공간적 존재가 달라도 여성의 남성위주 사회로의 도전을 저지하려는 사회의 폭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성인권탄압의 상징적인 존재인 ‘악녀’, 그녀들은 사회에 ‘악’인 존재가 아니라 ‘악’의 누명을 덮어쓴 희생양일 뿐이었다. 이제 남성들과 같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는 여성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공개적으로 처단하는 시스템을 통해 유지되어온 남성위주의 사회는 이제 그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여성’이라는 희생물, 그것도 생물학적인 차이를 차별하며 만들어낸 희생물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시스템이 그것을 부정하는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시스템의 변화는 기대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반하여 행동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등장하는 일련의 영화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운드>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힘에 의해 악녀인 팜므파탈이 제거되는 느와르 장르의 규칙을 뒤엎는다.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빼앗은 돈으로 자유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는데,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이전에 묘사되었던 레즈비언 혹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극복해내진 못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들은 살아남고 돈을 얻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남자를 유혹하고 속여서 결국 죽이는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
동양의 역사적인 악녀들, 우리가 보는 드라마의 악녀들, 서양의 팜므파탈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점은 그 시간, 공간적 존재가 달라도 여성의 남성위주 사회로의 도전을 저지하려는 사회의 폭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성인권탄압의 상징적인 존재인 ‘악녀’, 그녀들은 사회에 ‘악’인 존재가 아니라 ‘악’의 누명을 덮어쓴 희생양일 뿐이었다. 이제 남성들과 같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는 여성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공개적으로 처단하는 시스템을 통해 유지되어온 남성위주의 사회는 이제 그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여성’이라는 희생물, 그것도 생물학적인 차이를 차별하며 만들어낸 희생물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시스템이 그것을 부정하는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시스템의 변화는 기대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반하여 행동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